신여성의 ‘양가성’과 ‘집 떠남’ 고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민족어문학회
· 수록지 정보 : 한민족어문학(구 영남어문학) / 48호 / 307 ~ 332페이지
· 저자명 : 박종홍

초록

본고는 <혼명에서>를 대상으로 삼아 백신애의 여성의식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에 신여성 주인공의 ‘양가성’과 그러한 의식이 외현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집 떠남’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의식 속에서는 가족주의 담론의 주체인 어머니와 사회주의 담론의 주체인 S의 언어가 상호 경쟁하고 충돌하여 양가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S는 애정의 대상이자 이념의 동지란 점에서 사회주의 담론에는 자유주의 담론도 일정하게 포섭하고 있다. 백신애의 소설에서는 대개 남자 가족이 부재하고 침묵한다. 이것은 지방 소도시의 자본가이자 지주이면서도 가정에서는 가족주의 담론을 완강하게 드러내는 아버지와 이와 대척적으로 계급 해방의 사회주의 담론을 지향한 오빠의 갈등 속에서 아버지의 언어를 거부하고 오빠의 언어를 선택한 것을 은폐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작품에서는 과격한 아버지의 언어 대신에 온건한 어머니의 언어와 대립하면서 애인이자 동지인 S의 언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때에도 어느 언어의 일방적 배제 대신에 양가성 속에서 그것을 포섭하면서 지양하고 있다. 집은 사람들에게 안정과 보호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감금과 규제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에 여성의 ‘집 떠남’은 가족의 보호와 규제에서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혼명에서>의 ‘나’는 의식의 양가성 속에서 가족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가 각축하고 있듯이 집을 떠나는 양상도 이에 대응하여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나’에 있어 사회운동을 위한 ‘사회적 오랜 집 떠남’과 결혼에 따른 ‘가족적 오랜 집 떠남’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현재에 전향자이자 이혼녀이다. 그렇지만 ‘자유적 짧은 집 떠남’과 ‘가족적 짧은 집 떠남’은 현재에 이루어진 행위이면서 S를 만나는 구체적 계기를 이루고 미래에 이루어질 ‘사회적 오랜 집 떠남’에 연결되고 있다. ‘나’에게 S는 애인이자 그 이상의 존재이며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집을 떠날 결심을 확고히 한다. 이런 점에서 낙관적 전망 속에서 자유주의 여성 담론을 포섭한 사회주의 여성 담론을 뚜렷이 드러낸다. 본고에서 이러한 분석을 통해 나혜석과 김명순처럼 가부장 제도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자유로운 애정의 실현을 절대시하던 자유주의 여성담론, 자본주의 제도로부터의 해방을 우선시하여 이념의 실현을 일방적으로 중시하던 강경애의 사회주의 여성담론, 선배 여성 작가들보다는 온건하지만 여전히 일탈적인 애정을 중시한 최정희의 여성담론과도 변별되는 백신애의 독자적 여성담론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