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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석(吳天錫) 연보의 재구성: 미국 유학 후 조선 생활을 중심으로 (A Reconstruction of the Oh Chun-seok’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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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22 최종저작일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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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석(吳天錫) 연보의 재구성: 미국 유학 후 조선 생활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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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역사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역사연구 / 49호 / 13 ~ 48페이지
    · 저자명 : 김광규

    초록

    본 논문은 교육가이자 교육학자로 유명한 오천석의 생애에서, 오천석이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후부터 8·15 해방 이전까지의 시기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가 자서전에서 간략하게만 언급했거나 전혀 말하지 않은 부분을 밝힌 것이다. 오천석은 1932년 1월 귀국하여 동년 4월부터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35년 9월 사직했다. 보성전문학교에 전공인 교육학 과목이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과 연구에 대한 아쉬움, 미국 박사를 우대하지 않는 학교 분위기와 운영에 대한 불만 등으로 오천석의 보성전문학교 교수 생활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성전문학교를 사직한 뒤 오천석은 회사 임원으로 살아갔다. 처음에는 평양의 대표적인 유지로서 사업가이자 개신교 장로인 김동원이 설립한 태안양행에서 중역으로 일했다. 이후 다시 서울로 이주하여 평안도 출신 실업가 박흥식의 화신무역에서 영업과장으로 재직했다. 화신무역에 재직 중이던 1940년 12월-1941년 4월, 화신무역의 동남아 ‘진출’을 위해 남양 출장을 다녀왔으며, 『조광』 1941년 2-7월호에 「남양행」이라는 제목으로 기행문을 기고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1942년 봄, 가족과 함께 상하이로 이주했다. 상하이에서도 임승업의 경화산업과 기타 조선인, 중국인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영어초록

    This paper reveals what Oh Chun-seok, famous as an educator and educational administrator, did until the Liberation of Korea on August 15, 1945 after returning from studying in the United States.
    Oh Cheon-seok returned to Joseon in January 1932, served as a professor at Boseong College from April 1932, and resigned in September 1935. He didn’t have the opportunity to teach his major, pedagogy, at Boseong Colege, and he was dissatisfied with the school’s management style and atmosphere, so it appears that he was not ssatisfied with his life as a professor at Boseong Colege.
    After resigning from Boseong College, Oh Chun-seok served as a company executive. The companies he worked for were trading companies suspected of cooperating in the Japanese Aggressive War, including Park Heung-sik’s trading company ‘Hwashin Trade’ and Lim Seung-eop’s company ‘Kyunghwa industry’. Oh Chun-seok never mentioned the fact that he had worked at these kinds of companies. In the spring of 1942, Oh Chun-seok left for Shanghai with his family. As a result, he was able to avoid engaging in wartime cooperation. Oh Chun-seok was able to endure the wartime period without engaging in pro-Japanese behavior, whether actively or passively, by utilizing the network derived from his background, religion, education, and connections. So he could have moral confidence in working as an educator in Korea after 1945. Therefore, Oh Chun-seok would have wanted to erase or conceal the fact that he worked at a company suspected of being pro-Japanes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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