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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시기 조선내 고물상 부정의 실태(1937~1940) (Research on fraud of Korean junkyard in the Sino-Japanese wa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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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21 최종저작일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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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시기 조선내 고물상 부정의 실태(1937~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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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66호 / 127 ~ 178페이지
    · 저자명 : 김인호

    초록

    본 연구는 중일전쟁시기(1937~1940)조선에서 전시 통제경제 정책으로 새로운 영업조건을 맞이한 고물상이 저지른 영업 부정의 특성과 내용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1937년 이후 종래 ‘폐물수집’ 형태의 민간 고물상은 총독부의 생산력확충이나 외국산 자원 대체를 위한 ‘폐품회수’에 수반하여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었다. 이시기 조선 내 고물상은 18,000명에서 20,000명 선이었다.
    중일전쟁은 고물상에게 폐품의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예측을 심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고물상들은 그 시점을 축재의 기회로 파악하고 영업 부정을 통한 개별적 부의 획득을 시도하였다. 특히 고물 가격이 등귀할수록 노골적으로 고물상의 부정은 확산되었다. 이처럼 고철 가격은 부정의 규모를 정해주었다. 그럼에도 1938년까지는 여전히 절도나 사기 장물 등과 같은 이전에도 볼 수 있던 부정이 많았다.
    1938년 이후 폐품회수나 중요물자사용제한이 확대되자 폐품회수의 전문가 그룹인 고물상은 총독부 정책을 일선에서 추진할 협력자로서 인정받았다. 그들은 협회나 조합으로 뭉쳤고, 그것은 폐품 회수라인에서 고물상이 농간을 부릴 여지를 넓혔다. 고물상 부정도 종래와 달리 조직 절도단과 결탁하여 중요물자나 공공기물을 절취하고, 여기에 고물상들은 그들과 깊은 유대를 통해 전국 단위로 장물을 취급하거나 원자재나 대금 횡령 등에 직접 개입하는 현상이었다.
    1939년에는 폐품회수라인의 부정이 증대하였고, 그 규모도 종래 몇 천 원에서 이제는 몇 만원 단위를 넘어섰다. 고물행상과 같은 전통적인 조선인 고물업자에 대한 단속이 집중되었다. 결국 1940년에 들면서는 대구경찰서 나가타永田 서장이 말한 것처럼 “고물상이야말로 절도의 소굴이며 교사자”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독부는 기존의 자유로운 고물상 영업만으로는 더 이상 효율적으로 폐품이나 고물을 수집할 수 없다고 보고, 조선폐품통제주식회사(1940.9.15)를 중앙조직으로 하는 고물상에 대한 국가통제를 기도했다. 이 조직은 태평양전쟁 이후 금속회수와 공출이 더욱 강권화하면서 조선자원회수통제주식회사(1942.10.30) 체제로 진화했으며, 마침내 중요물자영단(1944.2.24) 체제로 모든 고물상 기구는 국가관리 아래 놓였다.
    시대를 막론하고 고물상은 절도나 부정행위로 발생한 장물을 처리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그럼에도 중일전쟁 시기에 빈번했던 고물상의 부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당시 총독부가 조선경제의 번영과 총체적 향상에 대한 비젼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면서 모든 경제영역에서 전시 경제통제를 시도했다. 그러나 실제의 경제 영역에서 그들의 지향은 여전히 개별적인 자본의 이해에 의해 왜곡되고 기형화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1940년 시점에 서면 대외적 조건을 차치하고라도 총독부는 고물상 영업에 대한 국가의 직접 통제 즉, 민간 요소의 철저한 제거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에서 조선의 고물상 업계가 보여주었던 각종 기회주의적 부정과 불법은 마침내 국가의 강권적인 관리체제 아래로 귀속되는 운명을 초래했다.

    영어초록

    It was very important for studying Korean economic trends and vulnerable point of controlled economic policy at that time that analyzing about fraud of Korean junkyard in the Sino-Japanese wartime. This research focused on the junkyards’ fraud in Sino-Japanese wartime(1937~1940). The greater part of Korean junkyard thought Japanese control-economy policy as his enrichment opportunities. Thus, junkyard committed many irregularities and illegal. Especially this study inspected why this junkyards have committed so many fraud.
    Traditionally, junkyard were operating in private companies. And ‘refuse collection’ was his main objective in the past. However junkyards have been linked gradually national project(expansion of production policy, resources alternative policy) since the war happened. Also during this period, the number of Junkyard increased from 18,000 to 20,000 people.
    The war increased the social demand for refuse and junk dealer. Junkyard who saw the war as an opportunity for enrichment, was attempted business fraud. the more scrap metal prices riser, the more blatant fraud were committed. Scrap metal prices had determined the size of the fraud. Nevertheless the traditional crimes such as theft or fraud has occurred a lot until 1938.
    In 1938, junk collection and ‘critical-material-use-restriction policy’ has been expanded. Junkyard were individually included in salvage campaign group. Junkyard were treated as co-workers who cooperated to colonial government policy. They are united by association or union. Unlike the previous, junkyard in collusion with organized thief group likely expanded the thief-scale of important materials, furnishings. Junkyard in conjunction with the theft was attempted to dabble in stolen materials and money embezzlement.
    In 1939, irregularities of salvage line increased. Scale of irregularities exceeded a few thousand won. Colonial Police cracked down on antique Koreans Cleaners such as junk peddlers who traditionally treated antique, old article and used goods. In 1940, irregularities of Junkyards were serious enough likely as Daegu police station chief Nagata(永田) “the junkman is theft of the den and abettor.”In this situation, Government General thought Existing-liberal junkyards was no longer able to contribute to keep war-economy. The colonial Government General established 「The Collection of waste materials control Korea Co. Ltd」(15/09/1940) for state-control on junkyard. This organization was change into 「Korea Resources Recovery Control Co., Ltd.」(30/10/1942) for operation to powerful metal forfeiture since the Pacific wartime. Finally As soon as 「important material corporation」(24/02/1944) has been created, Government General could determinedly take control on all korean junkyard.
    However said Government General about the prosperity of the colonial economy, colonial Korea’s real economy is still being distorted by the interests of the individual capital. Complete control by the state was only an illusio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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