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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개성상인의 상업전통 연구 -‘地方出商’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ommercial Traditions of Gaesung Merchants during Colonial Korea -With a focus on ‘地方出商’(regional trade init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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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20 최종저작일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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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개성상인의 상업전통 연구 -‘地方出商’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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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72호 / 5 ~ 48페이지
    · 저자명 : 양정필

    초록

    개성상인에게 ‘지방출상’은 매우 오래된 상업전통이며, 개성상인을 대대로 재생산하는 핵심 전통이었다. 그러한 ‘지방출상’의 일제하 존재양태를 출상 유형, 출상인 수, 출상 지역, 주요 취급 품목과 자본 규모 등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지방출상에는 ‘행상과 ’出稼‘라는 두 방식이 있었다. 전자는 개성 인근 장시를 순회하면서 장사하는 것이고, 후자는 원격지로 진출, 그곳에 상업 거점을 마련하여 활동하는 방식이다. 이 두 방식의 자본 규모를 보면 ’행상‘은 적은 자금으로도 가능한 반면 출가는 상대적으로 많은 자본이 요구되었다. 가난한 개성인은 대개 ’행상‘으로 밑천을 마련하고 이후 ’출가‘로 전환하여 더 큰 돈을 모으는 경우가 많았다.
    출상인 수는 1910년대에는 대개 3천여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이 중 1천8백여 명은 출가 방식을, 나머지 1천2백여 명은 행상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1920~1930년대에도 대개 2~3천여 명은 出商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상 지역으로 중요한 곳은 개성 인근인 황해도, 경기 북부, 강원 서부 등지였다. 이곳은 조선전기부터 개성인에게 앞마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개성 출상인은 개성 인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진출하였다. 특히 일제하에서는 충청도와 함경도로 활발하게 진출하였다. 반면 평안도로는 진출이 미약하였다. 출상인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전통 상업중심지보다는 새롭게 부상하던 상업 중심지로 적극 진출하였다.
    출상인의 취급 품목은 매우 다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잡화와 포목이 특히 중요하였다. 품목 선택은 자금의 제약을 받았다. 행상인은 대개 수십 원에서 수백 원 정도, 출가 상인은 1천원 이상의 자본을 갖고 장사하였다. 마지막으로는 구체적인 사례로서 대구에 진출한 김홍조와 이근무, 성진에 진출한 이홍근, 서울에 진출한 김형태 등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사환 혹은 행상 활동을 통해 상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출가 상인이 된 후에는 해당 지역에서 10~20년씩 정주하면서 상업활동을 전개하여 巨商으로 성장해 갔다.
    이러한 일제하 ‘지방출상’의 존재양태를 통해 개성상인이 식민지 하에서도 상업전통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경제 활동을 전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사에서 제국주의 침략기에도 상업전통이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전통 상업ㆍ상인이 근대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그래서 근대 상업의 발전, 근대 상인의 성장은 그러한 전통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영어초록

    Gaesung merchants were groups that ultimately represented Joseon since the 15th century, whose strength and potential enabled them to grow not decline despite the economic penetration of the Japanese colonial power in post-1900s. The very engine for Gaesung merchants to continuously prosper during the colonial times was their legacy of commercial traditions. This article took a special look into ‘地方出商’(jibang-choolsang) aspect of their traditions.
    ‘jibang-choolsang’ means Gaesung merchants conducting businesses not in their own town, but elsewhere. Its roots can be traced back to the latter 15th century. The jibang-choolsang mechod was fully utilized by Gaesung entrepreneurs, so as to maintain and develop their sphere of commercial influence even during the colonial era. There were two kinds of jibang-choolsang. One was called ‘行商’(‘haengsang’), which was peddling around the marketplaces around Gaesung area. The other was ‘出稼’(‘choolga’), which basically meant that one has to establish a shop faraway from Gaesung and conduct economic activities there. These two types differed substantially not just in distance, but also in volume of capital. Haengsang required relatively small funding, which became the main choice for poor Gaesung traders, while choolga demanded far more.
    The number of choolsang merchants was around 3000 in the 1910s. 1800 of them chose choolga while the rest of 1200 were subjected to haengsang. Even during the 1920s and 30s, approximately two to three thousand were engaged in 出商. There were around 600 Gaesung merchants who profited economically through choolsang method in circa-1940. The most important choolsang zones were Hwanghae province, northern Gyeonggi province, and western Gangwon, which were all neighboring Gaesung. Although choolsang districts were nationwide phenomenon, there were certain provincial disparities : weak moves into Pyeongan, while active in Choongchung and Hamgyeong provinces, for instance. The choolsang merchants of colonial Korea energetically pioneered not into established trade centres, but into new commercial cores such as railways nucleus or large-scale engineering works. In terms of capital, Haengsang needed tens to hundreds of won, while it was essential for choolga to have at least 1000 won.
    Such were the business patterns of colonial jibang-choolsang, which ascertains that the heritage of Joseon-period commercial transactions did indeed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economic endeavors of Gaesung merchants during colonial times. This fact eventually signifies that Korean commercial traditions did not deteriorate during imperialistic encroachments but essentially contributed to their modern transformation, which brings us to the conclusion that modern development of commerce and merchants was generated from those ground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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