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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원종ㆍ충렬왕의 정치적 행적 –김방경의 삼별초 정벌, 일본원정을 중심으로– (The Politics of Wŏnjong and Ch'ungryŏrwang and Kim Pang-gyŏng's Military Operations under the Mongolian Do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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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20 최종저작일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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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 원종ㆍ충렬왕의 정치적 행적 –김방경의 삼별초 정벌, 일본원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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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사)한국인물사연구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인물사연구 / 10호 / 137 ~ 173페이지
    · 저자명 : 이정신

    초록

    고려왕조는 원 간섭기 이전까지는 황제국으로 칭하고 요, 송, 금과의 외교에서도 조금도 굽힘이 없는 당당함을 지닌 국가였다. 그러나 몽고가 침략하여 강화를 맺으면서 상황은 달라져 고려는 복속국의 형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의 고려국왕은 원종과 충렬왕이었다.
    원종 은 고려가 몽고와의 전쟁을 끝맺고 원 간섭기에 들어선 이후 최초의 군주이다. 그는 1235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1259년 강화를 요청하러 몽고에 갔다가 고종의 죽음으로 이듬 해 귀국해 즉위하였다. 1260년에는 아들 諶을 태자에 책봉하여 몽고에 보내는 등 원활하게 국교를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원종의 정책은 당시 무신집정자 임연의 반대에 부딪혀 폐위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원의 도움으로 임유무를 제거하고 개경환도를 실현하였다. 이에 고려가 원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데에 삼별초가 반발했으나 3년 만에 진압하였다. 그는 재위 중에 무신집정자들의 전횡을 벗어났으며, 삼별초의 항쟁을 진압하였지만 모두 몽고의 힘을 빌렸다. 이로서 원종은 몽고의 군사력으로 왕권을 지탱함으로서 원 복속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도 원종대가 강압적이며 외면적인 지배를 당했다면 충렬왕대에는 부마국이 되어 일본정벌에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 원의 복속이 더욱 강화되어 갔다.
    그 뒤를 이은 충렬왕대에는 일본정벌에 필요한 제반 경비와 인원을 부담해야 했다. 몽고의 1차 東征 목표는 일본이라기 보다 고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지만 고려는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2차 東征도 충렬왕이 앞장서서 주도하였는데 기왕 함께 정벌할 것이라면 적극 나섬으로서 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몽고의 1‧2차 일본정벌은 비록 실패했지만 고려가 원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원의 고려간섭을 보다 유연하게 하였으며 왕권을 강화시켰다. 충렬왕은 부마지위를 이용하여 국왕측근세력과 재추 및 일부 신진관료들을 기반으로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원은 고려 왕을 견제하기 위해 책봉권을 강화하였다. 충렬왕 이후 고려는 원에 의존하는 자세가 더욱 심화되어 갔으며 김방경 등 고려 관원 또한 이에 대한 저항의식은 보여지지 않는다. 고려는 이제 내재적으로까지 원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초록

    Koryŏ Dynasty had been the kingdom which, claiming to empire, had continued its unyielding stances toward the northern dynasties of Khitan Liao, Chinese Sung and Jurchen Kum. With the formation of 'harmonious relation' with invading Mongolian empire, however, Koryŏ kingdom got subordinated to the empire and remained so under the reign of Koryŏ Wŏnjong and Chungryŏrwang.
    Wŏnjong was the king who concluded the war with Mongolian empire, resulting in the subordination of his own kingdom to the empire. He earned the title of prince in the year of 1235. Five years later, he went to Mongo to form the new, harmonious relation with Mongolian empire only to, next year, come back to his country because of the death of reigning Kojong. In 1260, right after his enthronement, Wŏnjong, bestowing the princeship upon his son Shim, dispatched the prince to Mongolian empire to establish the formal dynastic relation with the empire. This police let the king face his humiliating dethronement forced by contemporary military governor Yim Yŏn. In this situation, Wŏnjong, getting rid of powering general Yim Yu-mu with the aid from Mongolian empire, recovered his throne and moved the capital city back to Kaesŏng. Also, he quelled the uprising of Sambyŏlch'o which remained opposed to and fighting, for three years, against the subordination of Koryŏ dynasty to Mongolian empire. Then he succeeded in recovering his kingly power from military hands with great miliary helps from the empire, leading to the subordination of his own kingdom to the empire.
    In the reigning years of succeeding Ch'ungryŏrwang, Koryŏ became Pumaguk meaning son-in-law kingdom, subordinating itself to Mongolian empire more than ever. Koryŏ had to bear almost all the burdens required for Mongolian subjugation of Japanese kingdom. The first campaign was aimed at the attrition of Koryŏ military potentials rather than the conquering of Japan. Despite this, Koryŏ had to engage itself in the first campaign. The second campaign was initiated by Ch'ungryŏrwang with the expectation that his active engagement in the forced war would benefit him with the full support from Mongolian empire. Setting apart the progress of the campaigns which ended with the ultimate failure, the active engagements of Koryŏ dynasty eased the Mongolian grip on the dynasty while strengthening Ch'ungryŏrwang's royal power and authority. The king took the advantage of his matrimonial relation with Mongolian royal family to establish his own power and authority which was supported by his near relations and figures, top-rank officials, and a few of young officials. This domestic progress was checked by the Mongolian authoritative power for granting the royal title or Ch'aekbonggwŏn in Korean. This resulted in the increasing dependency of Koryŏ kingdom after Ch'ungryŏrwang upon Mongolian empire. Now the kingdom, including its officials such as Kim Pang-kyŏng and others, showed no opposition to not only Mongolian empire but also the contemporary situation. This tells us that Koryŏ kingdom after Chungryŏrwang came to be internally mastered by Mongolian empire unlike Koryŏ before the king such as the Koryŏ reigned by Wŏnjong where the kingdom got under the forced but external controls by Mongolian empire.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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