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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逑(1543-1620)의 학자․관료적 삶과 安東”使 재임 (The Chung ku’s scholarly and government official life during his term as Andong 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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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9 최종저작일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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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逑(1543-1620)의 학자․관료적 삶과 安東”使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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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영남학 / 17호 / 75 ~ 111페이지
    · 저자명 : 김학수

    초록

    鄭逑(1543-1620)는 선조~광해군대에 활동한 조선중기의 대표적 학자 관료의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이황조식 양문의 고제답게 한국유학사에 빛나는 다수의 名著를 남겼고, 무려 342명에 이르는 문인을 양성함으로써 조선후기 사상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점했다. 그는 주로 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누구보다 학문의 실천성을 중시하여 중년 이후로는 벼슬길에 나아가 經世論을 펼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그가 애착을 보인 직책은 백성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지방관이었다. 그는 일생 11차례 지방관에 임명되었고, 그 가운데 7차례(수령 6, 감사 1) 부임하여 곳곳에 많은 치적을 남겼다. 1607년 3월부터 동년 12월까지 역 9개월 동안 수행한 안동부사는 그에게 주어진, 또 그가 수행한 마지막 지방관이었다.
    그가 수행한 많은 고을살이 중에서 안동부사만큼 기록이 풍부하고, 사연이 다채롭고, 치적이 현저한 예는 드물다. 특히 안동부시 재임기는 그의 생애 후반기로서 학문과 경륜이 최고 경지에 올라 있었음은 물론 퇴계남 명의 수제자라는 학문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嶺南盟主意識’을 강하게 표출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퇴계학파의 본거지인 안동부사 부임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 글은 안동부사 임명에서 사직, 환향에 이르는 11개월간의 자취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본 것이다. 임명 직후 사직을 곡진하고도 강도 높게 표현하면서도 끝내 수락한 내면적 이유와 부임 과정에서부터 사퇴하는 순간까지 한결같이 표출했던 이황에 대한 연모의 마음은 ‘영남맹주의식’과 맥이 닿아 있었다. 행정책임자로서의 제도적 권한과 사림 영수로서의 학자적 권위는 원칙을 강조하는 다스림의 실현에 커다란 보탬이 되었다. 아울러 지역 인사에 대한 포용적 태도와 학술적 우월성은 ‘학술문화사업’의 효율적 수행을 넘어 ‘한강학파’의 기반 확대라는 부가적 효과를 창출하였다. 이 점에서 정구의 안동부사 부임은 공적 임무의 수행과 사적 포부의 신장이라는 다면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정구의 관료학자적 생애에서 차지하는 안동부사의 의미이며, 이 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이다.

    영어초록

    Chung ku is a representative scholar and government official in the mid-Joseon period(Seonjo~Gwanghaegun). Also, he published many outstanding masterworks in Korea Confucian history as a distinguished disciple of Lee hwang and Cho sik and cultivated as many as 340 disciples. So, he was a worthy of notice in the late-Joseon world of thought. Although he is a famous as a scholar now, he laid more emphasis on putting his theory into practice than anyone. After his middle age, Chung ku had spent a lot of time administrating the state to relieve the people’s suffering. Especially, he wished to be a local official who sharing joys and sorrows with people. He had been appointed local official 11 times in his life. Among those times, he had started for his new post as local official 7 times (suryeong 6 times, gamsa 1 time) and left a legacy of achievements. Andong busa was his final appointment as local official. He had been in service as Andong busa from March until December in 1607.
    Chung ku’s official life as Andong busa is an exceptional case. The reasons are that he had left so many legacies of achievements during that time, and that there is a great deal of material and diverse story. When he serviced as Andong busa, Chung ku became a man of great scholarship and had experienced eyes. Most of all, he had much pride in himself as an outstanding disciple of Lee and Cho, and expressed “the hegemony leadership in Yeongnam” on that pride. In this perspective, it is great significant that his new post as local official was Andong, the stronghold of Teogye-school.
    This article describes vividly Chung ku’s life as Andong busa from his appointment time to his resignation and returning hometown time. Right after he had been appointed, he asked for resignation, but eventually accepted. His behavior is related to “the hegemony leadership in Yeongnam.” During his official life as Andong busa, he had the greatest respect for Teogye. His respect also is related to “the hegemony leadership in Yeongnam.” He was the approved scholar as sarim leader and authorized administrator. This is a great help to govern in principle. Chung ku was generous to landed people and had the superiority of scholarship. His character improved efficiency to perform scholar-culture projects, and produced the ground expansion of Hankang-school as additional effects. In these facts, his official life as Andong busa is the combination of his private ambition and public duty. In other words, that is the multi-faceted even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reveals the meaning of his official life as Andong busa.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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