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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 禪源寺의 위치에 대한 재검토 (A Reexamination of the Location of Seonwonsa(禪源寺) in Ka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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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7 최종저작일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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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 禪源寺의 위치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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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민족문화 / 34호 / 135 ~ 170페이지
    · 저자명 : 채상식

    초록

    그간 학계에서는 선원사의 위치를 놓고 문헌과 발굴결과를 통한 고고학간에 견해를 달리 하였다. 곧 고고학 연구에서는 지금의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일대(사적 제259호 유적지)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에 대해서는 2003년 『史蹟 259號 江華 禪源寺址 發掘 調査報告書』 Ⅰ·Ⅱ로 정리하였다. 이에 비해 문헌 쪽에서는 현 위치가 문헌자료와 배치됨을 들면서 선원면 선행리의 충렬사 부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의 문헌자료를 재검토하고 나아가 새로운 자료의 확보에 주력하였다. 또 기존의 고고학 성과에서 의문되는 점도 찾아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조선시대 들어와 선원사는 폐찰이 되고 그 유허지에는 장원서의 과원, 구체적으로는 栗場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이는 강화도 일대에서 밤이 잘 재배되는 지역 중의 하나가 선행리 일대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둘째, 고려시대 문집 자료를 통해 선원사가 위치하였다고 알려진 화산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록들이 화산을 넓은 의미의 강화도 전체를 의미한 것은 아니며, 궁궐이 위치하면서 각종 관청시설이 배치되어 있던 현 강화읍 주변에서 바라본 곳이 화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록에 보이는 ‘화산 선원사’는 막연히 강화의 선원사가 아닌 구체적 산명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선원사의 규모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통해서도 현재의 사적지 일대를 선원사로 보기는 어렵다. 곧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선원사에는 수백 명의 승려들이 항상 거처하고 500여 칸에 달하는 수많은 건물들이 넓은 산기슭에 퍼져 있으며, 선법당과 같은 큰 규모의 건물들이 비로전을 중심으로 하여 곳곳에 펼쳐지고, 대장경판과 역대실록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과 4만 석 이상의 곡식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와 羊을 방목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후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선원사는 지금의 선원사 추정지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충렬사가 위치한 화산의 남쪽 지역이 선원사가 소재한 곳으로 보이며, 이는 화산의 남록 일대에 큰 절이 있었다는 『강도지』의 기록과 박헌용의 현장답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넷째, 현 선원사 추정지에서 다량 발굴된 치미, 취두, 잡상 등과 같은 특수기와들을 살펴보았다. 발굴된 고려시대 중요 사찰 몇 곳을 검토한 결과 건물의 특수부재였던 치미, 취두, 용두, 잡상 등은 그렇게 양이 많지 않으나, 사찰의 중심 건물에만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에 비해 선원사지에서 출토된 치미, 용두, 잡상의 수는 대단히 많은 편이다. 이는 현 선원사지가 사찰이라기보다 궁궐과 가까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음을 말해준다.

    영어초록

    In the academic world, historians and archeologists have differed in opinion about a location of Seonwonsa so far. The results of archeological research have maintained that the site of Seonwonsa was around Jisan-li, Seonwon-myeon, Kanghwa-do(historic relics no. 459). It appeared in the publications, Excavation and Research Report on The Ruins of Seonwonsa, Historic Relics no. 459 excavation Ⅰ·Ⅱ(『史蹟 259號 江華 禪源寺址 發掘 調査報告書』 Ⅰ·Ⅱ) in 2003. However, learned circles of history have argued that Seonwonsa was located around Seonhang-li, Seonwon-myeon, because the presumed site of it didn't agree with historical records.
    I reexamined existing documents and made an effort to find new documents, keeping these facts in mind. I also attempted to search for problems in archeological results. In result, I reached these conclusions.
    First, Seonwonsa was closed down and was reduced to a fruit garden, correctly, a field of chestnut tree belonged to the Office of Gardening(掌苑署)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It has relation to the fact that the glowing of chestnuts was widespread around Seonhang-li.
    Second, I examined the meaning of ‘Hwasan(華山)’ in which Seonwonsa had been located, through documentary records of the Goryeo Dynasty period. Hwasan in the records meant not the whole of Kanhwa-do but a mountain that is seen in present Kanhwa-eup, where a palace and many government offices had located. Therefore, it suggests that 'Hwasan Seonwonsa' was not a vague Seonwonsa of Kanghwa but the concrete name of mountain.
    Third, a argument that the present historic site was a place of Seonwonsa does not agree with the documents recorded the size of Seonwonsa.
    Seonwonsa had five hundred odd houses, where hundreds of Buddhist monks lived, and large buildings as such Seonbeopdang(善法堂), which spreaded centering around Virojon(毘盧殿). It also had a repository to keep the complete collection of Buddhist Sutras and a true record of many generations, a storehouse to keep more than forty thousand seok grain, and a large garden to graze a flock of sheep.
    In considering all the facts, Seonwonsa hold a broader area than the presumed site of it. It seems that Seonwonsa was located in the south of Hwasan, that is, the site of Chungnyeolsa(忠烈祠). The fact is supported by 『Kangdogi』(江都志) recorded that there was a large temple in the south of Hwasan, and Bakheonnyong's exploration of the historic scene.
    Fourth, I examined ornamental tiles as such Chimi(鴟尾), Chwidu(鷲頭), Japsang(雜像) which had been unearthed in quantity in the presumed site of Seonwonsa. As few ornamental tiles as special materials were unearthed in major temples of the Goryeo Dynasty period, they must have been used for the main buildings of a temple. However, ornamental tiles excavated in the ruins of Seonwonsa were large quantities. Therefore, it seems that there were buildings similar to a palace rather than a temple in the present ruins of Seonwonsa.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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