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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봉안기의 정치적 성격 (The political character of the Sharira Dedication Record of Mireuksa Stupa)

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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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3 최종저작일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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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봉안기의 정치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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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목간학회
    · 수록지 정보 : 木簡과 文字 / 25호 / 79 ~ 103페이지
    · 저자명 : 장미애

    초록

    2009년 미륵사지 서탑에서 「사리봉안기」가 발견되면서 미륵사에 대한 많은 논란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창건 주체와 시기를 비롯하여 미륵사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진 「사리봉안기」와 관련한 논의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리봉안기」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리봉안기」에 대한 논란은 미륵사의 조영주체와 조영시기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이루었다. 조영주체에 대해서는 사택왕후설, 선화설, 무왕설 등이 제기되었다. 미륵사의 경우 왕실 원찰을 넘어 당시 백제의 국력을 기울인 사찰이라는 점에서 무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 사찰로써 건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조영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미륵사가 오랜 기간 동안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는 미륵사의 규모와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기반한 추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륵사는 왕실의 원찰을 넘어 강력한 백제국의 상징으로 건립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륵사 조영의 실질적 주체는 무왕이었으며, 사택왕후를 비롯하여 미륵사지 서탑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제소형판 등에 기록된 다양한 사람들은 이러한 무왕의 뜻에 호응하여 미륵사의 조영에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왕은 이를 통해 백제의 국력을 결집시키고, 보다 강력한 백제의 건설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영어초록

    The discovery of the Sharira Dedication Record of Mireuksa Stupa in 2009 was expected to resolve many controversies over Mireuksa Temple. Contrary to these expectations, however, the debate over Mireuksa Temple continues, including who and when it was founded. In this paper, discussions related to the “The Sharira Dedication Record” have been summarized and, based on this,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The Sharira Dedication Record” has been examined.
    The controversy over “The Sharira Dedication Record” was mainly centered on discussions with the people who built Mireuksa Temple and when it was built. About the people who built Mireuksa Temple, the theory of Queen Sataek, Seonhwa, and King Mu were raised. It is reasonable to think that Mireuksa Temple was built as a national temple centered on King Mu in that it was not a royal temple but looked like a temple devoted to the power of Baekje at the time. On the other hand, the theory that Mireuksa Temple may have been built for a long time is gaining weight.
    Mireuksa Temple was built as a symbol of the powerful Baek Empire, not as a royal temple. King Mu was at the center of the construction of Mireuksa Temple. In response to King Mu’s wishes, various people recorded in the gold miniature plates found in sarira reliquary of the West Stupoa of Mireuksa Temple participated in the construction of Mireuksa Temple. Through this, King Mu would have united Baekje’s national strength and wished for the construction of a more powerful Baekj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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