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영화를 통해서 본 북한의 작가주의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교
· 수록지 정보 : 현대북한연구 / 8권 / 2호 / 125 ~ 156페이지
· 저자명 : 이명자

초록

신상옥이 북한에서 활동했던 80년대는 북한이 변화를 갈구하던 때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합영법’을 발표해 외국투자에게 손짓하는가 하면 체제 내적 개혁의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북한의 경제적 지표는 70년대 이래 계속 떨어져 80년대에는 위기의 징후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기도 했다. 게다가 80년대 북한이 도시화, 산업화가 일정하게 성과를 낸 결과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인민들의 의식의 변화는 체제의 변화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북한은 문학예술에 있어서 ‘숨은 영웅 형상화’를 선언한다. 숨은 영웅은 영웅이긴 하지만 70년대 천리마영웅이나 혁명영웅들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대중의 현실에 좀 더 밀접한 인물들인 숨은 영웅들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찾아진 영웅인 것이다. 이런 결과 서민의 삶의 장소인 집과 일상생활이란 것이 이전의 북한영화에 비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랑이란 문제가 중요하게 소재화 되는 것으로 변화가 나타난다. 또 80년대에는 창작단 실험을 통해 각각의 창작단에 어느 정도 자율성을 확대하고 각 창작단 별 경쟁을 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50-60년대 사회주의 체제였던 동유럽 국가에서 이미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즉 동유럽 국가들은 그 당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에 대한 주장이 높아지면서 이런 주장이 영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 창작단 실험을 통해 동유럽 각국이 자신들의 영화(사회주의적 리얼리즘)들에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창작단별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유명한 감독 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작가의 개념이 생길 뿐 아니라 세계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감독과 작품이 나오게 된다. 폴란드의 아네스 바르다, 헝가리의 졸탄 파브리, 그리고 좀 후세대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미클로스 얀초, 로만 폴란스키같은 작가 감독들이 이 때의 직간접적 산물이다. 북한도 80년대가 이런 때였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신상옥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사한 의미에서 그의 영화는 돌출적인 영화가 아니라 북한사회 내에서 대중적으로 수용될 준비가 이미 돼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신상옥에 대한 평가는 북한의 내재된 변화 추동력을 감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영화로 주물하는데 성공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는 북한의 공식창작방법 즉 평범한 영웅들을 묘사하면서 영화적 재미를 주어 인민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모음으로써 ‘인민교양수단’으로서 북한영화의 실용성에도 공헌할 수 있었다. 그런 한편 그는 자신의 개인적 작가성 북한식으로 말하면 개인적 창작방법을 북한식 내러티브 공식에 녹여 ‘혁명의 길 위에 선 평범한 인물들(특히 여성인물들)의 고통담과 역경극복기’를 만들어내었다.
한편 그의 영화는 공식적 창작방법을 따르면서도 오직 우회하는 방식이긴 해도 그것에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의 영화 속에 재현된, 충분한 답을 얻지 못한 개인적 성적 욕망과 진실한 인민적 즐거움은 교조화 된 북한영화의 ‘딱딱한’ 자세에 대해 인민들로 하여금 물음표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신상옥 영화의 시각적 표현은 영화의 시각적 특성을 다시 북한영화 속에 구현한 것이자 작가적 가능성이 북한에서도 여전히 영상을 통해서 가능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신상옥의 영향은 그의 조감독이나 촬영감독이었던 전종팔, 황룡철 등에서 찾아진다. 그들은 이후 90년대 북한영화의 변화를 이끈 감독과 촬영가이다. 제한적인 변화 시도가 93년 창작단 실험 실패를 선언하며 막을 내리는듯 하였으나 94년 수령의 소멸과 이후 김정일체제의 연착륙을 통해 영화에 있어서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사실이 보여주듯 북한 영화의 변화와 남북 영화교류의 희망적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신상옥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