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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교우보』를 통해 본 신흥무관학교 (Sinheung Military School which appeared in “Sinheung Alumni Bulle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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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2 최종저작일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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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교우보』를 통해 본 신흥무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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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40호 / 61 ~ 94페이지
    · 저자명 : 김주용

    초록

    1911년 6월 설립된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이 한데 모아진 결과물이었다. 신민회에서 추진했던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함께 실행된 무관학교 설립의지가 바로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으로 나타난 것이다. 추위가 온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서간도 유하현에서 출발한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8월경 폐교될 때까지 약 3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정도로 그 생명력과 조직력은 다른 학교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더 강하게 조직하고 단련하는 외곽단체가 조직되었다. 신흥교우단이 그것이다. 후일 신흥학우단으로 명칭을 바꿨지만 설립 초기의 목적과 활동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흥교우단은 조직 후 기관지 『신흥교우보』를 발행했다. 기관지를 발행하는 것은 독립운동단체들이 한국인들에게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널리 홍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신문』을 발행하였던 사실, 권업회에서 『권업신문』을 발행한 사실 등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신흥교우보』는 신흥무관학교 출신 학생들로 조직된 신흥교우단에서 발행하였다고 알려졌을 뿐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미주지역 자료기증을 펼칠 때 지금까지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던 『신흥교우보』를 미국 교포로부터 기증받았다. 신흥교우보 제2호가 세상에 나오면서 몇 가지 추측으로만 여겨졌던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계기가 되었다. 1913년 5월 6일 독립운동의 조직적 전개와 신흥무관학교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신흥교우단을 합니하 신흥강습소에서 창단하였다. 신흥교우단은 “혁명대열에 참여하여 대의를 생명으로 삼아 조국 광복을 위해 모교의 정신을 그대로 살려 최후 일각까지 투쟁한다”는 설립목적을 분명히 했다. 독립군 양성소의 기능을 담당한 신흥강습소가 자기 울타리를 넘어 연해주와 미주에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것은 바로 『신흥교우보』의 발간을 통해서였다. 미국의 안정적 신문발행에 비하여 『신흥교우보』의 발행은 그만큼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본고에서는 신흥교우단의 기관지였던 『신흥교우보』제2호의 내용을 분석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으며, 『신흥교우보』내용의 특징도 도출해냈다.
    먼저 신흥교우단의 설립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신흥교우보』 제2권 2호를 통해서 신흥교우단의 설립시기를 1913년 3월로 추정하였지만, 1913년 5월 6일임이 명확해졌다. 뿐만 아니라 장소 역시 유하현 대화사에서 설립된 것이 아니라 통화현 합니하 신흥강습소내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다만 『신흥교우보』가 언제까지 발행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1913년 6월에 발간되어 적어도 1919년까지 발행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편집자는 서울출신의 강일수였는데 그는 『신흥교우보』의 편집인었다는 사실로 보아 기관지 발행 초기부터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신흥교우보』의 체재와 『신흥교우보』의 체재가 대동소이 한 것은 편집자가 동일인물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물론 논조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신흥교우보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교육부재를 타파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강일수가 「간도동포를 향하여 자제교육을 권고함」이라는 글에서 주장했던 것은 나라의 흥망성쇠가 바로 민족교육을 어떻게 실시하는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왕삼덕이 경술국치를 당한 우리민족이 반성해야 할 것은 눈물로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강한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인적 자원 배출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연원을 단군에서 찾아 민족사의 뿌리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깨울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교육을 잘 받은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애국계몽기 사회진화론의 영웅사관을 그대로 전재한 경우도 많다. 역설적으로 강한 나라의 침략을 받은 우리민족이 강한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사의 영웅들을 본받아 거대한 국제조류 즉 제국주의 시대에도 흔들림 없이 거친 파도를 이겨낼 훌륭한 ‘키잡이’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애국계몽기 1인의 영웅만이 강조되었다면 ꡔ신흥교우보ꡕ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강력한 혁명의 열기(독립운동)로 뭉친 열혈남아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신흥교우보』는 만주뿐만 아니라 연해주, 미주에까지 배송되었다. 독립운동이 만주에서 살아서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선전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에 지속적으로 전달되었다. 우리글에 대한 자긍심, 한국고대사가 살아 숨쉬는 만주답사기 등을 통해 민족의 독립은 위해 신흥무관학교가 바로 독립군 양성의 메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선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어초록

    As the life force and the organizational power of Sinheung Military School were so strong that other schools could not compete with it, it graduated about 3,000 students till it closed in August, 1920. And a fringe organization,Sinheung Alumni Association was formed in order to make the students of Sinheung Military School more strongly organized and well trained. Later its name changed into Sinheung Students’ Association, however, its purpose and activity did not quite differ from its previous ones.
    Sinheung Almuni Association published “Sinheung Alumni Bulletin” after its organization. Till now it has been known that Sinheung Alumni Association organized by the graduates of Sinheung Military School published “Sinheung Almuni Bulletin”, however, we could not ascertain its true nature. But when the Institute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dependence Hall of Korea held a “Collection and donation campaign of Korean historical records in America, a Korean-American donated copies of “Sinheung Alumni Bulletin.””Sinheung Almuni Association was organized at Sinheung School at Habniha on the 6th of May, 1913 to spread a systematic independence movement and operate Sinheung Military School efficiently. The participants in Sinheung Alumni Association made its purpose clear, which was to fight for the independence of their fatherland regarding a great cause as their life to the last moment participating in the line of revolution with the spirit of their alma mater. Sinheung School taking charge of the function training the army for national independence made it possible to let the Korean people in Primorie and America know its existence by the publication of “Sinheung Alumni Bulletin”.
    In previous research through Vol. 5 No. 2 of “Sinheung Student Bulletin”it was presumed that Sinheung Alumni Association would be organized in March, 1913. But it was clarified that it was organized not at Daehwasa,Yooha-hyeon, but at Sinheung School, Habniha, Tonghwa-hyeon on the 6th of May, 1913. The editor of Sinheung Alumni Bulletin was Gang, Il-soo who came from Seoul. Considering that he was also the editor of “Sinheung Student Bulletin”, he must have played the role of the editor of “Sinheung Alumni Bulletin” from the early stage of its publication. Therefore it should not be disregarded that the style of “Sinheung Alumni Bulletine” was similar to that of “Sinheung Student Bulletin” because the editor of both bulletins was the same person.
    “Sinheung Alumni Bulletin” emphasized that they had to do away with a lack of education in order to arouse national consciousness. Meanwhile,there were many cases to reprint the view of history on epics of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during the period of patriotism and enlightenment. As our nation was invaded by a strong country, it stressed that it would be continuously needed to produce helmsmen that could cut through high seas unwaveringly in the huge international stream of times, that is, times of imperialism emulating the great heroes in our national history in order to be reborn as a strong nation paradoxically.
    The copies of “Sinheung Alumni Bulletin” were delivered to Primorie and America as well as Manchuria. In order to obtain the desired results propagating that independence movement was alive and kept strong life force in Manchuria, the copies were continuously delivered to the places where the Korean communities were formed. It indirectly propagated that “Sinheung Military School” was a mecca to train an army for national independence through pride for the Korean language, an on-site report on Manchuria where Korean ancient history was living and breathing, and other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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