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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번벽축성(燔甓築城) 논의와 기술 도입 (Discussion of Brick-based Fortress Construction and Introduction of Related Technologies in Late Joseo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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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09 최종저작일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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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번벽축성(燔甓築城) 논의와 기술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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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민족문화 / 67호 / 235 ~ 280페이지
    · 저자명 : 윤용출

    초록

    15세기 말엽부터 노동력이 많이 소요되는 石城이 아닌 벽돌성에 주목한 논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燔甓築城, 곧 벽돌을 구워서 성을 쌓으면, ‘일은 절반 밖에 안 되나 공효는 배가 된다’[事半功倍]고 여기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벽돌을 축성의 자재로 쓰면 재정 부담이 줄고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으므로, 경제성‧효율성 측면에서 석성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16세기 말엽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중국 병서인 『기효신서』가 도입되어 큰 영향을 끼쳤다. 그와 함께 벽돌을 활용한 중국 城制의 방어시설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임진왜란과 그 이후 지방 여러 곳에서 벽돌을 활용한 축성공사가 진행되었다. 번벽축성은 ‘중국에서 이미 시험해 본 좋은 방책’으로 여겨졌다.
    연행사절의 수행원들은 중국 현지에서 목격한 벽돌성의 외양 뿐 아니라, 높이와 폭, 기초 등 제원에 관심을 기울이며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번벽축성을 하려면 벽돌을 굽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따라서 벽돌성에 관심을 보였던 많은 견문기에서 벽돌의 번조 방식에 관해서도 주의깊게 서술한 것을 볼 수 있다. 벽돌 제작 기술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중국 벽돌가마의 형태, 번벽의 절차와 요령, 벽돌의 종류와 형상 등에 관심을 보였다. 조선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이같은 번벽법의 도입에 열중하였다.
    청나라에서 번벽 기술을 도입하는 일은 은밀하게 추진되었다. 공개적이거나 공식적인 경로가 아닌 기밀을 탐지하는 수준의 은밀한 접근 방식으로 번벽의 기술과 벽돌 가마의 제원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굳이 이같은 방법을 택한 것은, 병자호란 이후 성지 수축을 금지하는 약조를 받아들여야 했던 조선측 사정과도 관련된다. 벽돌 굽는 기술은 군사적 목적의 벽돌성 쌓기의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청측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정조대 수원 화성은 벽돌성이 아니지만 많은 벽돌을 활용한 대규모 석성으로 지어졌다. 수원 화성의 축성공사에서는, 영조대 강화외성을 벽돌성으로 짓다 실패한 경험이 크게 참조되었다. 기초공사를 중히 여긴 것도 그 일환이었다. 중국의 벽돌가마를 도입하는 것도 실험적으로 시행했다. 화성에서는 조선의 전통적인 가마와 구별되는 종 형상의 중국식 벽돌 가마가 새롭게 조성되고 운용되었다. 조선 전통의 횡염식 가마를 대신하여 승염식 가마를 만들어 쓴 것 등이 그러하다. 많은 한계를 보이면서도 벽돌 생산의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 점이 주목된다.

    영어초록

    Since the late 15th century, some commentators began to recognize the relative efficiency of brick-based fortress construction, compared to the conventional labor-intensive stone-based construction. In other words, they said “building a fortress out of fired bricks would take only half the manpower but result in doubled achievement.” Advocates for the brick-based method argued that it is superior to stone-based one, since it will ease the financial burden and save labor cost. Chinese military books imported during the 1592 Japanese invasion also inspired them to think like that and urge Joseon to embrace the Chinese brick-based defense system. As a result, since the 1592 war and afterwards, many brick-based construction projects took place nationwide. At that time, brick-based construction was considered “a good strategy tested and verified in China”.
    Diplomatic envoys to Qing dynasty and their entourage took detailed notes on what they witnessed during their trips to China – the overall appearance and foundation of the brick fortresses as well as their widths and heights. Building a brick fortress, first of all, required consistent production of fired bricks. Therefore, most of such travel essays focusing on the Chinese brick fortresses also provided in-depth discussion on how they fired bricks, resulting from the writers’ commitment to learn more about the advanced technology. The writers’ attention was towards the shape of a brick kiln, the process and the procedure to fire the bricks, and the types and the shapes of the fired bricks. When they observed the advanced technologies in China, they compared them to the realities in Joseon and wondered how the brick-firing technologies would be introduced to their home country.
    They tried to bring the technology secretly; without any open or official routes, like an agent hiding classified information away, they tried to find out the details of the brick-firing technologies and the specification of the brick kilns. There was no option other than such secrecy, largely because Joseon was forced to sign the treaty to forbid itself from new fortress construction after it was defeated from the 1636 Qing invasion. As brick firing was considered closely related to fortress construction and military strategies, the envoys were not supposed to provoke Qing by letting them know they were interested in such technologies.
    While Hwaseong Fortress built during King Jeongjo’s reign was not completely brick-based, it was a large-scale stone-based fortress that also used a lot of bricks. As the outer fortress of Ganghwa was built during King Yeongjo’s reign and was brick-based, but collapsed soon, they learned from the mistakes. The Hwaseong construction project emphasized groundwork and was done carefully. They also experimented with a Chinese brick kiln at the area, building and utilizing one of the first Chinese-style kilns. The bell-shaped Chinese kilns were different in shape and structure compared to the conventional ones. The Chinese ones were in a distinct bell-shape and adopted an updraft firing structure, while the conventional ones had a cross-draft structur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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