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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반송방(盤松坊) (A Study of the on Bansong-bang for Culture & Art Space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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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06 최종저작일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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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반송방(盤松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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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서울학연구 / 67호 / 109 ~ 135페이지
    · 저자명 : 김지현

    초록

    한양 반송방은 돈의문(敦義門) 밖에 위치한 성중오부(城中五部)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일찍부터 인가가 조밀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분주하였다. 특히 경기 지방을 관할하는 경기감영, 말을 빌려주던 고마청, 중국 사신 영접의가 행해졌던 모화관, 반송정, 서지, 천연정 등 관아와 명승처가 함께 공존한 지역이었다.
    조선 전기 서거정은 「한도십영(漢都十詠)」을 통해 한양의 명소 열 곳 중에서 한 곳으로 반송방을 선택하였다. 이 반송방에 대한 주된 시재는 바로 ‘송객(送客) - 나그네를 보내며’이다. 즉 반송방의 장소는 이별의 공간인 것이다. 서거정은 반송방의 뛰어난 자연 경관이 아닌 인간 보편적 삶 속에서 만나는 “이별”을 대표하는 장소로서 반송방을 선택하였다. 서거정 이후 조선 전기 많은 시인들이 여전히 <반송송객>을 시제로 노래하였으며, 17세기 후반까지도 여전히 월과(月課)로 창작되었다.
    18세기 초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은 영조가 선택한 조제탕평(調劑蕩平) 정책에 반대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고 맑고 깨끗한 산수를 벗하며 도성 안에서 시은자(市隱者)로 서대문 밖 반송방 부근 반송지에 은거하였다. 그는 반송방 서지(西池) 근처에 담화제(澹華齊)를 세우고 이곳에서 오찬(吳瓚 1728~1797), 김향묵(金向默), 이인상(李麟祥 17210~1760), 임매(任邁), 임과(任薖) 등과 더불어 반송방에서 시회를 열었다. 영조가 죽고 등극한 정조는 영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탕평책을 표방하였으나 이운영, 김종수 등 이윤영과 세손 시절부터 뜻을 같이 했던 청류지사들을 등용하여 우현좌척(右賢左戚)의 체계를 세웠다. 정조에게 반송방은 이윤영을 뜻하는 곳으로 즉 연꽃으로 상징되는 장소가 되었으며, 이에 정조는 반송방을 ‘이별장소’가 아닌 ‘연꽃을 감상하는 곳’으로 새로이 인식하였다. 정조가 <국도팔영(國都八詠)>이라는 작품에서 한양의 명소 여덟 곳을 뽑으면서 선택한 반송방의 시재는 ‘상련(賞蓮)’ 즉 연꽃 감상이다. 조선 전기와 주된 시재가 바뀌면서 반송방의 장소적 의미도 변한 것이다.
    이후 이 반송방은 문인들의 시회 장소로 많이 사랑받았다. 정약용이 중심이 되었던 ‘죽란시사’는 늦여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반송방의 서지(西池)로 연꽃 구경을 하고 시를 지었다. 조선 전기 이별의 장소였던 반송방은 18세기에는 시회가 열리고 사람들이 만나 문화와 예술이 창작되던 장소가 되었다. 즉 ‘문화 예술의 공간’이 된 것이다.

    영어초록

    The early Joseon Dynasty court official and scholar Seo Geo-jeong (徐居正, 1420~1488) chose the area Bansongbang (盤松坊) out of 10 famous places in the capital Hanyang (漢陽) through the poem “Handosipyeong (漢都十詠)” which sings of Han-yang’s 10 most scenic spots. The main poetic subject of Bansongbang was none other than “sending off sojourners (送客).” In other words, Bansongbang was a place to bid farewell. Seo Geo-jeong chose Bansongbang, not as a scenic spot, but as a place to represent “farewell” in man’s ordinary life. A number of poets since Seo Geo-jeo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continued to sing “Sending off Sojourners in Bansong (Bansongsonggaek, 盤松送客)” as the poetic subject, and the concept was recreated through the monthly examination (月課) at public educational institutions until the end of the 17th century.
    In the early 18th century, opposing King Yeongjo’s “Equitable Policy of the Government(調劑蕩平)” the literary figure Yi Yun-yeong (李胤永) refused to serve his public postand retired to hermitage in Bansongji near Bansongbang outside the Seodaemun (West Gate), living as an unworldly hermit (市隱者) surrounded by clean and clear mountains and waters. He built Damhwaje (澹華齊) near Seoji (西池) in Bansongbang, and there he organized a poetry club with Oh Chan (吳瓚), Kim Hyang-muk (金向默), Yi In-sang(李麟祥), Yim Mae (任邁) and Yim Gwa (任薖). After King Yeongjo died, King Jeongjo further supported the Equitable Policy of the Government but built the system of Exclude Maternal Relatives and Appoint Confucian Scholars (淸流之士) by hiring so-called “clean patriots (淸流之士)” like Yi Un-yeong and Kim Jong-su who followed Yi Yun-yeong since the king’s childhood. To King Jeongjo, Bansongbang was a place symbolizing Yi Yun-yeong, or lotus flowers, thus it was no longer “the place of farewell” but was newly recog-nized as “the place to appreciate lotus flowers.” King Jeongjo selected eight scenic spots in Hanyang through the work titled “Gukdopalyeong (國都八詠)” commemorating eight scenic spots in the country, in which the poetic subject of Bansongbang was “Sangryeon (賞蓮), or “appreciating lotus flowers.” As the main poetic subject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changed, the locational meaning Bansongbang also changed.
    Bansongbang continued to be loved by literary figures as their place of poetry gather-ings. Come late summer, and a cool breeze blows in the morning and evening, participants at Jukransisa (竹欄詩社), the literary gathering led by Jeong Yak-yong (丁若鏞), would watch lotus flowers and write poems at Seoji in Bansongbang. By the 18th century, Ban-songbang, formerly the place of farewell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became the space of culture and art where people held poetry gatherings and created culture and art.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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