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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복속’ 인식과 蒙麗관계 (Mongol’s Recognition of ‘Subjection’ and the Relation between Mongol and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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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02 최종저작일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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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복속’ 인식과 蒙麗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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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고려사학회
    · 수록지 정보 : 韓國史學報 / 55호 / 43 ~ 79페이지
    · 저자명 : 고명수

    초록

    13세기 초 몽골제국 건립 시기 몽골 지배층은 세상의 모든 지역・사람들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했다. 그리고 주변국 군주의 친조를 유일한 복속의 표시로 간주하고, 그 순서에 따라 복속국 군주의 공적과 지위에 차등을 두었다. 이러한 세계관과 대외정책 방식에 입각하여 주변국에게 국왕친조를 조건으로 하는 ‘실제적’ 복속을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 혹독한 군사정벌을 단행하여 유라시아 대부분을 정복・지배했다.
    몽골은 건국초기 개시된 고려와의 관계에서도 그들의 전통적 세계관과 대외정책 방식을 그대로 적용시켰다. 강동성전투 시기 양국의 첫 접촉 후 그들은 줄곧 고려에게 국왕친조를 요구하고, 고려가 그것을 회피하자 여러 차례 군대를 일으켜 고려를 침공했다. 전쟁 기간 고려는 전통적 조공책봉체제 인식 틀 안에서 강동성전투 시기 이미 복속했다고 주장했으나, 몽골은 국왕친조를 결여한 고려의 복속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양측 인식의 불일치가 30년 전쟁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1260년 쿠빌라이와 고려태자 왕전의 만남 후 원종이 몽골에 친조하여 고려의 ‘실제적’ 복속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신집권기 고려가 출륙환도와 조군의 요구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자 몽골은 고려복속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결국 몽골의 지원을 받은 고려왕실이 무신정권을 타도한 후 출륙환도, 삼별초 진압, 왕실통혼, 일본정벌 과정을 겪으면서 고려복속에 대한 몽골 지배층의 의구심과 불신감이 해소되어 비로소 양국관계가 안정되었다. 그러나 쿠빌라이 치세 말기까지 몽골 지배층은 여전히 고려가 오랜 항전 후 늦게 복속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쿠빌라이 사후 고려는 칭기스칸 시기 몽골에 가장 먼저 복속했다는 ‘솔선귀부’ 기억을 생산하여 몽골과 교섭할 때 적극 활용했다. 몽골 역시 카안과 황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려와 우호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려의 외교활동은 몽골 지배층의 인식을 변화시켜 외교분쟁 시기 그들이 고려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솔선귀부 기억은 고려가 몽골과 교섭할 때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러므로 솔선귀부 기억의 생산과 활용은 몽골에 대한 고려의 능동적・성공적 외교활동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영어초록

    When the Mongol Empire was established, its ruling class formed its unique world view to regard all regions and peoples in the world as the target of conquest and domination, and considered audience of the kings of the surrounding nations(親朝) as the only symbol of subjection. Based on which, it forced its neighbor countries to ‘actually’ subject themselves to it under the condition of direct rule by Mongol, and in case they resisted, it carried out harsh military conquest and subjugated and governed most of Eurasia. Mongol also applied its traditional world view and foreign policy to its relation with Goryeo. Accordingly, Mongol kept demanding Goryeo to accept its direct rule, but when Goryeo avoided it, the country rose up an army and invaded Goryeo several times. During the wars, Goryeo argued that it had already subjected itself to Mongol at the time of Gangdongseong(江東城) battle, but Mongol didn’t acknowledge its submission without direct rule. This disagreement for understanding of the two became the main reason for the Thirty years War. As Wonjong(元宗) accepted the direct rule by Mongol after the meeting of Khubilai and Wangjon(王倎)-the crown prince of Goryeo-in 1260, the ‘actual’ subjection of Goryeo was completed. However, when Goryeo during the rule by military officials didn’t faithfully fulfill Mongol’s demands, Mongol doubted the sincerity of Goryeo’s subjection. Eventually, its suspicion was resolved while Goryeo’s royal family went through the returning to the capital from Ganghwa to Gaegyeong(出陸還都), suppression of Sambyeolcho(三別抄), intermarriage between royal families, and conquest of Japan after overthrowing the military regime. Finally the rel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was stabilized. Yet, until the end of Khubilai’s rule, they thought that Goryeo submitted to them too late after a long period of resistance. After the death of Khubilai, Goryeo produced the memory of ‘the first voluntary subjection’(率先歸附) and made good use of it when negotiating with Mongol. Mongol also needed to maintain friendly relation with Goryeo in order to enhance the status of Qa’an and the imperial family, so Mongol could accept it easily. The memory of ‘the first voluntary subjection’ worked as an effective means for Goryeo to carry through its position when negotiating with Mongol. Therefore, its production and use can be evaluated as an active and successful case of Goryeo’s diplomatic activity targeting Mongol.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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