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항마성도상과 신라 화엄종 미술의 형성-부석사 무량수전 촉지인 불좌상 해석의 몇 가지 문제점- (Vajrasana Buddha Image and the Formation of Avatamsaka Art of Silla -Focused on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Temple-)

26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4.30 최종저작일 2012.12
26P 미리보기
항마성도상과 신라 화엄종 미술의 형성-부석사 무량수전 촉지인 불좌상 해석의 몇 가지 문제점-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 수록지 정보 : 선사와 고대 / 37호 / 63 ~ 88페이지
    · 저자명 : 주수완

    초록

    이 논문은 부석사 무량수전에 봉안된 본존불을 도상학적으로 재고찰한 것이다. 편단우견에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법당의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불상은 지금까지 법당의 편액이 무량수전이라는 것과 원융국사비문에 의거하여 아미타불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아울러 신라에 화엄종을 전한 의상대사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다는 점을 통해 그가 화엄 신앙 이상으로 아미타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했었음을 강조해서 언급해왔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우선 원융국사비문에서 무량수전에 아미타불을 봉안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원융국사가 기술한 부석사의 모습이 지금의 부석사와 같은 모습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무량수전은 의상이나 원융국사 당시에는 강당이었고, 지금은 사라진 별도의 금당이 존재하여 그 안에 아미타불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송고승전」에서 의상이 아미타불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서쪽을 등지고 앉는 법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과연 이러한 신앙형태가 실제 의상의 시대에 불상을 동향(東向)하여 봉안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을 것이라는 증거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화엄신앙의 측면에서 볼 때 부석사 무량수전의 불상봉안 방식은 보드가야의 정각상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비록 의상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항마촉지인의 성도상이 유행하기 전이었으나, 의상이 신라로 귀국한 뒤에도 끊임없이 중국 불교교단의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는 몇몇 사실을 통해 새로운 정각상 도상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신라에 구현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여기서 만약 지금의 편단우견 항마촉지인 불좌상이 과연 의상에 의해 그렇게 이른 시기에 구현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상이 의상 창건기의 모습과 무관한 것이라면, 통일신라시대에 항마촉지인 편단우견 불좌상이 석가모니 외에 아미타불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은 역시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부석사 무량수전 본존불이 석가모니 정각상인가 혹은 아미타불인가를 단정적으로 논의하기 보다는 분명하게 석가모니 정각상의 요소를 지닌 도상이 정말로 아미타불로 해석되었다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을까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로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영어초록

    This essay is for an iconographic re-approach to the Buddha image in Amitabha Hall of Buseok-sa temple. This Buddha image of Bhūmisparşa-mudra(touching the earth gesture) with wearing the robe of exposed-right-shoulder style which faced to the east direction has been interpreted as a Amitabha Buddha according to the name of hanging board of the hall and the epigraph of Wonyung the Royal monk(圓融國師). Further more, it was accentuated that the tendency of buddhist idea of Uisang the great monk(義湘大師) was based on Amitabha religion more than Avatamsaka faith.
    But in this essay, new approach would be tried in some aspects for the Buddha statue.
    First of all, even the inscription of Wonyung's stele told that the Buddha statue of Amitabha Hall was exactly Amitabha Buddha, nobody can have confidence that the Amitabha Hall was the very same shrine with today's Amitabha Hall which we could see. Because it is presumed that at the time of Uisang and Wonyung, there was another shrine in Buseok-sa at the lower place of Amitabha Hall as a main shrine of this temple. And Amitabha Hall of these days performed as an assembly Hall originally. Furthermore, according to The Monks Biographies until Song Dynasty(宋高僧傳), Uisang never turned his back on the west side for his Amitabha faith, but there is no any evidence that his faith really can be embodied as Buddha image enshrind as faced to the east direction.
    On the contrary, the situation around this Buddha image can be well explained by Avatamsaka faith as a Vajrasana Buddha image motif of Buddagaya in India. Even though Uisang had been turn back to Silla before this Vajrasana type image became popular in Tang Dynasty, but it is not impossible that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inspired from Vajrasana type image considering that Uisang kept the interest continually in the movement of the Chinese Buddhist order after his leaving China. And this international interest make it possible that the new iconographic buddha can be appeared in Silla so fast.
    If it is raised as a question that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which shows vajrasana motif is not a same buddha with Uisang enshrined originally, all the problems are going back to the beginning to conclude : If this Buddha image is not refer to the original Buddha image of Uisang, the hypothesis that the Vajrasana image can be applied not only Sakyamuni but also Amitabha should be also abandoned.
    This essay did not tried to insist whether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is Sakyamuni or Amitabha. The more valuable question is that why the Sakyamuni image of Vajrasana is applied as an Amitabha buddha image. This iconological question may supply more plentiful art historical idea.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선사와 고대”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3월 2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03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