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4세기 말~5세기 초엽 ‘백제왕(百濟王)’호의 책봉 배경과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호의 의의 (How the Entitlement of “Baekje King(百濟王)” came about in the late 4th, early 5th century, and the meaning of the title ‘Dodok Baekje Jegunsa(都督百濟諸軍事, Supreme Commander of the Baekje Troops)’)

40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4.28 최종저작일 2020.03
40P 미리보기
4세기 말~5세기 초엽 ‘백제왕(百濟王)’호의 책봉 배경과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호의 의의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역사연구회
    · 수록지 정보 : 역사와 현실 / 115호 / 241 ~ 280페이지
    · 저자명 : 백길남

    초록

    동진은 朝貢한 주변제국 군주에게 都督・州刺史 등의 內臣 官爵을 책봉하여 관념적이나마 황제의 지배체제 권위를 내세우고자 하였다. 동진 황제의 정통성이 고려되어 다른 군주들에게 本國王號 등의 왕호 책봉은 허용되기 어려웠다. 그러다 383년 淝水戰鬪 이후 동진의 중원 회복이 요원해지면서 386년 백제를 시작으로 해외 군주와 북방민족 세력에게도 왕호가 인정되었다. 왕호의 책봉은 곧 주변 이민족 세력이 분립된 국제질서를 인정하고 ‘江南國家’를 지향한 동진 말・송 초의 외교노선 변화를 상징한다.
    동진에게 있어 백제는 ‘요동 천여 리 밖’, ‘海外 東夷 三韓’에 속한 서진 판도로부터는 동떨어진 국가였다. 백제는 동진이 가진 지리적․종족적 인식의 제약을 극복하면서 자국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외교 정보를 表文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하였다. 이때 백제는 동진의 고립된 상황을 활용하여 ‘兼諸小國’과 ‘略有遼西’와 같은 일방적인 외교 정보를 선전할 수 있었다.
    ‘겸제소국’ 정보에는 백제가 삼한의 대표국이었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를 통해 372년 동진과의 첫 교섭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본국왕호를 해외 세력 중 최초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편, ‘약유요서’ 정보는 동이 지역의 경계인 요동을 뛰어넘어 서진 판도인 요서지역에서 백제가 군사전략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서진 판도 안의 지명과 주변 종족명 등에 한해 허락되었던 도독호의 관할범위에 최초로 이민족 국호인 백제가 부가될 수 있었다. ‘도독백제제군사’호에는 백제가 중국 판도와 무관한 국가가 아니라는 인정과 백제에 대한 동진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허위관념이 함께 반영된 것이었다.

    영어초록

    To nearby tribute-providing entities, Dongjin(Eastern Jin) bestowed “Inner ranks(內臣官爵)” such as ‘Dodok’ and ‘Jujasa’ in a symbolic gesture, posing as an empire with an emperor. Acknowledgement of kingships for respective kingdoms was frowned upon. Then in 383, when Dongjin’s loss of the Central Plains became evident and permanent after the conclusion of the Bisu(淝水) battle, the Dongjin court began recognizing foreign kings and Northern leaders as kings within their own kingdoms, starting with Baekje in 386. This signifies the Dongjin government’s acknowledgment of the new international situation in which several political entities were indeed entitled to their own kingdoms, and a new policy to pursue an identity as a ‘Jiangnan(江南, under the Yangtze river) State,’ which emerged in China at the end of the Dongjin and early Song period.
    To Dongjin, Baekje was an entity separated from the Seojin(Western Jin) realm, as located thousands of Ri units out of the Liaodung region, and a part of an Eastern Barbaric tribe[“東夷, Dong’ih”] called ‘Samhan(三韓).’ Taking advantage of its own regional remoteness, and Dongjin’s limited knowledge of the Korean peninsula’s geography and ethnic nature, Baekje was able to issue certain official communiques designed to propagate its own political and diplomatic agendas. Exploiting Dongjin’s own isolated condition, Baekje unilaterally spreaded a series of diplomatic propaganda, such as “Caring for its own small league of states(‘Gyeom Je-Soguk, 兼諸小國’)” and “Campaigning in the Liaoshi region(‘Yag’yu Yoseo, 略有遼西’).” Included in the ‘Gyeom Je-Soguk’ propaganda was an insinuation of the fact that Baekje was the representative entity of all Samhan in general. This move actually served its purpose as emphasis on that particular notion led to Baekje being recognized in 372 as an independent kingdom for the first time in Dongjin’s history of recognizing foreign entities as such. Meanwhile, the ‘Yag’yu Yoseo’ propaganda signalled the possibility of Baekje mounting military operations beyond the boundaries of Liaodung, the region of ‘Eastern barbarians,’ and in the Liaoshi region which belonged to the Western Jin. This led to Baekje receiving the Dodok title -which had only been allowed to regions and tribes within the Western Jin territory- for the first time as an entity outside such realm. In other words, included in the title of ‘Dodok Baekje Jegunsa(Baekje king, as the Dodok leader of its troops)’ were notions that both viewed Baekje as supposedly under Dongjin’s (nominal) influence and also on its own at the same time.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역사와 현실”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09월 03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8:10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