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에서 분리로 : 13세기 이성과 신앙의 관계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새한철학회
· 수록지 정보 : 철학논총 / 2권 / 44호 / 309 ~ 328페이지
· 저자명 : 이재경

초록

이 글의 목적은 후기 중세는 물론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아베로에스주의자 시제 브라방의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입장을 재조명하는 것이다.1260년대와 1270년대 파리대학 교양학부 교수였던 시제 브라방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되는 철학적 이론이나 해석을 개진함으로써 이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진리보다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주해하는 철학자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라고 설명하며, 이성과 신앙이 모순되는 경우 언제나 진리가 신앙의 편에 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신앙고백의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한 아베로에스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다른 한편, 시제는 신학적 교리를 철학연구에서 분리시키고자 한 점에서 아베로에스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시제는 자신의 철학적 결론이 신학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이성을 통해 탐구할 수 있는 영역에만 관심을 가진다.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시제의 입장은 신앙의 진리가 이성을 통해 탐구할 수 없다는 신념과 철학을 신학에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교리와 상반되는 철학적 이론들로 인해 경색된 당대 분위기와 맞물려 철학의 자율성을 증가시키고자 한 시제의 노력은 수많은 비판과 압력을 직면하게 된다. 1277년 단죄 이후 신학자들은 철학자들에 대해 점차 강한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의 자율성에 대한 노력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아베로에스주의 전통 역시 사라지지 않고,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더욱이, 시제의 입장을 좇아 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사 없이 독자적인 길을 걷고자 했다. 결국 이런 시제의 노력은 오캄, 나아가 근대철학의 지평을 열게 한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