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조선중기 사대부의 혼례형태 - 假館親迎禮의 시행을 중심으로 - (The Form of Sadaebu's Marriage Ceremony in the Middle Choson Period - Focusing on Performance of Gaguan-Chinyeongrye(假館親迎禮) -)

43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4.20 최종저작일 2008.06
43P 미리보기
조선중기 사대부의 혼례형태 - 假館親迎禮의 시행을 중심으로 -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조선시대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조선시대사학보 / 45호 / 219 ~ 261페이지
    · 저자명 : 장병인

    초록

    조선시대 위정자들은 건국이래 친영제를 도입하려 시도하였지만 처가거주제를 바탕으로 한 서류부가혼속의 저항으로 좌절되었다. 명종대에 이르러 주자학을 신봉하는 사대부들이 친영제의 절차와 조선 고유의 혼속인 서류부가혼의 절차를 혼용하여 새로운 혼례방식을 창안하였으니, 그것이 ‘半親迎’이었다. 그러나 반친영의 요건의 하나인 ‘明日見舅姑禮’의 시행이 현실적으로 용이하지 않아 명일현구고례를 제외한 채 ‘當日相見禮’만을 도입한 서류부가혼의 변형으로서의 ‘新俗禮’가 성립을 보게 되었다.
    신속례의 성립으로 친영제를 도입하려는 사대부들의 노력이 사라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16세기 예학의 발달과 함께 古禮의 시행이 다시 화두로 등장하게 되자 거주제를 바꾸지 않고도 친영제의 의의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조대 이래 호서사림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던 ‘假館親迎禮’가 그것이다. 가관친영은 신랑과 신부집과의 거리가 멀어 신부를 맞아오는 당일에 신랑집에서 혼례를 치르기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신부집과 신랑집 사이에 민가를 빌어 館所를 설치하여(假館) 신랑이 신부를 직접 맞이하여(親迎) 예를 행하도록 한 것이다. 『주자가례』에는 관소를 신부집 근처에 설치하는 방식과 신랑집 근처에 설치하는 두가지 유형의 가관친영례가 실려있다. 그러나 정작 시행과정에서는 『주자가례』의 두 방식도 속례의 요소를 많이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 신부집을 사위집으로 가정하고 관소에서 신부를 맞이해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는 제3의 방식까지 창안되었다.
    가관친영례 시행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은 인조 22년 여름에 회덕에 있는 송시열의 집에서 그의 딸과 윤문거의 아들과의 혼인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충청 5현의 결의로 본격적으로 가관친영례가 확산될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후 50여년간 집중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확인되는 가관친영례는 숙종년간 김창협의 셋째 딸의 사례를 끝으로 구체적인 시행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는 단순한 사료의 일실에서 연유한 것이라기보다 가관친영례의 시행 열의가 쇠퇴했음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시행사례를 통해 보면 가관친영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가관친영례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로 고례를 회복하기 위해 주자를 위시한 선유들이 만든 제도를 따라야 한다는 당위론 이상의 유도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가관친영례는 의례자체가 가진 문제점이나 시행상의 문제점 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어, 眞親迎보다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즉 절차상 ‘男先於女’라는 친영 본래의 정신에 어긋나는 부분을 가진 것이나 지나친 형식주의 내지 가식성의 요소를 가진 것이 의례자체의 문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관소를 마련하여 혼례를 치르는 데 따르는 행사의 번거로움․별도 비용의 필요․오랜 관행을 바꾸는 데 대한 정서적 반발 등 시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던 것이다. 결국 조선사회에서 시행된 가관친영례는 서류부가 혼속을 바꾸지도 못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번거로운 절차만을 군더더기로 첨가시킨 것으로 널리 채택되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운 혼례방식이었다고 하겠다.

    영어초록

    The administrators of the Choson dynasty tried to introduce Chinyongrye(親迎禮) in accordance with Juja-Garye(朱子家禮) from the beginning of the foundation of a country. However, since Chinyongrye was a marriage form which was based on Chinese family relationship, it was difficult to implement in Choson. Therefore, after the failure of the trial of Chinyongrye implementation during Taejong(太宗) dynasty, it was never mentioned until the Joongjong(中宗) dynasty when Salim(士林) started to discuss about it. Many Salim started to enter politics in Joongjong dynasty, documents show that Chinyongrye started to be performed in some Sadaebu(士大夫) family in that period. However, this was a temporary phenomenon and Chinyongrye disappeared with the decline of the Salim School.
    In the 16th century, the performance of Chinyong was again proposed with the development of thought of Confucian Rituals. A new way which kept the meaning of Chinyongjae(親迎制) without change of residence system, was sought, Gaguan-Chinyeongrye was one of that example, which was tried by Hoseo-Sarim(湖西士林) in Injo(仁祖) dynasty. Gaguan-Chinyeong permitted to lease a house Gaguan(假館) between the bride's and the groom's house to meet the bride and perform a procedure. This, which can be found in Juja-Garye in detail, was for the case when the groom's place was far from the bride's, which made difficult to perform a procedure of Chinyongrye-ceremony at groom's place at wedding day.
    The concrete discussion about the implementation of Gaguan- Chinyeongrye seemed to be firstly made at Song, Si-Yeol's(宋時烈) house during Injo(仁祖) dynasty. Gaguan-Chinyeongrye was performed intensively the following 50 years and the last case is shown in Sukjong(肅宗) dynasty. And this fact perhaps represents the decline of the enthusiasm for performing Gaguan-Chinyeongrye.
    The actual case shows that the supporting party of Gaguan-Chinyeongrye, is only arguing the principle that the systems which were made by Juja and Confucian Sages, have to be followed to recover Gorye(古禮). Moreover, Gaguan-Chinyeongrye, which had the limits concerning its ritual itself and implementation problems, was more controversial than the original Chinyeong. In conclusion, Gaguan-Chinyeongrye, which was implemented in Choson dynasty, couldn't change the marriage form of Seorubuga(壻留婦家) while adding some complicated procedures, couldn't last for a long time.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3월 02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08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