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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興閔氏家乘記略』을 통해 본 17-18세기 여흥 민문의 형성과 가문 정비 (Research on the Formation of Yeoheung Min Family(驪興 閔門) and their Family Reorganization during the period of 17-18C, reviewed through 『YeoheungMinsi Gaseoung Giraek(驪興閔氏家乘紀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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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8 최종저작일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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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興閔氏家乘記略』을 통해 본 17-18세기 여흥 민문의 형성과 가문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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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사상과 문화 / 46호 / 277 ~ 315페이지
    · 저자명 : 김명숙

    초록

    17-18세기의 여흥 민문은 명성황후의 권력을 배경으로 ‘세도(勢道)’을 자행하였던 한말 여흥민씨의 선대로, 여흥민씨 중에서도 20세 민광훈을 파조(派祖)로 하는 삼방파(三房派)의 후손들을 의미한다. 여흥 민문은 13세 민충원대에 충청도 유성⋅회덕에 정착하여 재지사족으로서의 확고한 기반을 확립하는 한편, 사화기에 과거를 통하여 중앙정계로 진출하여 훈구파와의 대립과 갈등 속에 사림파로 성장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7세기에는 민광훈을 파조로 하는 삼방파의 인물들이 독자적인 문중 활동을 전개하면서 여흥민씨 본관 전체를 주도하는 지도적인 집단이 되어, 송시열⋅송준길의 제자이자 서인정권을 주도하는 정치적 동지로서, 또 서인의 ‘국혼물실(國婚勿失)’을 실현한 외척으로서 당대 최고의 유력 가문으로 부상하였다.
    이에 17세기 이후 여흥 민문은 명문(名門)으로서의 가격(家格)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양한 문중활동을 전개하였다. 즉, 선영(先塋)의 정비와 족보 간행, 종회(宗會)의 구성과 가사(家史) 정리 그리고 가내 의절(儀節)의 정비가 그것이다. 여흥 민문은 17세기에 3세 민의(閔懿) 묘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선영 정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가계의 계통이 체계화되었다. 1671년(현종 12) 『신해보(辛亥譜)』의 편찬으로 가계의 종적 질서와 같은 세대 인물들의 횡적 질서가 정비됨으로써 여흥 민문 구성원들의 일체감과 동질감이 보다 현실감있게 가시화되었다. 혈연의식을 느끼는 동족 간의 일상의 유대를 보다 긴밀하게 다지기 위한 종회와 족계(族稧)가 여흥 민문의 본향인 여주의 신륵사와 선묘(先墓)가 있는 유성과 회덕에서 거행되었다. 특히 민진원은 숙종⋅영조대의 급변하는 정국 속에서 종회의 물적 기반이 되는 족계를 결성하고 여주와 회덕 지방 여흥 민문의 족적 결속을 강화하고자 노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17-18세기의 중앙 정계와 재지사족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후손들에게 선조와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가풍(家風)을 형성하기 위한 정신적 자산으로서, 행적이 두드러지거나 유고(遺稿)를 남긴 선조를 중심으로 가사 등 문중의 전적(典籍)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광훈의 직계 후손인 삼방파가 특화되었다. 17세기 중⋅후반 민유중이 편찬한 『가승(家乘)』, 민유중 사후 민진후가 증보한 『가정문견(家庭聞見)』, 그리고 1744년(영조 20) 민유중의 손자 민익수가 『가승』과 『가정문견』을 토대로 편찬한 『여흥민씨가승기략』이 그것인데, 이는 여흥 민문 조상들의 빛나는 업적을 후손들에게 교육함으로써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 편찬되었다. 17세기 중⋅후반에 시작된 여흥 민문의 가사 정리 작업은 민유중-민진후-민익수 3대에 걸쳐 약 1세기 만인 18세기 중반에 와서 종합적으로 정리되었으며, 바로 그 과정은 삼방파가 주축이 된 여흥 민문이 여흥민씨 본관 전체를 주도하는 지도적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띠게 되는 과정이었다.
    17세기 이후 명문으로 자리잡게 된 여흥 민문은 종족 구성원의 일상적인 행동을 단속하는 가내 의절을 마련하였는데, 이는 사대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명문으로서의 가격(家格)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여흥 민문이 가내 의절에서 강조한 것은 가정 내에서의 효우공검(孝友恭儉)과 관료로서의 충청정직(忠淸正直)이었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구체적인 제식(祭式)이 갖추어진 여흥 민문의 제례는 세칭 ‘군가(君家)의 제례’라고 칭해질 정도로 위엄있고 질서정연하게 거행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여흥 민문의 동족의식을 확인하고 결속을 강화하였다.

    영어초록

    Yeoheung Min family in the period of 17-18C is the ancestor of the Yeoheung Min family who was the family in power in the last period of Joseon Dynasty and the descendants of Sambang sect(三房派), the originator of which is Min Gwang-Hoon(閔光勳) of 20 years old among Yeoheung Min family. Yeohueng Min family settled down in the regions of Yuseong(儒城) and Hoideuk(懷德) of Chungcheong(忠淸) Province in 16C and established the base as a re-acknowledged patriot family register while growing as Sarim(士林: Confucian scholars) sect confronting and conflicting with Hungu(勳舊: Meritorious Subjects) sect after being positioned in the central government through the state examinations around the period of the massacre of scholars. In 17C, Min Gwang-Hun and his direct descendants unfolded independent activities in the family and became the initiative leading group who led the whole Yeoheung Min family members, and thus emerged as the most influential family at that time as disciples of Song Si-Yol(宋時烈) and Song Jun-Gil(宋浚吉) and political partners who led the Seoin(西人) and as a family from which a queen was selected.
    After 17C, Yeoheung Min family improved their family burial ground area(先塋) to maintain the dignity of their family and published a book called 『Sinhaebo(辛亥譜)』 in 1671 to visualize the sense of unity and identity for all Yeoheung Min family members. In Yuseong and Hoideuk of Chungcheong Province where there was Shinreuk(新勒) Temple in Yeoju(驪州) and ancestors graves as their original hometown, Jonghoi(宗會: Periodic family meetings) and Jokgye (族稧: Mutual-aid society for the family) were held for close ordinary contact and cooperation among family members, and in 1744 Min Ik-Su(閔翼洙) published the book called 『Summarized History of Yeoheung Min Family Succession』 for the purpose of giving education about and pride for their family by providing education to their descendants and prepared a book called Ganai-euijeol (家內 儀節: Guideline for Ceremony and Etiquettes in their Family) to control and monitor the ordinary behaviors of the members in their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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