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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中村健太郞의 언론활동과 내선융화운동 (Nakamura Kentaro’s press activities and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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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7 최종저작일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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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中村健太郞의 언론활동과 내선융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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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국립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인문사회과학연구 / 21권 / 3호 / 21 ~ 54페이지
    · 저자명 : 배병욱

    초록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는 1881년 경 구마모토현(熊本縣)에서 태어나, 극우정당 국권당(國權黨)의 조선회에서 조선어를 배웠다. 1899년 구마모토현의 조선어학생으로 파견되어 3년 과정을 수료한 후, 일어학교 교사 등으로 근무하다가,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한성신보사에 입사하여 조선어 신문을 발행하면서 전쟁수행을 도왔다. 이어서 동향 출신의 경무고문 마루야마 시게토시(丸山重俊)의 통역관보가 되면서 관계에 진출하였고, 한말 신문검열을 주도하였다. 강제병합 후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를 보좌하여 신문 통폐합에 앞장섰고,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 발행을 주재하였다.
    1922년 신문사에서 퇴사한 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와의 인연을 계기로 경무국 촉탁이 된 그는 1923년부터 조선인과 일본인 유지들로 구성된 동민회를 조직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어서 1925년 조선 불교를 친일화하기 위한 조선불교단을 조직하였고, 조선불교사를 설립하여 잡지 『조선불교』를 발행하였다. 동민회와 조선불교단은 실무자인 나카무라를 매개로 연속선 상에 있는 내선융화단체였다.
    나카무라는 1945년 패전까지 조선에서 50년을 살았기 때문에 조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조선어에도 능숙했다. 그가 취직하거나 이직할 때마다 고향 선배 등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고, 이런 점들은 내선융화운동을 주도하는 데 큰 장점이 되었다. 이렇게 조선에 대해 친숙했던 그였지만, 조선인의 민족성을 멸시하고 일본으로의 동화의 필연성을 적극 주장하였다. 또 1920년대에 조선인들 사이에 사회주의와 민족운동이 점차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 원인을 청년들의 사상의 위기라고 지적하고, 일본 불교에 동화되는 것이 해결책이라 보았다.

    영어초록

    Nakamura Kentaro was born in 1881 in Kumamotoken, Japan. And learned Korean language at the Joseonhoe in Kokkento, the ultraright political party. He was dispatched to korea as a Korean language student from Kumamotoken in 1899. After working as a Japanese language school teacher, he joined 『Hansungshinbo』 and published a Korean newspaper. He also served as an interpreter for a police advisor who from his hometown. And led the newspaper censorship in Korea. In the 1910s, he worked for Gyeongseong Ilbo and Maeil Sinbo. Those were the orga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fter resigning from the newspaper office in 1922, he became the part-time employee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owing to a relationship with Saito Makoto. And since 1923, he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organizing the Dongminhoe, which consists of Korean and Japanese leaders. In 1925, he organized the Joseon Bulgyodan to make korean buddhist a pro-Japanese. And established ‘The Joseon Bulgyosa’ to publish a magazine called 『Joseon Bulgyo』. The Dongminhoe and the Joseon Bulgyodan were the representative groups of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Movement that established in the 1920s. Until now, we couldn't find common ground between the two groups, other than that they campaigned for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at the same time. However, if you look at Nakamura who the working-level official, you can see that there were a lot of similarities in intentions of establishment.
    Nakamura was well aware of Korea and fluent in Korean because he lived in Korea for 50 years until 1945. Whenever he tried to get a job or change his positions, he had helped a lot from his acquaintances in Korea like his hometown seniors. these gave him a great advantage in leading the Japanese-Korean Reconciliation Movement. Although he was familiar with Korea, he despised the Korean ethnicity and actively advocated the necessity of assimilation into Japan. He also warned against the spreading of socialism and national movements among Koreans in the 1920s, pointed out that the main reason was a crisis of youth thought, and suggested the spirit of Japanese Buddhism as a solutio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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