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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소문 밖의 사람들― 미아리일대의 역사ㆍ공간ㆍ삶 (The People outside the Gate ― HistoryㆍSpaceㆍLife of Miari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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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3 최종저작일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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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소문 밖의 사람들― 미아리일대의 역사ㆍ공간ㆍ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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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수록지 정보 : 로컬리티 인문학 / 6호 / 91 ~ 130페이지
    · 저자명 : 김희식

    초록

    이 글은 20세기 도시의 역사를 저장하고 있는 미아리 일대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의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도시공간구조 속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타자화 되어 왔는지를 규명하는데서 출발하고자 한다. 조선시대까지 미아리지역은 한성부의 성저십리에 속하는 지역으로 국왕 호위와 도성보호의 역할을 한 도심의 허파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공동묘지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명암은 바뀌어 갔고, 미아리 고개 넘어 지역은 산자의 공간 보다는 죽은 자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과 전재민들은 공동묘지 근처에 살기 시작했고, 195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4대문 안의 간선도로변 판잣집 강제철거를 시작으로 수재민, 화재민들을 이주정착지라는 이름으로 도심 외곽으로 집단이주정책을 펼쳤다. 첫 번째 대상지역이 미아리 지역이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달동네가 형성되게 되었다.
    1960년대 시작된 미아리 지역개발은 이 지역 경관에 새로운 변화의 상징이었다.
    길음교와 미아로 확장공사, 정릉천 복개구조물 공사로 인하여 정릉천과 월곡천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게 되었다. 이 공간의 한쪽에 속칭 ‘미아리텍사스촌’도자리를 잡게 됐다. 1990년대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는 길음동, 미아동, 하월곡동일대를 주거지로 만들어 놓았으며, 조망권이 높아질수록 속칭 ‘미아리텍사스촌’의 재개발문제와 더불어 환경공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2002년 시작된 뉴타운 사업의 확대로 근현대시기 동안 미아리 지역을 살아온 서민들의 역사, 공간, 문화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도심재생사업의 본격화로 인해 원주민과 도시 빈민들은 더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또한 수십 년 동안 가부장제와 공모하여성문화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온 속칭 ‘미아리텍사스촌’ 재개발 논쟁이 본격화되면서 성북구와 강북구는 미아리라는 지명을 강제말소 함으로써 균형 잡힌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미아리공동묘지, 원조 달동네, 미아리텍사스촌이라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삶의 흔적이 된 채 도시화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나 미아리는 근현대시기 동안 도시가 만들어낸 사회적 약자들의삶의 터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영어초록

    The historic and spatial change process in the Miari area, which wentthrough hardships of the twentieth century, is going to be examined and,by examining it, how the lower-class citizens were underprivileged andexcluded in the urban space structure is going to be discussed.
    Up until the Joseon Dynasty period, the Miari region belonged toSeongjeoshimri, the land outside of the castle within 10ri, which is about4km. Even though the Miari region had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means of protection for the king and the castle, after being designated asa public burial groun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the area became aland of the dead rather than the living. After the liberation from Japan,the Korean war broke out and the refugees from the war started to livenear the cemetery. After the war finished, in the late 1950s, thegovernment started to demolish the old shacks near the main roads insideof the Four Main Gates of Seoul and the refugees and the flood and firevictims were forced to move to the outside of the city under the name of"settlement". The first settling area was the Miari region and the poorhillside village was thereby formed.
    The Miari development in 1960s was a symbol of the change on thelandscape of the area. Jeongneung stream and Wolgok stream werecovered with the huge concrete structure because of the expansion work on Kileum bridge and Mia street and the stream coverage work onJeongneung stream. During that time, Miari Texas, the red-light districtin Miari, settled in that area. In 1990s, the Kileum-dong, Mia-dong, andHawolgok-dong area were turned into a residential area under the urbanredevelopment projects. As the prospect right became an important issue,the argument on the environmental pollution as well as theredevelopment matter about 'Miari Texas alley' was heated. The culture,space and lives of the common people have disappeared since the 'NewTown' project went on a full scale in 2002. As the city was fullyredeveloped, Miari Texas, the disgrace of the Miari area, was the mainfocus and the name 'Miari' was forcibly deleted and can not be foundanymore in Songbuk-gu and Kangbuk-gu. The name disappeared and sodid the chances to rewrite history of a well-balanced city and to create anew identity of the city. Being a shameful trace, Miari public burialground, the original poor hillside village, and Miari Texas alley havebecome a scar of urbanization. However, Miari should be regarded as ashelter for social minorities which urbanization brought about in moderntime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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