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대전 월평동 양이두의 재조명 (Reconsideration of the Yangidu in the Wŏlp'yŏngdong Remains, Taejŏn)

한국학술지에서 제공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다양한 논문과 학술지 정보를 만나보세요.
38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4.13 최종저작일 2020.06
38P 미리보기
대전 월평동 양이두의 재조명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음악사학보 / 64호 / 5 ~ 42페이지
    · 저자명 : 김성혜

    초록

    이 글은 1995년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유적에서 출토된 고대 현악기의 일부분인 ‘양이두(羊耳頭)’를 재조명하기 위해 시도한 글이다. 이 유물이 오늘날 가야금의 양이두와 모양이 같고, 출토지가 고대 백제 지역인 대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가야금 혹은 백제금의 양이두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출토된 유물의 시원(始原)과 친연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고, 단순히 현존하는 가야금과 출토된 지역에 편중한 결과인데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본고에서 월평동 양이두의 시원과 친연성 문제를 고찰한 결과 가야금과 백제금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가야금의 경우 초기 가야금의 구조를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시원을 가야금에서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제금일 경우 지금까지 출토된 백제금 관련 음악고고학 자료와 비교한 결과 백제금에는 양이두 구조의 현악기가 없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반면 신라토우에 나타난 현악기 12점 가운데 양이두 구조가 분명한 유물 3점과 비교한 결과, 구조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이 유물의 시원이 신라금에 있음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그리고 현수가 8현인 점은 4~5세기 신라금이 6현이었는데, 6세기 중엽 가야금의 영향을 받아 6~7세기에 8현으로 변화한 것이 바로 월평동 양이두로 해석하였다. 또한 이것이 8~9세기에 12현으로 변화하여 정착한 것이 정창원 신라금이라는 변화 과정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따라서 월평동 양이두의 시원과 친연성 문제는 ‘신라금’이라는 견해를 본고에서 새롭게 제시한다.
    아울러 이러한 신라금이 백제 영역인 대전에서 출토된 이유는 대전이 신라와 접경한 지역 때문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6~7세기 대전 지역은 신라의 서쪽 경계 지점에 위치했다. 이렇게 대전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보은과 옥천 그리고 청원 지역은 5세기에 모두 신라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6세기가 되면 진천(혹은 천안)과 충주(국원) 지역이 새롭게 신라로 편입되면서 이 지역에 경주(금성)에 있는 신라인들이 충청 지역에 주둔하여 신라의 생활문화가 이 지역에까지 전파되고 정착되었으며 확산된 점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신라의 이러한 지역과 접경한 대전은 신라의 물건이 쉽게 백제 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이며, 백제 사람들이 신라 물건을 구입하거나 습득하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신라금의 일부인 양이두가 대전 지역인 월평동 유적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인해 필자는 ‘월평동 양이두’가 6세기 중엽 가야금 12현의 영향을 받은 후 신라에서 변화시킨 ‘8현의 신라금’이란 견해를 새롭게 제시한다. 아울러 이 유물은 고대 신라금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물인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research is intended to bring attention to ‘yangidu’羊耳頭, a part of an ancient stringed instrument excavated in the Wŏlpy'ŏngdong 月坪洞 remains, Taejŏn 大田, in 1995. As the shape of this piece is the same as that of the current kayagŭm 伽倻琴 and it was discovered in Taejŏn, part of the ancient kingdom, Paekche 百済, most researchers regarded it as the yangidu of kayagŭm or paekchegŭm 百済琴. However, some researchers argued that it was a hasty conclusion based on the comparison with the current kayagŭm and the region where it was excavated without considering its origin and affinity.
    As a result of the research into the matter of its origin and affinity, it turned out that it is unlikely to be either kayagŭm or paekchegŭm. First of all, the structure of the early kayagŭm is unknown yet. Therefore, it is impossible to know whether it originated from kayagŭm. Second, in music archaeology records, not any of paekchegŭm is found built in the yangidu structure.
    However, among the 12 pieces of stringed instruments found in the Silla clay figures, there were three pieces that were assumed to be made in the yangidu structure. Since the structure of these three is almost the same as that of the yangidu discovered in Taejŏn, it was concluded that the Wŏlpy'ŏngdong yangidu originated from sillagŭm 新羅琴. While the Wŏlpy'ŏngdong yangidu has 8 strings, the sillagŭm in the 4th to 5th centuries has 6 strings. It could be assumed that the Wŏlpy'ŏngdong yangidu added two more strings owing to the influence of kayagŭm in the mid 6th century. The transformation of the Wŏlpy'ŏngdong yangidu, in turn, shed light on that of the Chŏngch'angwŏn's 正倉院(Shosoin in Japanese) sillagŭm that was transformed into the 12 stringed instrument in the 8 to 9th century. In conclusion, this research suggests that the Wŏlpy'ŏngdong yangidu originated from the sillagŭm.
    A sillagŭm was excavated in Taejŏn which used to be in Paekche territory because it is located near the border with the Silla dynasty. Especially in the 6th and 7th centuries, Taejŏn was located west of the Silla border. The nearby cities that are close to Taejŏn, such as Poŭn 報恩, Okch'ŏn 沃川 and Ch'ŏngwŏn 清原, used to belong to the Silla dynasty in the 5th century. Moreover, as Chinch'ŏn 鎮川(or Ch'ŏnan 天安) and Ch'ungju 忠州(Kugwŏn 国原) were incorporated into the Silla dynasty in the 6th century, many Silla people from Kyŏngju 慶州(Kŭmsŏng 金城), the capital of Silla, moved to the Ch'ungch'ŏng 忠清 area, transmitting the culture of Silla in the region. Therefore, yangidu is excavated in the region where the cultural and economical exchanges with a neighboring kingdom must have taken place on a daily basis.
    In conclusion, that ‘the Wŏlpy'ŏngdong yangidu’ should be a part of ‘the 8 stringed sillagŭm’ with the influence of the 12 stringed kayagŭm in the 6th century. It has an important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it is the only remaining piece that shows the developmental process of the ancient sillagŭm.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한국음악사학보”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1월 25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04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