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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실험실’로서 아프리카 식민지 -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의 독일령 동아프리카 전염병 현장조사를 중심으로 (1897-1907) (African colony as ‘laboratory of medicine’ - focusing on the German East Africa Expeditions by Robert Koch (1897-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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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2 최종저작일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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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실험실’로서 아프리카 식민지 -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의 독일령 동아프리카 전염병 현장조사를 중심으로 (1897-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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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독일사학회
    · 수록지 정보 : 독일연구 - 역사·사회·문화 / 53호 / 61 ~ 102페이지
    · 저자명 : 김필영

    초록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식민지를 ‘의학 실험실’로 이용한 한 사례연구로서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의 3회에 걸친 독일령 동아프리카 전염병 현장조사를 중심으로 독일 생체의학이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도입되면서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미친 영향과 그 반대로 생체의학 도입에 대한 원주민의 반응이 독일 식민보건 정책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했다.
    코흐의 1897/98년 제1차 현장조사에서는 림프절 페스트가 주된 연구 대상이었는데, 환자의 혈액과 조직 샘플을 얻는 과정에서 ‘폭력’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당시 식민 지배정책 기조가 강압적이었음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현장조사 지역의 정치적 상황이 생체의학 연구 협조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볼 때, 식민 지배와 의학 연구의 밀접한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1905/06년 제2차 현장조사 연구 대상은 말라리아였는데, 화학 치료 요법에 관심이 컸던 코흐가 원주민에게 말라리아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 키니네 투약을 처방한 것은 이미 말라리아에 면역이 된 원주민에게 오히려 면역을 상실케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06/07년 제3차 현장조사 연구대상은 수면병이었는데, 코흐는 부갈라 캠프에서 수면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고 아톡실을 치료제로 처방했다. 하지만 아톡실의 효과가 단기적이며 장기 처방 시 시력 손상이라는 부작용이 있음을 알게 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이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캠프 체류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동했다. 이것은 환자의 증상을 장기간 조사해야 하는 의학 연구에는 큰 문제가 되었고, 캠프 측도 이에 따라 격리를 완화하고 환자들에게 물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유인 정책을 동원했다. 부갈라 캠프를 모방하여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만들어진 키가라마 캠프에서도 캠프 운영자는 환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며, 그 결과 이 캠프는 독일 의사들이 주도하는 ‘의학 실험실’이 아니라 독일 식민세력, 지역 지배자, 주변 지역 주민들이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변화한 ‘하이브리드’ 공간이 되어갔다.
    아프리카 식민지가 ‘의학 실험실’로 이용된 것은 사실이다. 실험실 운영 과정과 결과에서 생체의학과 같은 유럽 학문이 아프리카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비대칭적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역시 유럽인과 유럽 학문에 반응하고 대응하면서 단지 ‘실험실’로만 남아있지는 않았다. 유럽인과 유럽 학문 역시 아프리카인의 반응에 따라 변화, 조정되어 나가면서 아프리카 식민지는 ‘하이브리드 공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어초록

    This is a case study of African colonies as ‘medical laboratories’, by German bacteriologist and Nobel laureate Robert Koch (1843-1910) who carried out three field investigations of infectious diseases in German East Africa (1897-1907), to observe how the German tropical medicine influenced the care of the natives and their responses to German colonial health policies and the changes of the latter.
    In the first field investigation in 1897/98, bubonic plague was the main research subject, and ‘violence’ was used in the process of obtaining blood and tissue samples from patients. This is not surprising considering that the stance of colonial rule at the time was coercive.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colonial rule and medical research is once again confirmed when we see that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field research area is determined by whether or not to cooperate with medical research.
    The subject of the second field study in 1905/06 was malaria, and Koch’s prescription of quinine as a preventive and treatment for malaria to natives was criticized for causing the loss of their immunity who were already immune to malaria.
    The subject of the third field study in 1906/07 was sleeping sickness, and Koch quarantined sleeping sickness patients at Bugala Camp and prescribed atoxyl treatment. However, the African natives, who learned that the effect of atoxyl is short-lived and causes side effects such as visual impairment when prescribed for a long time, responded flexibly to it and freely decided whether to stay in the camp. This has become a big problem for medical research, which requires long-term investigation of patients’ symptoms, and the camp has also mobilized incentive policies such as easing isolation and providing material incentives to patients. At Kigarama Camp, which was created in German East Africa to imitate the Bugala camp, the operator of Kigarama camp also used various methods to attract patients, and as a result, this camp was not only a ‘medical laboratory’ led by German doctors, it became a ‘hybrid space’ where the German colonial powers, local rulers, and the surrounding residents mutually influenced.
    It is true that African colonies were used as ‘medical laboratories’. It is also true that European studies such as biomedicine have had a great impact on Africa in terms of the laboratory operation process and results. However, although asymmetrical, Africa also did not remain just a ‘laboratory’, exchanging mutual influences with Europeans and European studies. Europeans and European studies also changed and adjusted according to Africans’ responses, so it can be said that African colonies became a ‘hybrid spac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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