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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 問慰行에 대한 對馬藩의 權現堂 供物 지급 요청 (Tsushima Domain's Request for the Gongendō Tribute to the Munwihaeng in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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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0 최종저작일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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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 問慰行에 대한 對馬藩의 權現堂 供物 지급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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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일관계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일관계사연구 / 61호 / 241 ~ 279페이지
    · 저자명 : 이해진

    초록

    본고에서는 1704년에 쓰시마번이 권현당(權現堂)에 대한 공물(供物)을 조선으로부터 지급받고자 한 사실을 검토하였다. 권현당이란 쓰시마번 내에 건립된 도쇼구, 즉 에도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을 가리킨다. 17세기 후반에도 쓰시마번은 도쇼다이곤겐에 대한 조선으로부터의 공양자금 제공을 명분으로 하는 외교・무역선인 권현당송사의 신설을 조선 측에 요청하였다. 쓰시마번은 줄곧 조선과의 관계 속에서 권현당을 활용해 번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고에서 주목한 1704년의 교섭도 그 연장선상에 해당한다.
    권현당 공물 지급 요청이 재개된 계기는 1701년에 있었던 권현당의 소실이었다. 당시 은거 중이었던 전 번주 소 요시자네는 권현당이 과거 막부에 청원하여 건립한 것이기 때문에 서둘러 재건해야 한다고 독려하였다. 이후 쓰시마번은 권현당의 소실과 그 재건 계획을 막부에도 보고하였다. 하지만 로주 아베 마사타케는 권현당 건립은 쓰시마번의 소관으로, 막부와는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는 요시자네가 주장한 권현당 재건의 당위성과는 모순되는 답변이었다. 더욱이 그 무렵은 쓰시마번의 재정난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결국 권현당의 재건은 중지되었다.
    그 후 사망한 요시자네의 조문을 위해 조선으로부터 도해한 문위행을 상대로 쓰시마번은 권현당 공물 지급 요청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쓰시마번의 움직임은 조선무역의 쇠퇴 등으로 인한 재정난을 타개하고자 한 시도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문위행의 귀국 후 이어진 교섭에서 권현당 공물 문제가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그 이유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사안이었기에 아명도서의 신설과 공작미 지급의 연한 연장과 같은 다른 요청사항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현당 공물 문제는 도리어 주된 교섭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어 유보되었다.
    권현당 공물 요청은 막부와 합의하지 않은 채 쓰시마번이 독자적으로 벌인 작업이었다. 그 목적은 막부나 도쇼다이곤겐에 대한 숭경이라기보다도 오히려 번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였다. 나아가 이러한 계획을 위해 막부와 도쇼다이곤겐이라는 존재마저 철저히 활용하였다는 사실은 조일관계 속에서 쓰시마번이 지니고 있던 독자적인 입장을 확인하게끔 해준다.

    영어초록

    This article examines the unfolding of events when, in 1704, Tsushima Domain planned to request of Joseon the initiation of the Gongendō tribute. The Gongendō was the Tōshōgū, viz., the shrine of the first shogun of the Tokugawa Shogunate (Tōshō Daigongen, Tokugawa Ieyasu) established in Tsushima Domain. Even in the late seventeenth century, Tsushima Domain requested of Joseon the founding of a diplomacy-trade ship for the Gongendō, that is, the Gongendō annual ship. This ship was to raise funds used for procuring the offerings devoted to the Tōshō Daigongen. Hence, even before the eighteenth century, Tsushima Domain was already using the Gongendō to their advantage when engaging in diplomatic negotiations with Joseon.
    In 1701, the Gongendō was destroyed by fire. Consequently, this prompted Tsushima to resume with the request for tribute. The former daimyō of the domain Sō Yoshizane, who at the time was retired, because the Gongendō had been established on a request to the Shogunate, encouraged that it should be restored as soon as possible. Thereafter, Tsushima Domain planned the restoration of the Gongendō and also reported this to the Shogunate. However, the Rōjū Abe Masatake replied that the restoration of the Gongendō had nothing to do with the Shogunate and that it was completely up to Tsushima Domain. This directly contradicted the legitimacy of the restoration that Yoshizane asserted. Furthermore, at that time Tsushima was starting to suffer from a budgetary crisis. As a result, the restoration project was aborted.
    After this, Tsushima asked the Munwihaeng who crossed the sea to mourn the deceased Yoshizane to mediate the affairs regarding the Gongendō tribute. This was one of the measures to resolve the budgetary crisis caused by the decrease in trade with Joseon. However, in the talks that took place after the Munwihaeng returned to Joseon, there were no official requests for the Gongendō tribute. This was because that compared to other matters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the Doseo (the bronze seal for the proprietor of the diplomatic right with Joseon) for the Tsushima heir and the extension for the provisions of official trade rice, the Gongendō tribute was of minor importance. Moreover, fearful that it could jeopardize the negotiation per se, Tsushima postponed proposing the Gongendō tribute as an agenda item in the talks that ensued.
    To summarize, the request for the Gongendō tribute was an autonomous action of Tsushima that was not under the influence of the Shogunate. The request was triggered by the concern to yield economic profits for the domain rather than by the motivation to venerate the Shogunate or the Tōshō Daigongen. Furthermore, Tsushima skillfully used the very existence of the Shogunate and the Tōshō Daigongen to accomplish its goals. This verifies the independence of Tsushima as a major participant in Joseon-Japan relation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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