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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당의 ‘君子國’ 인식과 歸崇敬의 使行 (The Recognition of Tang’s Noble Man Country(君子國) in the 8th Century and the Official Envoy of Gwisunggyeong(歸崇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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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0 최종저작일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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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당의 ‘君子國’ 인식과 歸崇敬의 使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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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고대사탐구 / 41호 / 315 ~ 350페이지
    · 저자명 : 박수정

    초록

    8세기 전반 당은 신라를 書記가 중국과 비슷하다 할 만큼 유학에 대한 이해가 있는 군자국이라 칭하면서도 한편으로 大國의 높은 학문적 성취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邢璹과 魏曜, 歸崇敬 등 『주역』, 예기 등 경전에 박학하고 講論에도 능한 인물들을 공식 사절인 弔冊使로 파견하고 이들로 하여금 경전과 학문을 전하게 하였다. 『도덕경』과 문서를 전한 형숙이나 『어주효경』을 가져온 위요와 달리 귀숭경은 관련 내용을 『삼국사기』 등에서 확인할 수 없으나, 『전당시』에 수록된 귀숭경 送詩를 통해와 그가 『대대례』를 신라에 전한 사실을 추지할 수 있다. 762년 즉위한 당 대종은 즉위 후 안사의 난과 토번의 공격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유학에 기반한 주변 세력 교화를 다시 한 번 천명하였는데, 768년 신라에 조제 및 책봉사로 파견된 귀숭경은 그와 같은 당의 분위기를 위의 있게 전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당의 군자국 인식은 당대 신라가 유학에 대한 소양이 높았다는 점, 신라가 그에 대한 자부심을 스스로 드러냈다는 점을 강조하며 8~9세기를 통해 일관되게 설명되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8세기 중반까지 당은 군자국 지칭의 이면에 있는 중화주의적 인식을 염두에 두고 당의 학문 수준이 신라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을 드러내고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8세기 전・중반의 군자국 인식은 9세기 중반 이후 군자국 인식과 그 이해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영어초록

    In the first half of the 8th century, Tang(唐) called Silla the Noble Man Country(君子國) that it was similar to China, but on the other hand, it was recognized as an object to be given a high academic achievement of China. Therefore, figures who were well-informed and proficient in the scriptures such as Hyeongsuk(邢璹), Weyo(魏曜), Gwisunggyeong(歸崇敬) were dispatched to the official envoy and sent to deliver the scriptures and studies. The role of Gwisunggyeong’ can be inferred through the poems contained in Jeondangsi(『全唐詩』) and he handed down Daedaerye(『大戴禮』) to Silla.
    Although the Tang's perception of the Noble Man Country(君子國) tends to be consistently explained through the 8th and 9th centuries, emphasizing that Silla had a high knowledge of studying abroad and showing its pride, Tang(唐) at least tried to show and recognize that the Tang's academic level was much higher than that of Silla in the 8th century. Therefore, it is judged that the perception of the Noble Man Country in the early and mid 8th centuries needs to be different from the understanding of that after the middle of the 9th centur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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