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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551년 한강유역 領有國 論議에 대한 검토 (Discussion on the Debate Concerning the Occupation of the Areas of the Han River, 475-551)

4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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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28 최종저작일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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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551년 한강유역 領有國 論議에 대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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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서울역사편찬원
    · 수록지 정보 : 서울과 역사 / 73호 / 5 ~ 49페이지
    · 저자명 : 김현숙

    초록

    475년 장수왕이 漢城을 攻陷시킨 후 551년 성왕이 한강유역을 되찾기까지 고구려가 이 지역을 領有했다는 것이 일제시기 이래의 통설이었다. 이에 대해 한성 함락 이후에도 백제가 이곳을 영유했었다는 연구들이 나오게 되었고, 다시 그에 대한 반론도 나오게 되었다. 2000년 중후반부터는 통설을 뒷받침해주는 고고자료들이 발굴됨에 따라, 한강 이남 지역을 고구려가 지배한 적이 없었다고 하는 설은 존립근거가 흔들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홍련봉 2보루에서 520년에 비정되는 ‘庚子銘’ 토기조각이 발굴되면서 백제영유설은 이제 종점에 다다른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새로운 자료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통설 그대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새로 제시된 자료들에 대한 해석도 달리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한강유역 영유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연구사상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향후 한강유역 영유국 문제 관련 논의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웅진기 한강유역 백제영유설 가운데 이 지역을 고구려가 전혀 차지한 적이 없었다고 보거나, 한강 이남 지역은 항상 백제 땅이었다고 보는 경우에는 보완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삼국사기」 지리지 漢州條의 고구려 군현 기사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근 기흥, 용인, 화성 등지에서 확인된 고구려계 석실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고구려영유설의 경우에는 무령왕대 한강유역 지배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고고자료의 경우 주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전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백제의 유물·유적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을 근거로 고구려가 시종 지배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이른바 ‘경자명’ 토기편은 글자 판독상 異見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절대 기준연대로 삼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아직 유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백제영유설이나 고구려영유설 모두 구체적인 지배양상에 대한 검토에 더 치중해야할 것으로 본다.

    영어초록

    Sinc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has been generally acknowledged that Koguryo occupied the areas of the Han River from 475, when King Jangsu attacked Hanseong 漢城, to 551, when King Seong recovered the region. After then, other scholars have asserted that after Koguryo attacked Hanseong, Baekje still controlled this region. Another refutation emerged to convert the argument of Baekje's control on the region. After the middle of 2000, archaeological materials supporting the prevalent idea were excavated. Therefore, the argument that Koguryo had never occupied the southern areas of the Han River came to be shaken. Moreover, the pottery fragment with the inscription of the gyeongja 庚子 was excavated at the second fortress of Hongryeon peak, which almost makes an end of Baekje's occupation theory on the region.
    However, despite the emergence of new data, there are still some aspects which do not let us accept the prevalent idea. Thus, this debate on who occupied the areas of the Han River has not been settled.
    The future discussion concerning the problem on which kingdom occupied the areas of the Han River should contemplate the following matters. As for the opinions arguing Baekje's occupation on the areas of the Han River during Ungjin period, if one suggests that Koguryo had never occupied the region, or the southern areas of the Han River had been always Baekje's territory, a complementary explanation is necessary. First, one needs to provide an interpretation of the Koguryo counties and prefectures written in the Hanju article of geography treatise in Samguk sagi. In addition, rational explanation is needed regarding the Koguryo-style stone chamber tombs confirmed in Giheung, Yongin, Hwaseong, and elsewhere.
    In the case of the opinion asserting Koguryo's occupation on the region, one should provide more concrete evidence because it is hard to believe the data showing Koguryo's occup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Also, as for archaeological data, it is unreasonable to believe that Koguryo kept control of the region because Baekje artifacts and relics have not been excavated yet. Because a complete archaeological excavation has not been carried out in the surrounding areas. And the so-called fragmentary pottery with the inscription of the gyeongja could be misread or suggest different opinions on the reading of the inscription. Thus we need to be careful about developing an argument based on the pottery inscription as a definite standard date.
    Whether it is the Baekje occupation theory or the Koguryo occupation theory, future studies should concentrate on determining the concrete conditions of governance of the area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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