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담론과 시각적 쾌락에 대한 논의: 영화 <색, 계>를 중심으로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명지대학교(서울캠퍼스) 인문과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인문과학연구논총 / 36권 / 3호 / 451 ~ 470페이지
· 저자명 : 송정경

초록

이안(Ang Lee) 감독이 2007년에 발표한 <색, 계>의 흥행은 동명의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안은 원작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언급한 바 있으나, 영화에 장 아일링(Ailing Zhang)의 단편소설에는 없는 여주인공의 개인사와 긴 정사씬을 추가함으로써 원작에 암시된 몸의 운용과 정체성의 관계, 연기와 주체성의 문제, 그리고 민족주의의 페미니즘적 전복을 구체화한다.
페미니즘 논의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확정짓는 것은 주체성 확립에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인공 왕 치아즈(Wang Chia-chih)는 영화 전반에 걸쳐 자신에게 주어지는 상황을 수동적으로 수용한다. 여러 정황과 요구에 밀려 선택한 배우 그리고 스파이로서의 정체성은 자신의 표적이자 연기의 상대방인 이(Yee)와의 성적인 관계에 의해 혼란을 겪는데, 결국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민족적 정체성과 분리시켜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고 이를 살리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선택은 일견 연기와 현실, 실상과 허상을 혼동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으나, 오히려 민족주의에 의해 주어진 대본을 거부하고 즉홍극을 시작하여 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성 본위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정사 장면이 과도하지 않은가에서 여성 재현이 문제시 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로라 멀비(Laura Mulvey)의 영화 이론에 비추어 분석해 보았을 때, 이 영화에서 성애 장면이 여주인공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 내러티브에 중요한 만큼, 멀비가 비판하는 “구경거리”(spectacle)의 과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안은 스파이라는 신분의 특성을 치밀하게 활용하여 여성의 주체성을 확립한다. 즉, 처음에는 치아즈가 볼거리의 대상이 되는 듯 하지만 감독은 남성의 시각 위주로 영화를 시작하다가 치아즈의 시각에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관객의 시선 또한 치아즈에 포섭되도록 유도한다. 남성 감독이 여성의 주체성을 조명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이민자적(diasporaic) 특징과 연관되며, 이를 위해 여성을 객체로 재현하기 쉬운 스파이 영화 장르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장르의 전복적 특징도 살펴볼 수 있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