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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유생 景晦 金永根의 생애와 북간도 항일 망명 (The Life of Confucian Scholar Kim Young-keun(金永根) and His Anti-Japanese Exile to North G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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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17 최종저작일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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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유생 景晦 金永根의 생애와 북간도 항일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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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49호 / 41 ~ 85페이지
    · 저자명 : 박민영

    초록

    전남 강진 출신의 김영근(1865~1934)은 조선 말기의 저명한 학파였던 화서학파 유생이었다. 그는 김한섭과 김평묵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김한섭은 김평묵, 유중교 등 화서학파 소속 학자들과 교류한 호남지방의 대학자였으며, 김평묵은 이항로(화서)의 수제자로 20여 년간 이 학파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김영근은 이 두 학자를 평생 동안 스승으로 섬겼다.
    김영근은 화서학파의 근거지인 중부지방에서 활동하던 화서학파 학자들과 동일한 항일관을 갖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항일관은 그가 화서학파의 학문특색인 철학적 원리론에 철저하게 입각해 있었기 때문에 형성될 수 있었다.
    김영근은 1905년 망국조약과 다름없던 을사조약 늑결을 계기로 1차 북간도 망명을 시도하였다. 이 조약 체결로 더 이상 국내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망명을 결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곧 귀국하고 말았다. 그뒤 1910년 나라가 망하게 되자 2차로 북간도 망명을 결행하였다. 이처럼 두 차례에 걸쳐 시도된 김영근의 북간도 망명은 일제의 국권침탈의 강도 또는 양상에 상응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궤적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 이러한 망명은 김영근이 유생의 신분에서 일제침략으로 훼손된 민족의 존엄과 역사의 자존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결행하였던 것이다.
    곧 김영근은 일제 침략과 강점으로 점철된 민족수난기에 가장 선명하고도 강렬한 반일투쟁 노선을 견지했던 화서학파의 성원으로서 시종일관 반일 사상·활동의 지향성을 가지고 일생 고단한 삶을 살았던 학자이며 지사였다. 또한 한반도 중부지방에 활동 및 세력 거점을 지닌 화서학파의 한 분파가 한반도 최남단인 호남 서남부지방에 부식되어 있던 사실과 그들의 활동양상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또 다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영어초록

    Kim Young-keun was a respected scholar from the renowned scholastic association at Kang-Jin, Cheolla-Namdo.
    Kim Han-sup and Kim Pyeong-Muk taught him. Both of them are respected scholar from the Cheolla province. Especially, Kim Pyeong-mook’s teacher was the famous Lee Hang-ro. For the rest of his life, Young-keun called these two scholar as master.
    Young-keun shared similar belief with other scholar at middle region regarding fighting back Japanese Imperialism. His theological ground was philosophical idea called Won-lee-Ron.
    Young-keun exiled to North Gan-do right after, Eul-sa Treaty which was designed to conquer Korea. This national tragedy forced him to stay no longer inside of Korean Peninsula which was about to be annexed by Japanese Empire. In 1910, finally, Great Han Empire totally lost it’s national rights. It was practically conqured by Japan being the part of Japanese Empire. After this calamity broke out, Young-keun exile to North Gan-do, for the second time. Exile of prominent figure of Confucius academy meant something to public. His behaviour was to regain nation’s pride that was taken from Japanese Empire.
    Thus, Kim Yeong-keun was member of Hwaseo Scholastic Group, and he endeavor to fight against Japanese force. His resistance wasn’t a easy choice. Also, Hwaseo association had influence on the southern tip of Korea through this scholar also bear important historical meaning.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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