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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년 安東 府北 周村戶籍 斷片에 나타난 挾居 新白丁의 삶 (The Life of Cohabiting Sinbaekjeongs(新白丁) Based on a Piece of the Census Register of the Juchon Village in Andong Bubuk in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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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15 최종저작일 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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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년 安東 府北 周村戶籍 斷片에 나타난 挾居 新白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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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 수록지 정보 : 古文書硏究 / 39권 / 59 ~ 103페이지
    · 저자명 : 김동진

    초록

    본고는 이전의 연구와 달리 경상도 안동부 부북 주촌 호적의 단편(1528)에 기재된 신백정 10명과 그들의 4조 20명의 내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백정에 대한 제민화 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16세기 전반기 경상도 안동지방에 거주하던 신백정의 사회적 위상과 일상의 삶을 해명할 수 있었다.
    ‘주촌 호적’에 기재된 신백정의 4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출생한 것은 고려 말이었고, 이들이 ‘신백정’으로 호적에 처음 등재된 것은 대체로 세종대로부터 성종대까지였다. 그 가운데 세종 년간에 등재된 인물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혼인을 통해 ‘주촌 호적’에 기재된 인물들의 사회적 위상을 살피면 사족→양인→노비→신백정의 방향으로 낮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신백정 개개인의 혼인에서도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가 열악하였음을 보여준다. ‘주촌 호적’에 기재된 신백정과 그 4조의 성명을 통해 시계열에 따른 백정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살펴보아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들의 지위가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대의 신백정 역시 전국에 분포한 신백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주촌 호적’에 기재된 신백정은 군적 편제시 협거(挾居)로 충정하기 위해 파악된 자료였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백정의 협거 유형은 유력 사족의 가내에 편입된 협인, 독립 가호를 유지하면 신백정끼리 혼인하는 협거, 독립 가호를 유지하지만 주호에 앙역하는 비의 비부 등의 3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1528년 이전에 작성된 군적에서 제1호인 이훈의 협거(=봉족)로 설정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1528년의 호적에 근거하여 작성될 군적에서는 새로운 호수(=주호, 정군)의 협거(= 봉족, 보인)로 충정될 수 있는 유동적인 상태였다.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1528년 안동부 부북 주촌에서 작성된 무자식년의 호적 단편에 나타난 신백정들의 사회경제적 위상은 조선의 각계 각층에 분포한 전체 백정 가운데서 가장 낮은 편이었다. 백정의 상당수는 사노비와 통혼하였고, 혼인과 성명에서도 사노비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양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주호의 역할을 하는 유력한 향촌 사족의 협거인에 차정되어 살아가고 있었고, 점차 사천화의 도정에 들어선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study analyzed the history of 10 sinbaekjeongs(新白丁) and 20 of their four-ancestores(四祖) recorded in a piece of the Census Register(1528) of the Juchon Village in Andong Bubuk, Gyeongsang‐do. Through this study, we attempted to explain the life of sinbaekjeongs living in Andong, Gyeongsang‐do in the 16th century, the period known to be highly successful in the policy for the civilianization of butchers.
    Among four-ancestores(四祖) of Sinbaekjeongs recorded in the Census Register of the Juchon Village, the earliest date of birth was in the late Koryo Dynasty, and it was generally during the reigns of King Sejong through King Seongjong that they were recorded in the Census Register as ‘sinbaekjeong.’ The largest part of them was recorded during the days of King Sejong. The social status of people who were recorded in the Census Register of the Juchon Village through marriage was demoted in order of noble→commoner→slave→sinbaekjeong. The marriage of individual sinbaekjeongs also shows their poor socioeconomic conditions. Moreover, when butchers’ socioeconomic status over time is examined based on the names of sinbaekjeongs and four-ancestores(四祖) recorded in the Census Register of the Juchon Village the results suggest that their status was lowered over the lapse of time. In addition, sinbaekjeongs in the register were socioeconomically lower than other sinbaekjeongs distributed throughout the country in those days.
    The record on sinbaekjeongs in the Census Register of the Juchon Village was to count them as cohabitants(挾居) in the organization of the army register. According to the record, there were 3 types of cohabitation of sinbaekjeongs: incorporation into an influential noble family; marriage between sinbaekjeongs while maintaining an independent household; and maintaining an independent household and working for the main household. They are highly likely to have been set as cohabitants(=subordinate households) of Lee Hoon, the No. 1 household in an army register made before 1528, and to have been counted as cohabitants(=subordinate households, subordinate workers) of new households (=main households, regular army) in the army register made based on the Census Register of 1528.
    Summing up, the socioeconomic status of sinbaekjeongs in the piece of the Census Register made in 1528 for the Juchon Village in Andong Bubuk was lowest among butchers distributed in various classes and areas of Chosun. A large number of butchers intermarried with private slaves, and their marriage and name were not much different from private slaves’ ones. However, they lived as cohabitants subordinate to influential private families maintaining the status of commoner and playing the role of a main household, and got on the road to gradual privatization and decline of social statu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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