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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寧王의 ‘更爲强國’ 선언과 大通寺 (King Muryeong's Declaration of ‘Gaeng-wi-gang-guk’ and Daetong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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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15 최종저작일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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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寧王의 ‘更爲强國’ 선언과 大通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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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고대사탐구 / 34호 / 279 ~ 314페이지
    · 저자명 : 길기태

    초록

    무령왕은 재위 21년(521)에 양에 표를 보내, “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되었다)”을 선언하게 된다. 여기서의 强國은 한성시기 백제의 전성기를 말한다. 이는 무령왕의 정치적 지향점이 한성시기에 있음을 말해준다.
    무령왕은 제방을 축조하고 인구를 추쇄하는 등 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정책 추진을 통해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밖으로는 고구려에 대한 강경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두게 된다. 외교적으로 양과의 관계도 중시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당시 수용되어 전개되고 있던 『열반경』의 恒常性을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고 있다. 무령왕은 이와 같은 일련의 정책들이 성공을 거두자 “更爲强國”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령왕대의 ‘更爲强國’은 선언은 선언적인 의미에서 나아가, 이를 지속시킬 수 있는 기념비적인 조치를 필요로 한다. 기념비적인 조치는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무령왕계 소가계의 신성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때 주목되는 것이 대통사의 창건과 불탑의 조성이다. 대통사는 527년에 완공되고 있는데, 그 출발은 무령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대통사에 조성된 불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왕권의 신성성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대통사에 불탑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은 양무제에 의해 창건된 동태사가 9층 탑을 건립하고 있는 것에서 찾아진다. 그리고 당시 동아시아에서 개인 저택이 사찰로 변화한 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찰에 불탑이 조성되고 있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불탑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신성성을 상징한다. 이러한 신성성은 의례를 통해 강조된다. 당시 의례로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신라에서 탑돌이가 있었던 기록을 통해 볼 때, 불탑 조성 시에 의례가 진행되었음은 물론, 이후에도 이 행사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위덕왕대에 능산리사원과 왕흥사지에서 사리 봉안의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 나아가 위덕왕대의 왕흥사지 사리함 명문의 내용은 사리의 신성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의례를 통한 왕권의 강화와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되며, 대통사에 조성된 불탑에의 사리 봉안 의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영어초록

    In his 21st year of reign (521), King Muryeong made offerings to the Liang dynasty and declared “Gaeng-wi-gang-guk (更爲强國 ; to become a great power again).” "Gang-guk (强國)" means Baekje in its prime during the Hanseong Period. This indicates that the political pursuit of King Muryeong was the state during the Hanseong Period.
    King Muryeong built up embankments and sought to find draft dodgers and slaves who ran away, promoting agriculture. He tried to stabilize the political situation by promoting such economic policies. At the same time, he maintained hard-line policies against Goguryeo. He won battles against Goguryeo many times. Diplomatically, he attached importance to the relation with the Liang dynasty. Ideologically, he pursued the idea of constancy in "Yeol-bangyeong (涅槃經)" which was widely accepted and distributed at that time. As a series of policies stated above succeeded, King Muryeong declared “Gaeng-wi-gang-guk.” However, ‘Gaeng-wi-gang-guk’ in the time of King Muryeong did not stop merely with the declaration but needed a monumental measure to continue that spirit. 'A monumental measure' could be to secure the sacredness of the family of King Muryeong in addition to strengthening his own sovereignty. In this regard, the foundation of Daetongsa Temple and the formation of Pagodas draw attention. Daetongsa Temple was completed in the year of 527, and its construction began in the time of King Muryeong. The Pagoda formed in Daetongsa Temple is also noteworthy. Since the Pagoda was used to hold Buddha's sarira, it symbolized the sacredness of the King's sovereignty.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 Pagoda was built up in Daetongsa Temple since the 9-story tower was being built up in Dongtaesa Temple founded by Liang Wudi during that period of time. Besides, in East Asia at that time, Pagodas were formed in almost every temple except temples that were built up originally as personal residences.
    Buddha's sarira held in such Pagodas symbolized the sacredness. As such, the emphasis on the sacredness was represented by rituals. Not many rituals during that period of time are known today. As it is known that there was a ritual of circling a pagoda in Shilla, it is thought that a ritual might have been conducted upon forming a Pagoda and that thereafter, similar events continued. The actual probability that there could have been a ritual is reflected in the fact that Cheongwangsa Temple was founded at Seongwangdae in Baekje. Since Cheongwangsa Temple was related to the Four Devas, it is thought that the ritual of the Eight Prohibitions was practiced during that period of time. In addition, traces of sarira enshrinement have been founded at Neungsanri Temple and Wangheungsaji back in the time of King Wideok. Inscriptions on the sarira casket at Wangheungsaji in the time of King Wideok emphasized the sacredness of Buddha's sarira. It is viewed that such rituals were connected to strengthening the king's sovereignty, and so was the ritual of sarira enshrinement at the Pagoda in Daetongsa Templ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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