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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도관찰사 이헌영과 달성향약 (Gyeongsang Governor Lee Heon-yeong and Dalseong Hyangyak during Port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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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14 최종저작일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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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도관찰사 이헌영과 달성향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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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수록지 정보 : 민족문화논총 / 64호 / 3 ~ 33페이지
    · 저자명 : 이광우

    초록

    조선시대 鄕約은 성리학적 자치 규범이었다. 在地士族들은 향약 시행을 주도함으로써 향촌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상호 간 결속력을 다져 나갔다. 향약은 자치의 명분이었지만, 관권을 대표하는 지방관의 통치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지방관도 고을 단위의 州縣鄕約을 직접 제정함으로써 효과적인 통치를 도모하였던 것인데, 조선후기 주현향약은 자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통치를 보조하는 관변적 향약이었던 것이다. 1891~1893년 慶尙道觀察使로 부임하였던 李永도 관내에서 향약을 비롯한 각종 교화 정책을 시행한 지방관이었다. 특히 大邱都護府는 監營이 소재한 곳이어서 어느 고을보다 이헌영의 교화 정책이 활발하게 시행되었으며, 그 중에서 향약의 규모가 가장 컸다. 이헌영의 권장에 따라 대구도호부에서는 達城鄕約이 제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관내 34개면 365명의 재지사족이 참여하였다. 경상도관찰사가 주도했기에 결성까지 대구 지역 재지사족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운영의 실제에 있어서 달성향약은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달성향약의 조직과 운영 규정을 보면, 향교와 면리 조직이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관치계통에게 자치계통인 향약 조직을 병행시켜 원활한 통치를 도모했던 것인데, 정작 달성향약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보하는 면약의 결성은 지지부진하였다. 면약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재지사족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여지가 많았으며, 결성된다 할지라도 향촌사회에서 재지사족의 영향력이 약화되어가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 실질적인 면약 운영은 보장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구 지역 재지사족들이 달성향약 제정에 적극 참여했던 것은 지방관과 함께 함으로써, 향촌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위치를 확인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현향약은 실질적인 운영과는 별개로 재임 중인 지방관의 권위를 높이고, 재지사족의 지위를 확인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현향약이 지방관의 임기가 끝나면, 달성향약처럼 그 시행이 유야무야 되었던 것이다.

    영어초록

    Hyangyak(鄕約) worked as neo-Confucian self-governing rules in Chosun. Taking the initiative in implementing hyangyak, Jaejisajok(在地士族) solidified their status in the society of Hyangchon(鄕村) and formed solidarity among them. Hyangyak was needed to justify self-governing, but it was also a means for ruling to local officials representing government authority. Local officials, too, institutionalized county-level Juhyeon hyangyak(州縣鄕約) in person to promote their ruling effectively. In late Chosun, Juhyeon hyangyak was regarded to proclaim self-governing, but in fact, it was hyangyak as government sources to aid their ruling. Lee Heon-yeong(李永) appointed as a Gyeongsang governor during 1891 to 1893, too, was a local official enforcing all sorts of reformation policies including hyangyak within the jurisdiction. Particularly, Daegu Dohobu(大邱都護府) was where Gamyeong(監營) was located, so Lee Heon-yeong’s reformation policy was enforced more actively than in any other county. The size of hyangyak was the biggest of all. Under Lee Heon-yeong’s recommendation, Dalseong hyangyak(達城鄕約) was institutionalized in Daegu Dohobu, and in that process, 34 myeon and 365 jaejisajok participated within the jurisdiction. Since it was led by the Gyeongsang governor, up to the organization, it was possible to gain positive responses from jaejisajok in Daegu. But in its operation, Dalseong hyangyak did reveal so many limitations practically. According to the organization and operation rules for Dalseong hyangyak, hyanggyo and myeonri organizations were connected. It was meant to promote smoother ruling by having the governmental control system undertake the self-governing system, the hyangyak organization, too; however, the organization of myeonyak guaranteeing the practical operation of Dalseong hyangyak was poorly done. In terms of myeonyak, there was great possibility of conflict in interests among jaejisajok residing in the region. Even if it was formed, within the social atmosphere in which jaejisajok’s influence became weaker in the society of Hyangchon, it was not possible to guarantee practical myeonyak operation. Despite that, Daegu jaejisajok strived to participate in institutionalizing Dalseong hyangyak because being with local officials did guarantee the position they had in Hyangchon. In other words, aside from the practical operation of Juhyeon hyangyak, it was a means to enhance the authority of local officials in service and make jaejisajok’s status firmer. Therefore, once the term of local officials expired, most of the Juhyeon hyangyak went into nothing just like Dalseong hyangyak.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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