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翁方綱이 추사금석학 형성에 미친 영향 (The Effect of Eong-bang-gang (翁方綱) on forming epigraphy of Chu-Sa(秋史))

37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3.12 최종저작일 2016.09
37P 미리보기
翁方綱이 추사금석학 형성에 미친 영향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서예학회
    · 수록지 정보 : 서예학연구 / 29호 / 63 ~ 99페이지
    · 저자명 : 이승연

    초록

    한국금석학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일은 19세기에 있었던 한중금석문의 교류와 연구이다. 이 시기는 청조를 방문했던 많은 문인들과 역관에 의해 금석학자들과의 교유가 확대되었고, 이를 계기로 금석문을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학풍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으로, 그 중심에 覃溪 翁方綱(1733~1818)과 秋史 金正喜(1786~1856)가 있었다. 이 두 학자의 교류는 韓中간의 금석 탁본의 교류와 서예사적 영향에 의해 추사금석학을 탄생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의 18세기 후반과 경화지역은 청대의 학문과 예술에 대해 관심이 증폭된 시기로, 추사는 1809년 10월 24세에 司馬試에 합격하여 生員이 되면서 아버지 김노경이 冬至副使로 연경에 갈때 子弟軍官의 자격으로 함께 중국에 가게 되어 40일간 머무르며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 짧은 기간동안 옹방강을 비롯한 曹江(?~?) ․ 徐松(1781-1848) · 阮元(1764~1849) ․ 朱鶴年(1760-1834) ․ 李鼎元(1749-?) ․ 李林松(?-?) 등과 만나면서 시서화는 물론 청조고증학을 받아 들이는 창구를 만들어 놓았고, 귀국후에도 이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하여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추사금석학을 체계화시켰다.
    특히 옹방강은 청대 최고의 학자로 조선의 젊은 청년과의 만남이 쉽지 않았으나 추사의 스승인 朴齊家(1750~1805)의 소개편지로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옹방강의 서재인 石墨書樓에서 중국의 귀중한 탁본진본과 진적을 볼 수 있었던 행운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추사는 금석학과 고증학에 전념하는 큰 계기가 되어 귀국 후에도 종종 서신을 나누면서 금석문을 분석하는 방법과 고증하는 과정, 제발, 쌍구의 체제를 지도 받았다.
    당시 조선은 금석학 분야의 심도 있는 연구보다는 금석문을 서법연마의 자료로 활용하거나, 탁본을 통해 완상의 대상으로 삼았던 게 전부였으나 추사가 금석학의 체계를 세운 이후부터 금석문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체계적인 연구를 하면서 고증과 분석을 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여러 학자들에 의해 많은 성과가 있었다.
    따라서 탁본첩의 제작이나 금석문 목록집의 편찬에서 더 나아가 금석문의 내용에 관해 釋文을 하고, 그 역사적인 유래와 의미, 서체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목록집의 경우에도 단순히 비석의 위치나 명칭을 기록하는데서 더 나아가 건립 시기를 추정하고 간략한 해제를 첨가하는데까지 나아가게 되었으며, 題跋文, 서예작품, 쌍구작품 등의 형태로도 분석결과를 남기게 되어 한국서예사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어초록

    The most noticable thing in history of Korean epigraphy is study and exchange of Korean and Chinese epigraphy in 19th century. In this time, social intercourse with epigrapher was enlarged by many literator and interpreter who visited the Ching dynasty and academic tradition trying to study epigraphy started to appear with this as a momentum. And there were Dam-gye Eong-bang-gang (覃溪 翁方綱, 1733~1818) and Chu-sa Kim-Jeong-hee (秋史 金正喜, 1786~1856) in the center of that. The interchange between these two scholars led to the birth of Chu-sa's epigraphy by intercourse between Korean and Chinese epigraphic rubbing and calligraphic effect.
    Kyung-hwa region of the late 18th century had a lots of interest in study and art of Ching dynasty. Chu-sa passed Sa-ma-si in October 24, 1809 and became saeng-won. He went to China for 40 days as child officer and studied systematically when his father, Kim No Kyung went to Yanjing as Dong-ji-bu-sa.
    In this short period, Chu-sa met Eong-bang-gang ․ Jo-gang (曹江, ?~?) ․ Seo-song(徐松, 1781-1848) · Wan-won (阮元, 1764~1849) ․ Ju-hak-yeon (朱鶴年, 1760-1834) ․ Lee-jeong-won (李鼎元, 1749-?) ․ Lee-im-song (李林松, ?-?) and made a window for accepting the study of ancient documents of Ching dynasty as well as poem, writing and painting. After coming back, he maintained continuous intercourse with them and systematized the epigraphy of Chu-sa with an enthusiasm to the new study.
    Especially, it was not easy to meet young man in Joseon as Eong-bang-gang was the greatest scholar in Ching dynasty but he met Chu-sa thanks to the introduction letter of Park-je-ga (朴齊家, 1750~1805) who was a teacher of Chu-sa. Also, he could luckily have a chance to see Chinese precious original copy of rubbing and real relics. It was a great opportunity for Chu-sa to concentrate on epigraphy and the study of the ancient, so they often sent letters to each other to learn the method of analyzing epigraph and studying historical evidence and system of Jebal and Ssang-gu.
    At that time, scholars of Joseon could only just use epigraph as a material of polishing writing style rather than intensive study on epigraph and regard an epigraph as appreciating object by rubbing. But, after Chu-sa systemize an epigraph, studying and analyzing epigraph systematically paid off by many scholars.


    So, they systemized epigraph as independent study as doing Jebal about epigraph and studying its historical origin, meaning and font making a headway from making rubbing book and lists of epigraph. Therefore, in case of lists of epigraph, they not only just write location or name of stone but estimate the contruction period and adding brief explanation so it had a great effect on developing Korean calligraphy history leaving the work of Jebal, calligraphic work and Ssang-gu work.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서예학연구”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 EasyAI 무료체험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10월 12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34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