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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照?澄과 明州 大梅法常의 法嗣 迦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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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15.03.25 최종저작일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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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照?澄과 明州 大梅法常의 法嗣 迦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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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 수록지 정보 : 동국사학 / 57권
    · 저자명 : 조영록

    목차

    Ⅰ. 서언
    Ⅱ. 北山 道義와 그 孫弟子 ?澄
    1. 廉居의 법을 이은 체징선사
    2. 洪州宗의 嫡長孫 도의조사
    Ⅲ. 체징의 입당구법과 迦智山門
    Ⅳ. 체징과 明州 大梅山 가지선사
    Ⅴ. 결언

    초록

    신라 道義禪師가 唐 西堂智藏으로부터 처음으로 南宗禪法을 얻어 왔
    으나 남방의 불교계에서는 이를 마설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이에 북방 설
    악산으로 옮겨 廉居에게 法을 傳하고, 염거는 다시 ?澄에게 전하여 그를
    宗祖로 하는 迦智山門이 비로소 열리게 된 것이다.
    ?澄은 도의의 心要를 얻은 뒤 다시 入唐하여 여러 지역으로 求法行脚
    을 펼친 뒤 귀국 후 迦智山門을 개창하였다.?迦智山寶林寺普照禪師碑文?
    에 의하면, 체징의 속성은 金氏이며, 804년 熊津 출생으로 어려서 불경을
    읽었으며, 827년에 具足戒를 받은 후 설악산 億聖寺에서 道義의 제자 廉
    居에게 그 法을 傳受하였다. 837년에는 同學 眞育 虛會와 함께 入唐하여
    여러 지역으로 巡歷하며 많은 善知識을 배알하였으나 “우리 祖師(道義)의
    가르침에 더 보탤 것이 없으니 수고롭게 더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하고
    840년에 귀국하였다.
    체징의 입당구법은 그의 나이 연부역강한 중반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의 불교교류는 張保皐船團의 해양활동이 왕성할 때 그에 힘입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山祖師 梵日은 그 1년 전(836)에 입당하여 6년 동안 鹽官
    齊安의 문하로 들어가 수행 중이었으며, 慧目山 玄昱은 같은 해 그리고
    桐里山 慧徹은 2년 뒤에 구법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그 무렵 일본 天台宗
    僧 圓仁이나 普陀山 開山에 공이 있는 慧? 등이 역시 登州나 揚州 혹은
    明州港을 드나들며 구법행각에 분주하였다. 체징의 비문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는 그의 在唐求法과 관계하여 어떠
    한 구체적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전등록? 10, ‘明州 大梅山 法常
    禪師 法嗣, 新羅國 迦(伽)智禪師傳’의 제목 아래 간략한 두어 마디의 문답
    이 있지만 여기서도 그를 체징과 관계 지어 볼만한 내용은 없다. 혹시 저
    들 兩師가 동일인일 가능성은 없을까? 만일 동일인으로 본다면 그에 합당
    한 몇 가지 조건을 따져보아야 한다. 첫째로 체징의 구법과 大梅法常의
    傳法이 동일한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었는가? 둘째 대매 법상선사와 가지
    산 선문의 법맥이 일치하는가? 셋째 명주 大梅山이 해외 구법승들이 접근
    하기 용이한 지역이었는가? 하는 문제 등이다.
    첫째 시기상의 문제다. ?송고승전? 권11, ?明州大梅法常傳?에 따르면,
    법상이 796년 天台山에서 明州 大梅山으로 옮겨 隱居修行하다가 836년,
    그의 나이 85세에 비로소 禪院을 세우고 본격적 傳法活動에 임하여 6, 7백
    명의 僧徒들로 성황이었으나 839년에 향년 88세로 示寂하였다. 법상의 傳
    法 3년 사이에 ?澄이 입당하였으므로 그 문하로 들어갈 수 있는 기간에
    해당된다.
    둘째 법계상의 문제다. ?전등록? 권7, ?대매산법상선사전?에 따르면,
    법상은 “大寂(馬祖) 의 ‘마음이 부처’라는 한마디에 大悟하였다”고 한다. 체
    징이 본국에서 염거를 통하여 배운 道義祖師의 가르침 역시 馬祖-西堂으
    로 전한 馬祖의 嫡統이다. 兩浙地方에서 각각 이름을 얻은 大梅法常과 鹽
    官齊安이 모두 마조의 直傳弟子였으니 같은 법통이다.
    셋째 구법 지역상의 문제다. 明州는 중국 동남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외국인들이 쉽게 드나들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승려와 상인들이 드나들
    기 용이한 海港으로서 중국에서 가장 오랜 동안 양국의 구법승들의 출입
    이 가장 잦았던 곳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체징은 入唐하자 중국 江南의 여러 叢林을 巡歷하기에 앞서 아마도 明州 大梅山 법상의 문하를 찾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의 입당 바로 1년 전에 法常老丈이 선원을 세워 그 명성이
    인근에 자자하였으므로 이 소식을 듣고 법상 문하에 들었을 가능성이 높
    다. 그러나 그 법이 道義의 가르침에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법상선사의 입멸 5개월 후 더 이상의 巡行을 접고 조기 귀국한 것이다.
    그는 귀국 후 고향에서 전법하다가 왕이 迦智山寺로 이거하기를 청하
    므로 860년 봄에 옮겨 法主가 되었다. 禪宇를 확충하고 法燈을 높이 달아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다가 880년 입멸에 드니, 왕은 시호를 普照, 塔號는
    彰聖이라 내리고, 사액은 寶林寺라 하였다. 이같이 그가 迦智山門을 개창
    하여 도의의 홍주종법을 크게 선양하니, 후일 이 소식이 중국 불교계에 전
    하여 ‘法常의 法嗣 가지선사’로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영어초록

    A Silia monk, Do’ui 道義, went to Tang China and attained Southern
    Chan teaching in the first time in history of Korea from Xitang Zhizang
    西堂智藏. But the Southern Chan teaching was considered to be the
    devil’s, and excluded from the Buddhist society at the time. Because
    of this refusal, Do’ui languished the northern mountains. From there,
    he had conveyed the Southern teaching to Yeomgeo 廉居, and then
    Yeomge conveyed it to Chejing 體澄. After Chejing had studied in
    Shilla, he entered Tang again, traveled various regions preaching the
    Buddhism, then he returned Silla and opened new Chan[Seon] school,
    Gajisanmun 迦智山門. According to his stele, he was born in the Kim
    family, at 804, in Ungjin 熊津. When he was young, he read the
    buddhist books. At 827, he had become the proper monk. After then,
    he was taught by Yeomgeo in the northern mountains. In the year of
    837, he entered Tang with his fellows. He traveled various regions and
    met a lot of Chan masters to study the teaching. But he thought that
    there is nothing to add to what he had learned in Silla, he came back
    to Silla in 840.
    The literatures including Chejing’s stele, there is no specific descriptions of his “trying to have a Buddhism’s law” while he was
    traveling around the regions of Tang. But there are some mentions
    about someone named Silla Master Gaji as a disciple of Damei Fachang
    大梅法常, who might be Chejing in the volume 10 of Zhandenglu 傳燈
    錄. Isn’t there that the possibility of the two Chan masters are same
    person ? If one wants to accept the possibility, one should consider
    the conditions which the possibility makes happen. First, it should be
    the time of the searching of the law of Chejing and the time of his
    Chinese teacher, Damei Fachang, are in same position of timeline.
    Second, are the thought of Fachang and that of Gajisanmun identical?
    Third, was it easy to access to Damei mountain 大梅山 in the Mingzhou
    明州 for the foreign Monks?
    The answers of the problems mentioned above bring the
    subsequent questions. First subsequent question is the timeline.
    According to the biography of Damei Fachang in the Sung gaosengchan
    宋高僧傳, Fachang was moving to Damei mountain in 796, where he
    was hiding from the world and studied. In 836, when he was the age
    of 85, Fachang was finally able to built his own temple and teach
    monks, but he passed away just three years after shortly. In this short
    three years, Chejing entered Tang and could be studied under the
    presence of Fachang. Second subsequent question is the problem of
    Chan lineage. According to Zhandenglu 傳燈錄, Fachang succeeded the
    teaching of Mazu Daoyi 馬祖道一. The teaching of Do’ui, which Chejinf
    learned was also the same line of Mazu Daoyi. The Third subsequent
    question is the problem of regions of “searching the law”. Mingzhou
    明州, whicih was main port city of east-southern china, was the port which could be easy access for foreigners, especially to the monks and
    traders of Korea and Japan.
    All the answers combined and considered, the possibility of Chejing
    could be a student of Fachang is probable. The year before the arrival
    of Chejing, Fachang built his own temple and have the fame around
    the areas. It could be possible that Chejing heard the fame and then
    became a student of Fachang. After the return from Tang, he gave the
    teachings in his homeland. Then the king asked him to move to a
    temple in Gajisan, in the spring of 860, to be the abbot of it. And he
    was given the title of Bojo Chan Master after his death by the
    Government. As the time passed, the news of his achievement spread
    to the Chinese Buddhism, it could be possible to say that he was
    recorded as ‘Silla master Gaji as a disciple of Damei Fachang’.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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