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중국의 역사와 문화
1.1. 상고시대의 신화와 전설
상고시대의 신화와 전설은 원시 인류의 가장 소박한 궁금증과 감성 충만한 상상력이 그려낸 이야기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삼오역기(三五歷記)』에 담긴 반고신화를 들 수 있다. 반고신화에 따르면 천지가 혼돈스럽고 계란과 같았는데 반고가 그 속에서 생겨나 1만 8천년이나 살았다. 천지가 개벽하여 밝고 맑은 것은 하늘이 되고, 어둡고 탁한 것은 땅이 되었다. 반고가 하루에 아홉 번씩 변화하였으니 하늘보다도 신령하고 땅보다도 성스러웠다. 『오운역년기(五運歷年記)』에도 반고신화가 나오는데, 반고가 죽으면서 그의 기운은 다양한 자연물로 변화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처럼 반고신화는 천지창조와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중국 고유의 창조신화이다.""중국의 상고시대 신화와 전설에는 다른 문화권의 창조신화와 유사한 모티프들이 발견되는데, 대표적으로 거인신체화생 모티프를 들 수 있다. 즉 거인의 신체가 변화하여 이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은 바빌로니아의 티아맛 신화, 인도의 뿌루사 신화, 북유럽의 이미르 신화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이는 인류 보편적인 창조신화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1.2. 삼황오제와 갑골문
상고시대의 신화와 전설에는 반고신화, 삼황오제 등이 대표적이다. 복희, 신농, 여와 등의 '삼황(三皇)'과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등의 '오제(五帝)'는 중국 고대 신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중국 역사와 문화의 기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특히 갑골문은 이러한 신화와 전설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이다. 갑골문은 중국 역사 상 가장 오래된 문자이며, 상고시대에 제사 의식과 국가 행정 등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 갑골문에는 곰, 사슴 등의 동물 모양과 함께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시 사회와 신앙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이처럼 삼황오제와 갑골문은 중국 상고시대의 신화와 역사, 문화적 전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이를 통해 당시 중국인들의 사고와 신념,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중국 문명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3. 주왕조와 천명사상
주왕조는 고대 중국에서 가장 장기간 지속된 왕조로, 중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왕조는 서주(西周, B.C.1066-771)와 동주(東周, B.C. 770-221)로 나뉜다. 서주는 주공이 세운 왕조로 예악(禮樂)을 바탕으로 중국 고대 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천명사상(天命思想)은 서주 시기에 확립된 주요 사상이었는데, 천명은 하늘이 내린 명령으로 천자가 이를 받아 통치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천자가 천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늘이 이를 징벌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이를 통해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동주 시기에는 춘추전국시대(B.C.770-221)가 전개되었다. 이 시기는 세분화된 국가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전쟁이 있었지만, 동시에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이 발전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공자, 노자, 묵자, 한비자 등 중국 사상사의 거목들이 등장하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천명사상은 후대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진시황제도 자신의 통치를 천명에 의한 것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주왕조와 천명사상은 중국 역사와 문화 형성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1.4. 진시황제와 통치정책
1.4.1. 한나라 체제 안에서의 통합
진시황제가 통일한 후 한나라는 진나라의 체제를 대부분 계승하였다. 진나라의 군현제 체제와 화폐, 도량형, 문자, 도로망 등의 통합 정책을 이어갔다. 그리고 법률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여 백성들을 하나의 법 아래 통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진나라의 정책을 바탕으로 한나라는 전국적인 통합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특히 한나라는 진나라와 달리 민심을 더욱 신중히 살폈다. 한나라 초기 황제 한고조는 12년 동안 5차례나 전국을 순행하며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고 소통하고자 하였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군현제 아래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화폐, 도량형, 도로망 등을 더욱 정교하게 정비하여 전국적인 경제 통합을 이루어냈다. 이를 통해 한나라는 진나라 시기보다 강력한 통일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나라는 진나라가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군현제, 법률, 경제 등 다방면에서 통합 정책을 더욱 체계화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한나라가 전국적인 통합을 견고히 하였기 때문이다.
1.4.2. 분서갱유와 유학자 탄압
진시황제는 제자백가 사상을 탄압하기 위해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진시황제는 현재의 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적 위험요소를 제거하고자 했던 것이다.
진시황제가 분서갱유를 단행한 배경에는 당시 치열했던 사상 논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자백가 시대에는 공자, 노자, 묵자 등 다양한 사상가들이 출현하여 각자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 간의 사상 논쟁은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유학자들은 통치의 정당성을 의문시하며 진시황제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진시황제는 이러한 사상 논쟁이 자신의 통치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지금 서생들이 현재를 배우지 않고 옛날만 배워 그것을 현재를 비난하며 백성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유학자들을 탄압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460명의 유학자들을 처형하고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을 불태워 버렸다.
이처럼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는 제자백가 사상을 탄압하고 자신의 독재적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