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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현대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
1.1. 김중업의 전통계승 방법론
1.1.1. 김중업의 건축배경
김중업은 1939년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17세의 나이로 요꼬하마 관립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나까무라 준빼이 교수로부터 건축예술에 대한 강의와 "너는 나와 건축 사이에서 낳은 귀한 자식"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건축에 대한 집념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르 꼬르뷔제를 알게 되었다. 1944년 귀국 후 각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고, 1951년 부산피난시절 문화활동을 하면서 예술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문총의 추천으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제1회 세계예술가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근대건축의 거장 르꼬르뷔제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4년간 파리의 아뜨리에에서 그의 문하생으로 지내며 건축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만남은 김중업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중요한 체험이 되었다. 그는 스승의 모든 것을 섭취하려 노력하였지만, 국내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근대건축의 거장 밑에서 건축 수업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것을 찾으려 변신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삶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결합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벅찬 감동을 주려 했으며, 물과 빛의 교향시를 즐겼다.
1.1.2. 김중업의 한국전통에 대한 생각과 방법
김중업은 전통건축과의 연결 개념으로 데포르메(deformer)라는 언급을 자주한다. 이는 김수근과 전통건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접근상의 차이를 대변한다.
김중업은 전통건축에 대한 이념형을 가지고 이를 형태적으로 변형시키거나 과장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즉 원형을 데포르메 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불어로 Deformer라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상태 또는 동작의 상실, 기점 등을 나타내는 de접두사와 무엇을 형성시키다는 의미의 former동사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이말을 사용할 경우 하나의 전형이 변형되거나 왜곡되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지만 예술 양식과 관계될 경우, 전형의 개방성과 견해의 다원성을 지칭한다. 김중업이 하려고 한 것이 바로 그 것이다. 그는 일생을 통해 한국 건축이 가지는 형태적 모티브에 집착했는데, 그것을 계속해서 과장하거나 왜곡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김중업의 데포르메 개념에 연장선상에서 그는 전통건축 가운데 지붕이 지니는 강한 조형성과 양감에 강하게 집착하였다. 이 점은 선적 이미지에 집착한 김수근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붕에 대한 김중업의 생각은 U.N.묘지 정문, 제주대학교 본관, 진해 해군공관을 비롯,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잘 표출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경성은 '여기서 표현된 전통미는 불국사 대석단의 구축미와 면분할, 다보탑의 구조미, 첨성대나 이조 항아리의 우직한 곡선 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정도이다' 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여기서 우직한 곡선은 바로 건물의 지붕선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김중업의 선에 대한 개념은 김수근과 일정부분 일치하기도 하고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김수근은 한옥에서 보이는 디테일의 세밀한 선을 중요하게 인식하였고, 김중업은 전체의 획과도 같은 굵은 선을 중요하게 인식하였다.
1.1.3. 김중업의 작품
김중업의 작품은 한국 현대 건축에 큰 족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들은 전통 건축의 형태적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중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U.N. 국립묘지 정문, 주한 프랑스 대사관, 제주대학교 본관, 88올림픽 조형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