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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후기 민중운동의 역사적 배경
1.1. 정치·사회적 변화
조선후기 사회는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먼저 17세기 말~18세기 초 여러 환국으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 현상이 나타났다. 환국은 정치집단 간의 세력 관계에 큰 변동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몰락한 측에서는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음모술수가 난무하게 되었고, 성리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등 기존의 유교 윤리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행태들이 나타났다.
또한 17세기 말~18세기 초에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동전이 전국적으로 유통되면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고, 이로 인해 토지의 상품화가 더욱 진전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토지의 집적과 겸병을 촉진시켰다. 이를 주도한 세력은 중앙 권세가와 지방 수령, 토호층이었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토지를 사들이거나 강제로 빼앗는 등 토지 집중을 이루어갔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노비들의 투쟁이 활발해지면서 문제가 되었고, 신분제의 엄격성이 흔들려 신분 간 이동도 활발해졌다. 특히 돈만 있으면 양인, 양반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났던 조선후기 사회는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누적되면서 점차 불안정해져 갔다.
1.2. 경제적 변화
조선후기 경제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동전이 전국적으로 유통되어 민간에서 몰래 돈을 만드는 것이 계속 문제가 될 만큼 널리 쓰였다. 이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18세기 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라 토지의 상품화가 더욱 진전되었으며 이 결과 토지의 겸병이 촉진되었다. 토지 집적을 주도한 사회 세력은 중앙 권세가와 지방 수령 등 관료층, 향촌에서 무단 지배를 자행하고 있던 토호층이었다. 권세가들은 막강한 권력과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값을 치르거나 또는 강제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전국의 토지를 집적해 나갔으며 지방 수령들도 토지 매입에 적극 나섰다. 이러한 토지 집중으로 농촌사회에서는 토지로부터 배제된 몰락 농민층이 광범위하게 창출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부세 운영 방식이 군현 단위로 총액을 매기는 것으로 재편되자 수령은 부세 운영에 적극 개입하여 수탈을 자행하였다. 특히 상공업 분야에서 새로운 이권이 형성되었는데도 공방, 군문, 아문, 토호, 권세가 수령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들 부문을 침탈하였다. 이에 따라 어민, 상인물주, 부상대고, 시전상인, 공물주인 등의 신흥 상공업세력은 국가에 대해 상공업세를 부담하고 다시 궁방, 토호, 권세가, 수령들에게 침탈 당하는 이중고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후기 경제적 변화의 핵심은 토지 겸병의 가속화와 이를 통한 토호층의 부의 집중, 그리고 상공업 분야에서의 권세가들의 사적 이권 추구로 인한 신흥 상공업 세력의 이중고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1.3. 사상적 변화
조선 후기 사회의 사상적 변화는 크게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성리학에 대한 실망과 불교, 풍수설 등 기복적이고 체제부정적인 사상의 영향력 증대이다. 17세기 말~18세기 초 정치적 불안정과 환국(換局) 등으로 기존의 유교 윤리에서 벗어난 행태가 나타나면서 일부에서는 성리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불교의 미륵신앙, 풍수설 등과 같은 기복적이고 체제 부정적인 사상이 일반 민중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둘째, 실학(實學) 사상의 대두이다. 17세기 말~18세기 초 급변하는 정치·경제·사회적 변화 속에서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는 실학 사상의 대두로 이어졌다. 실학자들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사고에서 벗어나 현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민중의 삶 개선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이들의 사상은 조선 후기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천주교 전래와 그에 따른 평등 사상의 확산이다. 17세기 말부터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신분제 타파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이 민중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천주교는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새로운 신념체계로서 작용했고, 이는 조선 후기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이처럼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성리학에 대한 회의, 실학 사상의 대두, 그리고 천주교 전래에 따른 평등 사상의 확산 등 다양한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는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새로운 이념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조선 후기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조선후기 농민항쟁의 유형
2.1. 변란(變亂)
변란(變亂)이란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집단이 무력(武力)으로써 국가권력 자체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고자 봉기하는 사태를 의미한다. 조선후기에는 17·18세기의 변란, 19세기 초의 홍경래란, 대원군 집권기의 이필제란 등이 대표적이다.
먼저 17·18세기의 변란으로는 숙종대 검계(劍契), 살주계(殺主契)사건과 미륵신앙사건, 갑술환국(甲戌換局)과 중인(中人)·서인(庶人)의 동향, 장길산(張吉山) 사건 등이 있다. 정석종은 이 변란들이 정치적 격변기에 발생한 사건으로서, 그 배경에는 봉건지배체제에 대한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과 피지배계급의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분석하였다. 이종범 또한 1728년 무갑란(戊甲亂)(이인좌의 난)을 연구하며, 이 난에는 다양한 사회 세력이 참여하고 있었음을 지적했다. 이를 통해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과 아울러 피지배계급의 불만이 변란의 핵심 동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변란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홍경래란을 들 수 있다. 홍경래란에 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그 주도세력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소전성오와 현상윤 등은 홍경래란을 단순히 정치적 성격의 사건으로 보았지만, 문일평은 지방차별 타파와 상민(常民)신분이라는 사회적 측면에 주목하였다. 이후 경제사 연구가 발전하면서 홍경래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었는데, 상인세력의 참여, 경영형 부농충의 주도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정치·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의 접근도 시도되었는데, 민본사상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