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세계 경제의 변화와 무역의 발전
1.1. 대항해 시대의 시작과 향신료 무역
대항해 시대는 향신료 무역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은 중국과 인도였으며, 전 세계 생산의 70%를 동양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 상인들이 동양의 향신료에 눈을 떴고, 이로 인해 향신료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서양 상인들은 부를 위해 아시아로 향했지만, 이슬람교도들이 직접 거래를 막았기 때문에 바다를 통해 동양과 거래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하면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동서양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당시 중국의 정화 대선단의 규모는 바스코 다 가마 선단의 100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바다에서 손을 뗐다. 비용이 부담되고 전통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유럽 세력은 바다를 기회로 보았고, 중국의 해상권이 무너진 틈을 타서 무력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동양의 부를 탐내면서 폭력적으로 무역에 끼어들었다. 포르투갈은 요새를 곳곳에 지어 포르투갈 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상인들을 무력으로 지배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서양이 해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패권을 장악하여 이익을 취한 것을 알 수 있다.
1.2. 설탕 무역의 확대와 노예제도
설탕의 대량생산 이전, 설탕은 매우 희귀해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설탕의 대량생산을 통해 엄청난 부를 얻은 나라가 있는 반면, 노예제도가 생겨난 원인 또한 설탕 대량생산이다.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압착하면 설탕을 생산할 수 있는데, 달콤한 맛의 설탕은 과일이나 꿀과는 또 다른 천상의 맛을 낸다. 사람들은 설탕의 맛에 열광했고, 설탕 공급자들은 더 많은 설탕을 공급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설탕 생산에 필요한 노동을 위해 자본가는 배로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강제 이주된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가의 재산으로 여겨졌다. 이윤 창출에 눈이 멀어, 타인의 권리와 그들의 고통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짝을 이룬 두 명의 노예가 하루에 밴 사탕수수는 4,200대라고 한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설탕기계의 일부로 취급받았다. 사탕수수 압착기는 하루 18시간 작동했는데, 잠시 졸거나 한 눈을 팔면 그 찰나에 분쇄기에 손가락이 들어가기도 했으며, 그럴 경우 압착기 작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팔을 칼로 잘라냈다고 한다. 또, 노예를 실고 나르던 배에 식량과 보급품이 떨어지자, 그 선장은 노예 133명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