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히틀러의 유대인 증오와 독일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히틀러와 나치즘
1.1. 나치즘의 형성 배경
1.2. 히틀러의 생애
1.3. 히틀러의 사상
1.3.1. 청년기 사회상황의 영향
1.3.2. 저작에 나타난 히틀러의 사상
1.3.3. 나치즘(Nazism), 나치스(Nazis)
1.4. 히틀러의 세계관
1.5. 히틀러의 전쟁관
1.6. 맺음말
2. 히틀러 리더십
2.1. 탐색부문
2.2. 상황이론으로 본 히틀러의 리더십
2.2.1. 리더십 스타일의 유형 분류
2.2.2. 리더십의 상황유형
2.3. 의사결정 상황 이론
2.3.1. 리더행동 유형 분류
2.3.2. 상황전략과 리더행동의 선택
2.4. 경로-목표 이론
2.4.1. 주도적 리더
2.4.2. 성취 지향적 리더
2.5. 수명주기 이론
2.6. 행동이론으로 본 히틀러의 리더십
3. 파시즘
3.1. 파시즘의 선전 방법
3.2.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성공 요인
3.3. 다른 국가의 파시즘 실패 요인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히틀러와 나치즘
1.1. 나치즘의 형성 배경
나치즘의 형성 배경은 다음과 같다.
나치즘은 19세기 말엽 유럽에 일반적으로 공통되어 있던 반유대주의·백색인종지상주의·국가주의·제국주의 및 반사회주의와 반민주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였다. 그 중심이론은 독일민족지상주의와 인종론이었다. 즉, 나치스는 게르만족이 인류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종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지배할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가장 열등하고 해악적인 인종은 유대인으로, 그들은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을 실시하더라도 그들의 천성적인 열등성과 해악성은 개선되지 않으며, 항상 주위환경을 부패시키거나 또는 해악을 만연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우수한 민족은 그들의 열악성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또는 절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본래 나치스의 근본사상은 국가주의적 경향, 중산계급과 지식인의 반민주주의적·권위주의적·민족주의적 경향, 특히 권위주의적·군국주의적 전통과 강렬한 국가주의 사상이었고, 나치스의 지지자로서는 항상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던 중산계급이 중심이었으며, 거기에 다시 군인으로 복원된 병사·장교와 중소농민, 노동조합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점원·실업자 등이 참가하여 나치스의 대중적 기초를 이루었다. 또한, 대자본가층이나 보수파 및 군부 등도 나치스와 공통의 목적, 즉 계급투쟁의 배격, 강대한 독일의 건설, 군비의 대확장과 군국주의적 국가건설, 독재정치의 수립, 경제발전, 민주공화제의 전복, 독일의 유럽 제패 등의 주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치스를 지지하였다.
세계 경제 대공황의 혼란기에 국민의 대다수가 나치스의 힘에 의해서 강대한 독일을 재건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치스는 독일의 제1당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합법적인 총리로 임명되어 독일 제3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하였다.
1.2. 히틀러의 생애
히틀러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히틀러(Adolf Hitler)는 오스트리아의 세관 관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Alois Hitler)는 처음 39년간 어머니 성인 시클그루버(Klara Pölzl)의 성을 그대로 사용했다. 히틀러의 이름은 어머니편과 아버지편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문에 뿌리박힌 이름이었다. 아버지 알로이스는 국민학교만 졸업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오스트리아 재무부의 세관원이 되었다. 그는 퇴직 후 오버외스터라이히의 수도 린츠 근처로 이사했고 아돌프 히틀러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히틀러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레알슐레(실업계 중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나빠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1906년 16세 때 학업을 중단하고 2년 동안 린츠에서 방황하다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그의 어머니도 이에 찬성했다. 1903년과 1908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지만, 히틀러는 부모의 유산과 국가의 고아연금 덕분에 생활에 큰 곤란을 겪지 않았다. 그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빈에 있는 미술학교에 2차례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그 후 몇 년간 빈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책과 신문, 소책자를 읽었고 역사·정치·민족 문제에 대해 공부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독일 군대에 지원하였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는 전령병으로 잘해내어 1,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919년 독일이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 히틀러는 연설자로서 나치당의 전신인 독일노동당 집회에 참가하며 정당의 선전부장이 되었다. 1921년 드디어 독재 권한을 지닌 나치당의 당수가 되었다. 1923년 뮌헨에서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체포되었고, 1924년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옥중에서 「나의 투쟁」을 집필하였다. 1932년 제국 의회 선거에서 나치당이 37.4%를 획득하며 집권에 성공했고, 이듬해인 1933년 대통령 힌덴부르크에 의해 수상에 임명되었다. 이후 히틀러는 지도자, 대통령, 제국 수상, 당총재 등 4개의 공직을 모두 소유하며 절대 권한을 휘둘렀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는 폴란드에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유럽 전역을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소련과 영국의 반격, 미국의 참전 등으로 전쟁 국면이 반전되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제국 수상청의 참호에서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하였다.
1.3. 히틀러의 사상
1.3.1. 청년기 사회상황의 영향
히틀러가 태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절대주의 국가로서 당시 민족문제로 고심했다. 독일인 대 귀족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치하에서 권력을 독점했고 관료, 군인, 대지주, 자본가, 교원, 지식인의 대부분은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세력을 확장한 마자르인, 체코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남슬라브인은 민족자치와 생활향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특히 20세기 초에는 독일인과 체코슬로바키아인 간에 격렬한 민족투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히틀러는 열렬한 독일민족주의자,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아리아인의 민족적 우월감을 기초로 한 그의 반유대주의는 중소상공업자와 중소농민으로 구성된 독일인 중산계급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원한이 왜곡된 형태로 표출된 것이기도 했다.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입장에서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와 계급투쟁이론에 반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선전활동과 직장조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독신자 합숙소에서는 하층시민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독일민족지상주의자이며 반가톨릭 교회주의자인 쇠네르파에 동조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이 제국 내에 있는 독일인 거주지역의 독일합병을 지지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이미 히틀러는 자신의 성격적 특성, 즉 원만한 대인관계의 실패, 기존 부르주아 사회와 비게르만인(특히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감, 성급하며 위협적인 격정, 가난과 실패에서 벗어나려는 열망 등을 보였다.
1.3.2. 저작에 나타난 히틀러의 사상
히틀러의 사상은 대부분 이전의 저작이나 그가 빈에서 생활할 때 배운 우파의 급진주의에서 채용한 것들로서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인종이나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불변적인 자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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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나치즘 클로드 다비드 (탐구당)
히틀러의 뜻대로『히틀러의 조력자들』 귀도 크놉 지음, 신철식 옮김 (울력출판사)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했는가 베빈 알렉산더, 함규진 옮김 (홍익출판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비리, 류한수 옮김 (지식의 풍경)
나치의 자식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슈테판 레버르트 지음 이열희 옮김 (사람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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