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퇴계이황 역사적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
1.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생애
1.1.1. 퇴계 이황의 생애
1.1.2. 율곡 이이의 생애
1.2.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 핵심
1.2.1. 퇴계 이황의 교육철학
1.2.2.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
1.3.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
1.3.1. 교육 가치의 핵심인 '이기론'의 차이
1.3.2. 퇴계와 율곡의 교육철학 공통점
1.3.3. 퇴계와 율곡의 교육철학 차이점
2.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이 주는 교육적 의미
3. 나의 신념과 철학
4. 나만의 교육철학
5. 느낀 점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
1.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생애
1.1.1. 퇴계 이황의 생애
퇴계 이황(1501~1570/연산군 7년~선조 3년)은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 등으로 나라가 피폐해지고 갈등이 난무하던 사화의 시대에 살았던 학자이다. 그래서 더욱이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힘쓸 수밖에 없었다. 이황은 경북 안동에서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홀어머니에게 길러졌으며, 그는 다른 유생들과 달리 시험에 나올 것들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깊은 뜻을 파고들었고 책을 이해하려 애썼으며, 학문의 본질적인 면에 집중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23세의 어린 나이에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었고, 1534년에 문과에 장원급제 하고 첫 벼슬로 외교 문서를 다루는 승문원의 보직을 맡았다. 그는 높은 학식과 능력 덕분에 궂은일도 성실하게 처리하며 중종의 사랑을 받아 여러 직에 거쳐 1539년 홍문관 수찬이 되었고, 1543년 성균관 사성으로 승진되었으며, 1548년 충북 단양 군수가 되었고 그 후에 경상도 풍기군수로 전임하게 된다. 퇴계 이황은 지방의 실정을 샅샅이 살피고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는 데 주저하지 않고 낱낱이 적어 중종에게 보고하여 이황은 불의의 타협하지 않는 행동가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이황은 성균관을 연구하는 일을 하였고, 56세엔 주자대전을 요약한 '주자서절요'라는 책을 집필하고 단양 풍기군수 시절에 서원들을 지원하였으며 이후 서원에서 성리학자들을 양성하였다.
1.1.2. 율곡 이이의 생애
율곡 이이(1536~1584/중종 31년~선조 17년)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학문적 소양이 깊었고, 인덕이 매우 높은 인격자로 칭송을 받던 인물이었으며, 1등을 했다고 기쁘워하는 이이에게 경쟁이 아닌 지식을 배워 백성들을 위해 올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이이는 학문에 더욱 힘쓸 수 있었고, 열세 살에 장원급제하게 되었다. 이후 아홉 번 장원급제하며 나랏일을 하게 되었다. 율곡 이이는 '고쳐서 새롭게 가는 시대'에 태어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여 년간의 관료 생활 동안 선조에게 올린 상소만 해도 70여 건이 넘고 바른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신하였다. 또한, 선조가 즉위하고 두 편으로 갈라선 당파싸움이 계속되어 이이는 화합을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이 몫이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을 염려한 이이는 백성을 돌아보며 생활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백성들의 생활을 고려하지 않는 세금 제도로 백성들의 삶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고 이를 본 이이는 가진 토지만큼 쌀로 세금을 내는 방법을 건의하게 되지만 지배층의 반발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훗날 '대동법'이라는 세금 제도로 이뤄지게 되었다. 또한, 이이는 10만의 군사를 길러 위급할 때의 방비로 삼으라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했고 이는 정약용 등 의 실학자들에게까지 이어져 조선 후기 군사 개편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2.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 핵심
1.2.1. 퇴계 이황의 교육철학
퇴계 이황의 교육철학은 '마음공부'와 '이의 실현'을 중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퇴계 이황은 필요한 것만 찾아서 학습하고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하는 학습은 진정한 학습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배움은 단순한 지식습득이 아니라 끈기를 가지고, 좌절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고, 변혁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곧 윤리 도덕을 밝히기 위함이고 사색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는 수양의 삶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하였다.
특히 퇴계가 주장한 '위기지학'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과 덕을 행하는 것을 도리로 삼는 것'으로, 겉보다는 속을 먼저 공부하기 시작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하는 것의 가치를 높게 샀다. 결국 퇴계 이황은 이의 실현을 중시했기 때문에 스스로 수양을 통해 속, 즉 본질을 바꾸는 것이 공부라고 하였고, 그 과정은 '은거 공부'를 중시했는데, 조용한 곳에서 바른 자세로 욕망을 절제하며 끈기를 가지고 애쓰고 시간을 들여 생각함으로써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윤리 도덕을 밝히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라고 주장하였다.
1.2.2.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
율곡 이이의 교육철학은 '중화'와 '입신행도로 충군보국하는 삶'을 중시했다. 즉, 율곡 이이는 마음공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몸의 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율곡 이이는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윤리적인 것을 배우고 실천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뭐든지 조화를 지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이는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는 진리를 먼저 배워야 하고 학문을 통해 본질을 알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바르게 지각하고 판단할 줄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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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自箴 』(『定本 』 제6책, 230). “人恒陷於惡,其謂之性善者,何也?人每行一善事,其心必愉然以快,豈 非適性故愉然乎?人每行一惡事,必欿然自蹙,豈非拂性故欿然乎?赤子入井,必急往援出,而 後安於心,鶂肉當前,必固辭不食,而後安於心,班斑同行,必分其重任,然後安於心,善人被 誣,必㬥其寃枉,然後安於心。凡遇此而不能行者,皆恧蹙不安,其安與不安,豈非適性與拂性 之故乎?故曰‘率性可以爲善’。”cited from 고승환. ‘다산 정약용의 감정론 연구 – 불안과 두려움을 중심으로 -’. 철학논집 제54집. 2018년 8월. Sogang Journal of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