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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사옥 건축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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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생성일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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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소개글

"공간사옥 건축 답사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김수근 건축의 세계
1.1. 건축가로서의 김수근
1.2. 작품 경향과 변화
1.2.1. 1960년대: 조형의지의 진솔한 표현
1.2.2. 1970년대: 조형의지의 완숙미와 자기어휘에의 고집
1.2.3. 1980년대: 새로운 기법의 시도
1.3. 김수근의 건축사상
1.3.1. 애정과 위엄의 건축
1.3.2. 네거티비즘과 공간개념
1.3.3.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이해
1.4. 대표작 분석
1.4.1. 공간사옥
1.4.2. 마산 양덕성당
1.4.3. 경동교회

2. 김중업 건축의 전개
2.1. 김중업 건축의 변천
2.1.1. 모방기: 르 코르뷔제 영향
2.1.2. 창조기: 주한 프랑스 대사관
2.1.3. 정착기: 1970년대 이후 작품
2.2. 김중업 건축의 특징
2.2.1. 건축언어와 디자인 전개
2.2.2. 조형원리: 곡선, 기하학적 원형, 공간의 연속성
2.3. 대표작 분석
2.3.1. 투겐하트 주택
2.3.2. 판스워드 저택
2.3.3. 860-880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
2.3.4. 시그램 빌딩

3. 승효상 건축의 전개
3.1. 건축가로서의 승효상
3.2. 설계방식과 특징
3.2.1. 분석적 방법과 논리성
3.2.2. 한국 전통건축의 계승
3.3. 대표작 분석
3.3.1. 이문291
3.3.2. 환기미술관
3.3.3. 경동교회

4. 국외 건축가 3인의 건축세계
4.1.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4.1.1. 건축사고와 주요개념
4.1.2. 대표작 분석
4.1.2.1. 낙수장
4.1.2.2. 임페리얼 호텔
4.1.2.3. 존슨 왁스 회사
4.1.2.4. 라킨 빌딩
4.2. 미스 반 데 로에
4.2.1. 건축경력과 주요영향
4.2.2. 대표작 분석
4.2.2.1. 바르셀로나 독일관
4.2.2.2. 투겐하트 주택
4.2.2.3. 판스워드 저택
4.2.2.4. 860-880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4.2.2.5. 시그램 빌딩
4.3. 르 코르뷔지에
4.3.1. 건축적 배경과 주요이론
4.3.1.1. 아르 누보의 영향
4.3.1.2. 데 스틸의 영향
4.3.1.3. 구성주의의 영향
4.3.2. 주요이론 및 건축적 특징
4.3.2.1. 모듈(Modulor)
4.3.2.2. 도미노 시스템
4.3.2.3. 5형식
4.3.3. 대표작 분석
4.3.3.1. 빌라 사보이
4.3.3.2. 라 투레트 수도원

본문내용

1. 김수근 건축의 세계
1.1. 건축가로서의 김수근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로, 그의 건축은 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건축계는 물론 문화계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특히 1966년 그가 창간한 종합문화예술지 '공간'은 건축을 장려하고 다양한 문화적 이슈를 발굴하며 그의 활동을 대변했다.

김수근은 1931년 2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요시무라 준조와 다까야마 연구실에서 수학했다. 그가 30세의 이른 나이에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전에 1등으로 당선되면서 건축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 한국 현대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김수근 건축의 시대별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초반의 그의 작품들은 "조형의지의 진솔한 표현"이 두드러졌다. 자유센터, 타워호텔, 부여박물관 등의 작품에서 강렬한 조형성과 대담한 구조 표현이 나타났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는 "조형의지의 완숙미와 자기어휘에의 고집"이 특징이었다. 이 시기에 공간사옥, 서울대학교 예술관, 마산성당 등을 설계하며 자신만의 건축어휘를 확립해나갔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기법의 시도"가 돋보였는데, 공릉사옥, 국민은행 전산본부, 법원청사 등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김수근은 건축가로서의 역량 뿐만 아니라 건축사상 또한 독특하게 발전시켰다. 그는 '애정과 위엄의 건축'을 추구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건축물에 대한 위엄성을 함께 강조한 것이다. 또한 그는 '네거티비즘'이라는 개념을 제기하며, 건축이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전통 한국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김수근의 대표작으로는 공간사옥,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등이 있다. 공간사옥은 그의 건축적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국의 전통적 공간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마산 양덕성당과 경동교회 역시 전통 건축의 요소를 도입하면서도 현대적 건축 언어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종합해보면,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을 이끌어온 선구자적 인물이자, 건축을 통해 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했던 종합예술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1.2. 작품 경향과 변화
1.2.1. 1960년대: 조형의지의 진솔한 표현

김수근은 1960년대 초 국회의사당 건축 현상설계에 당선되면서 건축계에 등단하였다. 당시 한국 건축계에서는 내로라하는 많은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하였지만, 30세라는 이른 나이의 김수근이 당선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채 무산되면서, 그는 1963년 자유센터를 통해 첫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1960년대 초반 김수근의 작품은 르 꼬르뷔제의 건축에서 영향을 받아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특징을 보인다. 자유센터가 대표적인 예로, 좌우 대칭 구도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워커힐 호텔 내 힐탑바와 부여박물관에서도 노출콘크리트에 대한 그의 집념이 드러났다. 이처럼 1960년대 초반 김수근의 작품은 자유와 권위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이고 조형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이러한 작품경향은 김수근이 국회의사당 설계에서 천명한 건축관을 잘 보여준다. 그는 국회의사당을 '민의의 전당'으로 규정하면서, 민의에 대한 애정과 권위를 동시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초기 작품들에는 애정과 위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부여박물관을 둘러싼 '왜색시비'로 인해 전통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이 본격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김수근은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그의 건축세계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2.2. 1970년대: 조형의지의 완숙미와 자기어휘에의 고집

1970년대 초반 김수근의 작품은 '조형의지의 완숙미와 자기어휘에의 고집'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기였다. 그는 196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있던 건축 언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 김수근은 1971년 공간사옥, 1974년 서울대 예술관, 1976년 덕성여자대학 캠퍼스, 1977년 마산성당, 문예회관, 샘터사옥, 해외개발공사 등 다수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에서 그의 건축적 어휘와 공간 구상은 한층 완숙해졌으며, 그만의 독창성도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특히 1971년 완공된 공간사옥은 이러한 변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사옥은 그동안 김수근이 추구해온 '인간적인 건축'과 '전통건축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그의 건축사상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내부는 스킵플로어로 처리되어 경계가 모호해지고 공간이 유동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외관은 검은 벽돌과 담쟁이덩굴이 어울러져 전통성과 자연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김수근은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언어를 구축해 나가고자 했다.

또한 이 시기 김수근은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등 종교 건축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이들 작품에서 그는 한국 전통 건축의 공간 구성 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하였는데, 특히 진입로와 주 공간의 구성, 빛의 처리 등에서 독창성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순히 외형적인 모방이 아닌 정신적 맥락에서의 계승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처럼 1970년대 김수근은 자신만의 건축 언어와 공간 구성 방식을 정립해나가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바탕으로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모색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현대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1.2.3. 1980년대: 새로운 기법의 시도

1980년대 초반의 김수근의 작품에서는 이전 시기의 기본적인 건축어휘와 그 범위를 확대하여 수용하는 새로운 기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국민은행 전산본부(1981), 공릉사옥(1985), 법원청사(1985), 뉴 자이언트 호텔(1985) 등을 들 수 있다.

국민은행 전산본부와 연관하여 김수근은 올림픽 실내경기장 설계에서 High-Tech 건축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 응용디자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의 새로운 건축적 이념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공릉사옥의 경우 '공장과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가 1970년대에 선보였던 원서동 공간사옥에 대응되는 개념이었다. 이것은 그의 'Negativism'에서 천명했던 내외가 윤리적으로 통합된 공간, 공간의 가변성을 담을 수 있는 형식, 그리고 기분 공간을 남기면서도 현대의 기술적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는 개념의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김수근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해서 그의 기본적인 건축언어를 확장하고 실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부터는 건강 악화로 인해 더 이상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 김수근의 건축사상
1.3.1. 애정과 위엄의 건축

김수근은 자신의 건축을 "애정과 위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서 당선되며 건축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국회의사당을 "민의의 전당"이라고 정의하며, 민의는 곧 국민에 대한 애정이라고 보았다. 동시에 국회의사당에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건축물이 국민들에게 권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수근은 건축물에 자신의 개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는 끊임없이 외국의 건축 언어를 차용하여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특히 1960년대 작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 형태는 당시 유행했던 근대 건축의 향을 짙게 풍겼다.

하지만 1960년대 말 부여박물관을 둘러싼 왜색 논란은 김수근으로 하여금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 전통건축의 공간과 조형미에 주목했고, 특히 최순우와의 교류를 통해 전통건축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공간사옥에서는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과 마당, 대청마루와 같은 공간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등의 종교 건축에서도 한국 전통의 공간 구성과 매개 공간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김수근의 건축에서는 애정과 위엄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공존한다. 그는 건축을 통해 국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권위와 기념성을 지닌 건축을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1.3.2. 네거티비즘과 공간개념

김수근은 건축에 있어서 "네거티비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네거티비즘은 인간의 무한한 요구를 충족시키며 그와 함께 지구상의 모든 것이 인간화되는 데에 사용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고양시키기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가르쳐준다.

네거티비즘의 공간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생활공간의 한계성에 관한 것이다. 소모되지 않은 자원이 무제한으로 공급될 수 없으므로, 필요 이상의 공간을 차지해서는 안 되며 자연공간의 이용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공간이용의 윤리 문제에 관한 것이다. 공간을 이용할 때 남에게 미치는 해를 고려해야 한다. 제한된 공간을 안과 밖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통합공간을 만들고, 공유공간을 최대한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공간의 기능과 형태에 관한 것이다. 기능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차기능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어떤 고정된 기능에 얽매이지 않는 기분공간, 구조적 가변성을 갖춘 자궁공간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네거티비즘은 건축 행위가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며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김수근의 건축사상을 나타낸다. 그는 이를 통해 건축이 단순히 기능적이거나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회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종합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3.3.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이해

김수근은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건축언어와 건축철학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는 최순우와 함께 고건축 답사를 시작하면서 한국 건축이 가지는 공간과 조형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최순우는 김수근에게 한국 전통건축의 본질을 바로 보게 해주었는데, 그 핵심은 한국 건축이 "가장 자연에 가깝고 인간적"이라는 점이었다. 김수근은 이를 통해 인간적인 건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전통에 대한 이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공간사옥에서 김수근은 한옥의 마당과 대청마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했다. 입구는 여러 골목길로 나뉘어 있고, 낮은 계단을 타고 들어가면 마당이 펼쳐진다. 공간 로비 또한 한옥의 대청마루를 연상시키는데, 여기에서부터 각 공간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각 공간은 반층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연결되어 경계가 모호해져 공간이 유동적으로 변한다.

또한 마산 양덕성당에서는 한옥 마을의 골목길에 담긴 무형의 이야기를 건축화하는데 성공했다. 좁고 긴 진입로를 통해 신자들이 마음을 가다듬도록 유도하는 것은 전통 사찰의 진입 방식을 참조한 것이다.

이처럼 김수근은 한국 전통건축의 본질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구축했다. 그가 추구한 "인간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건축은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4. 대표작 분석
1.4.1. 공간사옥

공간사옥은 김수근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수근은 이 건물을 통해 그동안 추구해왔던 한국적 건축언어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우선 입구부터 특징적이다. 몇 개의 골목길로 나뉘어진 입구를 통해 낮은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마당이 펼쳐진다. 공간 로비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나오는데, 이는 한옥의 대청마루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로비에서부터 각 공간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어,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은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낯선 골목길에 섰을 때의 흥분감을 느끼게 해준다.

각 공간은 반 층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연결되는데, 이렇게 잘게 부숴진 공간으로 인해 층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공간이 유동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또한 중심부에 원통형 구조물을 배치하여 공간에 변화와 긴장감을 더했다.

이처럼 공간사옥은 마당, 대청마루, 골목길 등 한국 전통 건축공간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구현한 작품이다. 김수근은 이를 통해 한국의 공간 개념을 건축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이 건물은 자신의 사옥을 건축하면서 건축주의 제한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7-8년에 걸쳐 두 차례의 설계 과정을 거치면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당시의 건축경기 침체로 인해 기념비적이고 국가적 성향의 작품을 요구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을 탐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공간사옥은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자, 김수근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1.4.2. 마산 양덕성당

마산 양덕성당은 1978년 김수근이 설계한 작품으로, 그의 건축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성당은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김수근이 처음으로 종교 건축물을 설계한 작품이다.

마산 양덕성당의 계획대지는 마산 중심축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 환경이 공장과 주택 등으로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김수근은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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