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조선의 수신사 파견
1.1. 1차와 2차 수신사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모두 4차례에 걸쳐서 수신사를 일본에 파견하게 되었다.
첫 번째 수신사로 파견된 인물은 김기수이다. 187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김기수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예조 참의로 임명되어 수신사에 선발되었다. 그는 76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의 근대화 모습을 둘러보고 귀국 후 이를 기록한 『일동기유』를 저술하게 된다. 『일동기유』는 총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을 떠나 일본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 일본에서의 견문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김기수가 처음으로 목격한 기차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어, 한국인이 작성한 철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 수신사는 김홍집이다. 김홍집은 1880년 3월 23일 수신사에 임명되어 일본에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김홍집은 황준헌이 작성한 『조선책략』을 가지고 왔는데, 이 책은 청의 대외 정책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 큰 파급 효과를 미쳤다. 『조선책략』은 중국의 조선에 대한 지배 정책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개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홍집이 이를 가지고 돌아오자 개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게 된다.
이처럼 1,2차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와 김홍집은 일본 견문록 및 중국의 정책 제안을 가져와 조선 내부의 개화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를 통해 조선은 서구 문물과 근대화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1.2. 3차 수신사 조병호
제3차 수신사 조병호는 조선과 일본 간의 무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81년에 일본에 파견되었다. 조병호 일행은 1881년 8월에 부산에서 일본 상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은 무관세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조병호에게 전권이 위임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세칙 협상을 보류시켰다. 이에 조병호의 수신사 일행은 무관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되었다.
조병호의 수신사 파견은 조선과 일본의 무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일본 측의 태도로 인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는 당시 조선이 일본에 비해 약자의 입장에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3. 4차 수신사 박영효
제4차 수신사 박영효는 조선이 일본과 맺은 제물포 조약 5조에 의거하여 파견되었다. 1882년 8월, 박영효가 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제물포 조약은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으로,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 조선의 자주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조선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었다.
박영효는 전권대신 겸 수신사로서 일본을 다녀온 후 '사화기략(使和記略)'을 저술하였다. 그는 일본으로 향하는 도중 배 안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당시 조선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준다. 제4차 수신사로 임명된 박영효의 활동은 조선이 근대화를 추진하며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정립하고자 한 고종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김기수와 일동기유
2.1.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 및 일동기유 작성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인물은 김기수이다. 김기수는 1876년 예조 참의로 임명되어 76명의 사절단을 인솔하여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김기수는 일본에서 견문한 바를 기록한 일동기유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19세기 말엽 조선의 개화자강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김기수는 187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듬해인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수신사로 임명되었다. 76명의 사절단을 인솔하여 일본에 가게 된 김기수는 일본의 문물을 시찰한 후 조선으로 돌아와 일동기유라는 기행문을 집필하였다. 일동기유는 모두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기수가 1877년 곡산군수로 재직할 때 저술한 것이다.
일동기유는 김기수가 일본에서 견문한 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철도와 관련된 내용이 주목된다. 김기수는 일동기유에서 "화륜차는 반드시 철로로 가게 되어 있다. 길은 심한 높낮음이 없으니, 낮은 데는 높이고 높은 데는 편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양쪽가의 수레바퀴 닿는 곳은 편철(片鐵)을 깔았는데 이 편철의 모양이 밖은 들리고 안은 들어가서 수레바퀴가 밟고 지나가도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라고 기술하며, 기차의 모습을 "양쪽 차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면면(面面)이 서로 보고 인사를 하자마자 기차는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니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서운하게 놀랄 뿐이다."라고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이는 한국인이 작성한 철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수가 저술한 일동기유는 당시 개화자강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본에서 경험한 근대화된 문물과 제도를 조선에 소개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철도의 도입과 관련된 내용은 이후 고종 및 대한제국의 근대화 정책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2.2. 일동기유의 내용
일동기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동기유는 1876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기수가 일본의 문물을 시찰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모두 4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김기수가 1877년 곡산군수로 있을 때 저술하였다.
일동기유의 제1권에서는 사회, 차견, 수솔 등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조선을 떠나 일본에 도착하기까지의 상황을 기록하였다. 제2권에서는 완상, 결식 등의 항목으로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보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였다. 제3권에는 궁실, 성곽, 인물 등 9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보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였다. 제4권에는 문사와 귀조, 환조, 후서가 실려 있다.
일동기유에서 김기수는 기차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기차를 "양쪽 차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면면이 서로 보고 인사를 하자마자 기차는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니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서운하게 놀랄 뿐이다."라고 묘사하였다. 또한 그는 기차가 반드시 철로로 가게 되어 있으며, 수레바퀴가 편철을 밟고 지나가도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김기수는 기차가 복선으로 달리고 있어 오는 차와 가는 차가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고 기록하였다.
이처럼 일동기유는 김기수가 일본에서 본 다양한 문물, 특히 철도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 19세기 말엽 개화자강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3. 서세동점과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
3.1. 시대배경
당시 조선 사회는 60여 년간 지속된 세도 정치의 폐단으로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왕권이 크게 약화되었다"" 특히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수탈이 심화되어 민생이 파탄에 이르렀다"" 이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이 전국적으로 농민 봉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862년 진주에서 발생한 임술 농민 봉기가 삼남 지방 각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편 해외 열강들도 조선에 대한 통상 요구를 끊이지 않았다"" 이미 1832년 영국 국적의 로드 암허스트호가 최초로 통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이양선들이 조선에 출몰하여 통상을 요구하였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 조선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던 것이다""
3.2. 각국의 동향
각국의 동향은 다음과 같다.
청(淸)은 1840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하여 난징조약(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