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동아시아의 역사갈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동아시아의 역사인식과 갈등
1.1. 중국의 동북공정
1.1.1. 동북공정의 정의
1.1.2. 동북공정의 추진배경
1.1.3. 동북공정의 추진과정
1.1.4. 동북공정의 연구과제와 성격
1.1.5. 최근의 동향
1.2. 한국의 대응
1.2.1. 학계의 대응
1.2.2. 시민단체의 대응
1.2.3. 정부의 대응
1.3.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1.3.1. 임나일본부설의 정의
1.3.2. 임나일본부설 주장의 근거
1.3.3.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반론
1.3.4. 변형된 임나일본부설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동아시아의 역사인식과 갈등
1.1. 중국의 동북공정
1.1.1. 동북공정의 정의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문화가 중국의 영역이었음을 논증, 강화하기 위해 시작된 국책 학술사업이다. 학술사업 초기에는 중국 사회과학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 주관하여, 중국의 변경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사업으로 소박하게 출발하였다. 이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과 전망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의 규모와 성격이 확장되었다. 2002년 11월 중국 공산당 16대 대회보고에서 동북지역의 발전전략이 제기되었고, 2003년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정부공작보고에서 정책이 정식으로 제안되었다.
1.1.2. 동북공정의 추진배경
동북공정의 추진배경은 크게 여덟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소수민족 문제이다. 동북공정은 단일한 사업이 아니라 서북공정, 서남공정 등 중국 변강 지역 연구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중국이 변강 지역의 역사와 현안문제에 대한 학술연구를 대규모로 시행한 이유는 한족을 제외한 변강 지역의 소수민족 문제가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체제 붕괴에 따른 소수민족들의 독립 열망이 중국 내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에,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중국은 소수민족을 흡수하고 동화하여 장차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화민족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둘째, 중국이 고구려사에 대한 남북한 학자들의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을 위협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한국과 북한 학자들의 고구려사 해석이 중국 동북 지역 조선족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논리 개발에 역점을 두고 동북공정을 추진하였다.
셋째,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발언태도이다. 한국인들이 동북지역을 방문하면서 '만주고토 회복'과 같은 발언을 하자, 중국은 이것이 동북 지역 조선족의 정체성을 혼란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넷째,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위기 상황이다. 북한의 대규모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로 인해 '중·조 국경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중국은 판단했다. 또한 북한 정권이 붕괴되어 남한 중심의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중국에 불리할 것을 우려하였다.
다섯째, 북한 붕괴 이후 통일 한국정부가 간도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다. 간도 지역은 일제 강점기 중국에 넘겨졌지만,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들이 간도를 한국의 고토로 간주하면서 영유권 문제가 대두되었다. 따라서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간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여섯째, 동북 변경 지역의 국제 정치경제적 중요성이다.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동북 변경 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해졌고,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작용했다.
일곱째, 신중화제국주의의 부상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중화적 세계질서의 회복을 실현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즉, 동북공정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패권을 모색하는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북 지역개발 문제이다. 중국 정부는 낙후된 동북 경제를 재건하고자 동북공정을 추진했는데, 이는 국토의 균형 발전과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1.1.3. 동북공정의 추진과정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문화가 중국의 영역이었음을 논증, 강화하기 위해 시작된 국책 학술사업이다. 동북공정의 추진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1997년에는 중-북 변경지역에 대한 현지조사 단계를 거쳤다. 이 시기에는 북핵 문제와 탈북자 증가 등 북한의 정세 불안정이 주요 현안이었다. 변강사지 연구중심은 중국 동북지역의 연구 주제를 한반도 형세변화가 동북지역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주로 탈북자들의 증가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중점을 두었다.
다음으로 1999년부터 '동북공작기구'가 조직되었다. 이는 '동북공정'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조직이었다. 변강사지연구중심은 '동북공작기구'를 운영하며 중앙 및 동북지역 당정기관, 학술단체들을 동원하여 관련 연구를 실시했다.
마지막으로, 2001년 6월에는 '동북변강역사와 현상연구공작세미나'가 장춘시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동북공정의 마무리 단계로, 중앙 및 동북지역의 당정기관과 학술단체가 대거 참여한 대규모 행사였다. 연구자들은 연구 성과, 연구역량 부족, 연구비 부족 등을 토로하며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후 변강사...
참고 자료
동아시아의 평화와 역사교육, 안병우, 한국역사연구회
동아시아 역사갈등 해결할 실마리는?, 세계일보
김한규, 2015, 『동아시아 역사 논쟁』, 소나무
노태돈, 2014, 『한국고대사』, 경세원
조법종, 2007, 『이야기 한국고대사』, 청아출판사
동북아역사재단, 2009, 『역사 속의 한일관계』, 동북아역사재단
이준성, 2017, 「동북공정 종료 후 중학계의 고구려 ‘대외관계사’ 연구 동향」, 한국고대학회
조광 · 손승철, 『하나의 역사, 두가지 생각 - 한일역사의 쟁점 2010 1 · 2』, 경인문화사, 2010
윤명철, 『역사전쟁』, ㈜안그라칙스, 2004
송기호, 『동아시아의 역사분쟁歷史紛爭』, 솔, 2007
여운건 · 오재성, 『동북공정과 고대사 왜곡의 대응방안』, 한국우리民族史硏究會, 2006
이인철,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백산자료원, 2010
박걸순, 「주변국과의 역사전쟁 – 新中華主義와 植民史觀의 外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