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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시대와 가야의 등장 및 형성
1.1. 삼국의 건국 신화
삼국의 건국 신화는 각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 때 삼국의 건국의 신화가 공통적으로 시조가 하늘에서 온 알에서 나오는데 이는 왕이 곧 하늘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시조를 나타낸 이유는 알에서 나온 건국신화를 통해 시조와 그의 자손들은 하늘의 자손이며 그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유가 충분하며 자격이 있음을 보이고자 시조를 신성시하게 꾸몄다.
고구려 건국 신화가 가장 오래 전에 기록되어(광개토대왕비) 전해 내려왔다. 백제와 신라의 건국신화는 삼국사기를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건국 년도가 가장 빠르게 나타나 있는데 이는 김부식이 신라를 중점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신라의 건국 년도가 가장 빠르게 서술되어 있다.
1.2. 고구려의 등장과 형성
고구려는 BC 37년에 동부여에서 내려온 주몽 집단이 혼강 상류에 '졸본'이라는 곳에 세운 나라이다. 주몽은 고구려의 초대왕인 동명성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주몽이 독보적으로 나라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주몽이 속한 부족인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총 5부족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다. 따라서 고구려는 5부족연맹체국가로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졸본천에 이르렀고, 그곳의 토지가 비옥하고 산하가 준험한 것을 보고 마침내 그곳을 도읍으로 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처 궁실을 짓지 못하여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이에 따라 고를 성씨로 삼았다.
졸본의 명칭은 「삼국사기」에서는 '졸본'이라 기재되어 있지만, 광개토 왕릉 비문에는 '홀본'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삼국사기가 오랜 시간 뒤에 기록하면서 지명 이름을 부르는 발음이 변화되면서 홀본에서 졸본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졸본의 위치는 현재의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 번시 시(本溪市) 환런 현(桓仁縣) 요녀산성으로 유추되고 있다.
이후 고구려는 여러 역대 왕을 거치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유리왕(BC19~18년) 때 압록강 연안의 국내성(지린성 지안시)로 천도하였고, 태조왕(53~146년) 때 영토를 확장하여 동쪽으로 옥저를 복속시키고 서쪽으로는 중국 한사군 지역까지 진출하려고 노력하였다. 고국천왕(179~197년)은 왕위 계승을 부자상속으로 바꾸었고 5부를 행정구역으로 개편하면서 족장세력을 관료로 흡수하였다. 소수림왕(371~384년)은 북방민족과의 우호관계 강화와 함께 내정 정비에 힘썼다. 특히 불교를 수용하고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하는 등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고구려는 5세기에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1.3. 백제의 등장과 형성
백제는 온조왕과 비류왕 두 명의 시조를 가지고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의 시조를 온조왕 혹은 비류왕이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중국 사서인 「북사」와 「수사」에서는 구태라는 사람이 백제를 건국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온조 시조 신화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 온조왕은 그 아버지가 추모인데 혹은 주몽이라고도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는데, 부여 왕에게 둘째 딸을 아내로 맞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고, 주몽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온조라 하였다. 주몽의 친아들 유류가 왕위를 이어받자 비류와 온조는 부친의 왕위를 다툴 수 없어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갔다. 온조는 한강 이남에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라 하였으며, 후에 백제로 고쳤다.
비류 시조 신화에서는 비류왕의 아버지가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라고 전한다. 우태는 소서노의 딸 연타발을 아내로 맞아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주몽이 부여의 난을 피해 졸본에 와서 소서노를 왕비로 맞이하자, 비류와 온조는 주몽의 자식처럼 자라났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서 낳은 아들 유류가 왕위를 잇자, 비류는 동생 온조에게 남쪽으로 가 새 터전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두 사람은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미추홀에 정착하였다.
이렇듯 백제의 건국 신화에는 비류와 온조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주몽의 아들이거나 아들과 유사한 관계로 기술된다. 이를 통해 백제의 건국세력은 북방에서 남하한 유이민이며 대체로 부여-고구려 계통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중국 사서에서는 백제 조상이 고구려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구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현재 구태는 4대 개루왕의 둘째 아들, 5대 초고왕의 동생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태가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와 사위 관계를 맺고, 대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