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간호학개론
1.1. 간호의 정의
간호는 모든 개인, 가정,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건강의 회복, 질병의 예방, 건강의 유지와 그 증진에 필요한 지식, 기력, 의지와 자원을 갖추도록 직접 도와주는 활동이다. 간호란 아프거나 건강한 개인을 돕기 위해 의도된 돌봄이며, 그 사람이 강건함, 의지 또는 지식이 있다면 도움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그러한 활동들의 수행을 통하여 건강 (또는 회복 또는 평화스러운 죽음)에 기여하는 것이다. 간호는 개인의 육체적 또한 정신생활상의 요구에 대하여 의사가 처방한 치료법과 예방적 처치를 실시하는 일이며, 이상, 사랑, 동정, 지식, 교양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표현되는 행동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다.
1.2. 간호의 역사
1.2.1. 조선시대 간호
조선말 서양 선교간호부가 직업간호를 전파할 때까지 여성의 사회 활동이 극히 제한되었기에 간호는 가정과 이웃을 벗어나 타인의 간호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 직업적 간호가 도입된 이래 간호직명은 간호원(1903)→간호부(1914)→간호원(1951)→간호사(1987)로 변경되었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에 비해 과학기술과 의약기술이 발달하였고, 1446년 훈민정음 반포로 민중들이 쉽게 의약서적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평범한 민중들도 의약기술과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조선 정부는 중앙 집권적 보건의료체제를 강화하고 권력유지를 위해 전의감, 혜민국, 동서대비원, 제생원 등 4개의 의료기관을 설치하였다.
간호는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어 가정 내, 이웃 간에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가족구성원의 건강관리, 병자 돌봄, 응급치료 제공 등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에서는 여성 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의녀제도가 시작되었다. 의녀는 관비(천민) 신분의 12세 이상 30세 이하 건강한 여성으로, 전의감, 혜민국, 제생원 등에서 간호, 조산, 진찰, 침구, 명약 진료업무를 수행하였다. 특히 산부인과 치료와 간호에 종사하였다.
의녀제도는 태종, 세종, 성종 3대에 걸쳐 체계적인 교육제도가 마련되어 발전하였으나, 연산군 때 감찰업무, 술시중 등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면서 의녀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졌다.
1.2.2. 개항기 간호
1876년 조선 정부가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서양의학과 병원이 조선에 소개되었다. 1878년 부산에 재생병원이 설립되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문을 열었다. 그 후 원산병원(1881), 인천 영사관부속의원(1884) 등 개항지에 병원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선교사들에 의한 의료활동도 전개되었다.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감리교 선교사 알렌 부부가 내한하여 민영익 부상을 치료하면서 제중원을 설립할 수 있었다. 1885년 제중원이 개원되었는데, 이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서양식 병원이었다. 제중원에서는 기독교적 정신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의학교육도 실시하였다. 특히 1885년 조선 정부가 관기 소녀 5명을 선발하여 의녀로 양성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1887년 스크랜튼 선교사가 정동에 선교의료원을 개설하고 1891년 영국 성공회 나이팅게일 학교 출신의 히드코트가 파견되면서 최초의 서양 선교간호사가 등장하였다. 이후 1892년 영국 웹스터가 성마태병원에서 활동하다 1898년 나병으로 사망하는 등 선교 간호사들의 활동이 이어졌다.
한편 제중원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내무아문 소속이 되어 새로운 보건행정체계 속에 편입되었다. 1895년 을미개혁 때는 청일전쟁 승리로 제중원이 일본의 보호 하에 놓이게 되었다. 1897년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1899년 내무병원이 설립되면서 근대적 보건행정체계가 마련되었다.
1902년 캐나다 간호사 에드먼드가 파견되어 보구녀관을 설립하면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간호교육기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간호원'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1903년에는 보구녀관에 여의사 커틀러가 합류하였다. 1904년에는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다.
1906년에는 평양과 대구에 일본 거류민 병원인 동인의원이 세워졌다. 1906년 쉴즈가 세브란스병원에 간호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재조선졸업간호부회'를 조직함으로써 최초의 간호사회가 만들어졌다. 1907년에는 대한의원이 설립되어 관립 간호교육의 시작을 알렸다.
이처럼 개항기에는 서양의학과 간호학이 도입되어 근대적인 의료 체계가 마련되었다. 또한 선교 간호사들의 활동으로 간호 교육이 시작되었고, 일제의 식민정책 하에서도 간호 발전이 이루어졌다.
1.2.3. 일제강점기 간호
일제강점기 간호(1910~1944)
일본은 조선 내 식민지 정책을 펼치면서 병원 설립 및 운영을 통해 자국민 건강 보호와 더불어 식민지 지배력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의원을 중심으로 각 도청소재지에 자혜의원을 두어 간호부와 산파를 양성하였다.
간호교육기관의 경우 입학 자격이 점차 상향되었는데, 1922년 조선총독부는 신교육령을 통해 입학 조건을 '보통학교 졸업 후 2년 이상의 중등교육을 이수한 자'로 격상하였다. 이에 따라 간호과 교육기간이 10년, 산파가 9년으로 늘어났으며, 이는 일본 교육수준과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1930년대에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의 일본 침략 전쟁으로 인해 간호인력 공급이 필요해짐에 따라 지방 공립교육이 확대되었고, 공립 및 사립학교 간호교육기관의 수가 증가하였다. 더불어 1944년에는 일반 여자고등학교 학생들도 간호부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되는 등 간호교육이 퇴보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면허제도의 경우 1914년 간호부 규칙, 산파 규칙이 제정되어 간호부 자격은 만 18세, 산파 자격은 만 20세로 규정되었다. 면허 취득은 조선총독부 지정 간호교육기관 졸업자에 한해 무시험으로 가능하였고, 일본에서 간호부 면허를 취득하면 한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후 1922년에는 간호부 규칙이 강화되어 정규 간호학교 1년 이상 이수자에 한해 면허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졌으며, 1931년에는 간호부 및 산파 규칙이 개정되어 일본, 대만, 다른 식민지에서 취득한 자격도 조선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42년에는 남양군도까지 취득 범위가 확대되었고, 간호부 자격 연령이 만 17세, 산파 자격 연령이 만 20세로 낮춰졌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간호교육과 면허제도는 일본의 식민정책에 맞추어 변화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은 조선 내 간호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고자 하였다.
1.3. 간호전문직의 특성
간호는 모든 개인, 가정,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건강의 회복, 질병의 예방, 건강의 유지와 그 증진에 필요한 지식, 기력, 의지와 자원을 갖추도록 직접 도와주는 활동이다. 간호의 심오한 본질은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상, 사랑, 동정, 지식, 교양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표현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간호는 개인의 육체적 및 정신생활상의 요구에 대하여 의사가 처방한 치료법과 예방적 처치를 실시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