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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을수없는6.25
창녕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이 서쪽에 흐르고 있어 북한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 창녕일대에서 미 제2사단과 북한군 제1군단 간의 격전이 있었는데, 이를 '창녕전투'라 부른다. 미군은 낙동강 동쪽지역을 적에게서 격퇴한 뒤 도하지점에 교두보를 확보하여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격전 끝에 미군은 낙동강 동쪽에서 적의 그림자도 볼 수 없게 되었고, 이로써 창녕지구 전투전적비가 1959년 3월 31일 세워지게 되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창녕의 유적지를 자주 찾아다녔다. 특히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을 만나 역사의식을 강화할 수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그의 말에서 필자는 역사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후 적극적으로 역사를 탐구하게 되었다. 필자의 가문 사람 중에도 6.25전쟁 창녕전투에 참여하여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기에, 6.25전적지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약 20년 전 필자가 창녕에 내려왔을 때,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필자는 인맥을 동원하여 발굴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직접 유해를 발굴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비록 민간인이라 공식적인 참여가 어려웠지만, 그 덕분에 전쟁 역사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기회가 닿아 몇 차례 더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6.25전쟁의 참혹함과 그 역사적 의미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필자가 이처럼 6.25전적지와 유해발굴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애착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의 희생으로 인해 이 사건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앞으로도 6.25전쟁사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관련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비록 나이가 들어 직접 유해발굴에 참여하기는 어려워질지 모르지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6.25전쟁의 참혹함과 중요성을 전하고자 한다.
1.1. 서론
필자가 울산에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원래는 경상남도 창녕 출신이다. 필자는 창녕에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살아왔으며, 여전히 창녕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많다. 비록 창녕이 유명한 도시는 아니지만, 필자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본론에서는 창녕지역에서 벌어진 6.25전쟁과 6.25전적지가 필자에게 중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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