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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6.252025.04.031. 서론 잊을 수 없는 6.25 전쟁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70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전면적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한반도를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전쟁은 3년여 간의 격전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한반도에 깊게 남아있다. 특히 이 전쟁의 주요 현장 중 하나였던 낙동강 방어선과 관련하여 창녕지역에서 치열했던 전투 양상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0년 8월 31일부터 9...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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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6.252025.04.031. 잊을 수 없는 6.25 1.1. 창녕의 6.25전쟁 25전쟁 당시 낙동강 돌출부인 창녕~영산 지역에서 미 제2사단이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4사단과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 전개된 이 전투를 '창녕전투'라 부르고 있다. 미 제2사단은 영산 정면의 부곡리~남지, 창녕 정면, 현풍 정면의 강안고지에 각 병력을 배치하여 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반면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2공격집단은 제9사단, 제2사단, 제10사단을 각각 영산, 창녕, 현풍 정면에 집결시켜 8월 3...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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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없는 6.252025.05.121. 서론 1.1. 잊을수없는 6.25 25전쟁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정확히 70년 전인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전쟁이었다.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최전방부터 지속적으로 밀려 낙동강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당시 낙동강 서쪽으로 흐르고 있던 창녕 지역은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미 제2사단이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4사단과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벌였던 창녕전투는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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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없는6.252025.04.141. 잊을수없는6.25 창녕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이 서쪽에 흐르고 있어 북한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 창녕일대에서 미 제2사단과 북한군 제1군단 간의 격전이 있었는데, 이를 '창녕전투'라 부른다. 미군은 낙동강 동쪽지역을 적에게서 격퇴한 뒤 도하지점에 교두보를 확보하여 다음 작전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격전 끝에 미군은 낙동강 동쪽에서 적의 그림자도 볼 수 없게 되었고, 이로써 창녕지구 전투전적비가 1959년 3월 31일 세워지게 되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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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없는6.252025.04.141. 잊을 수 없는 6.25 1.1. 창녕의 6.25전쟁 낙동강이 서쪽에 흐르고 있어 창녕지역은 6.25전쟁 당시 북한과의 전투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진 지역이었다.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 약 3주 동안 미 제2사단과 북한군 제1군단 예하 부대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미 제2사단은 낙동강 동쪽의 오봉리~주매리·본초리 선에서 북한군 제2·9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9월 1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미 제2사단의 진지가 돌파되었지만, 이후 반격을 통해 낙동강 서쪽으로 북한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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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6.252025.04.101. 잊을 수 없는 6.25 1.1. 창녕의 6.25전쟁 1950년에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였을 때 우리나라는 최전방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대패해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었다. 창녕지역은 낙동강이 서쪽에 흐르고 있어 북한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돌출부인 창녕∼영산 지역에서 미 제2사단이 북한군 제1군단 예하의 제4사단과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창녕일대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투기간은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였다. 미 제2사단은 8월 하순 제24사단으로부터 작전지역을 인수받아...202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