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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조선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모험
역사는 시간과 공간 위에서 형성되어 가는 것이자, 여러 사람이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다. 곧 역사는 집단적·사회적이며, 제한된 공간과 시간을 넘어 이상을 현실로 바꿔가는 도정이다.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개인의 주체성과 이성이 그 독립성을 상실하고, '역사이성'이나 '시대정신', '국가이성'이나 '민족정신'이라는 개념으로 환원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 그 자체의 텍스트 안에서 '이성'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전개되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철학자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서 철학은 개별 이성들의 충돌과 경쟁, 그리고 더 큰 방향으로의 발전을 읽어내는데 기여한다. 철학은 역사적 사실 자체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이론이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림들은 '검열관'이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대변하였고, 서인 계열의 이이와 송시열 등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철학을 도구화하였다. 이처럼 철학과 권력의 불순한 결합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두드러졌다. 훈구는 인륜 국가 건설을 위해 오히려 인륜을 어기고 고려를 전복시켰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 사림은 쿠데타로 세워진 정권이라면 그것이 부정되고 국가 자체가 부정되는 딜레마에 처했다. 이와 같이 조선의 역사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붕당정치가 전개되었다. 붕당은 서구의 정당과는 달리 연줄에 따라 무리지어진 정치세력이었다. 붕당은 학문적 이념을 앞세워 권력투쟁을 벌였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정치적 야욕의 발로였다. 따라서 붕당정치는 근대적 정치 체제로 발전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파 경쟁의 과정에서 양명학과 지주-소작인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양명학은 성리학의 교조화에 반발하여 등장한 사상이었지만, 기존 지주 세력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는 양명학이 지주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의 멸망은 세도정치와 임진왜란, 그리고 명성황후 집권기의 혼란 등 정치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특히 조선의 성리학이 교조화되어 무능한 정치를 낳았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처럼 역사와 철학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조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를 종합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1.2. 역사와 철학의 만남
역사와 철학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며,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역사이성', '시대정신', '국가이성', '민족정신' 등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개인의 주체성과 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철학자의 관점에서는 역사 그 자체에서 개별 이성이 다른 개별 이성들과 어떻게 충돌하고 경쟁하며 더 큰 방향으로 발전하는지를 고찰할 수 있다.
역사가와 철학자의 관점이 상이한 이유는 역사가들이 주로 사실의 나열에 집중하는 반면, 철학자들은 역사 속에 내재한 논리성과 합리성을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역사 그 자체에서 개별 이성들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역사 속에 내재한 이성의 발현 과정을 드러낼 수 있다.
이처럼 역사와 철학의 만남을 통해 역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심층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논리성과 합리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와 철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이들의 결합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1.3. 연구 방법과 문제 제기
저자는 역사학에 철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조선시대의 역사와 사상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역사학은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경향이 있어 논리적 모순을 간과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 자체에 내재된 모순과 불합리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특히 조선시대 주요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와 철학의 상호작용을 살펴봄으로써, 역사적 전개 과정에 숨은 논리적 구조와 역동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역사와 철학의 만남을 통해 조선시대 사상사와 정치사의 의미와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조선 전기부터 멸망에 이르는 역사적 흐름을 추적하며, 핵심 주제인 '훈구와 사림', '붕당정치', '당파 경쟁', '세도정치'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결국 이 연구의 핵심 과제는 역사 연구에 철학적 분석 방법을 적용하여 조선시대의 역동적인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시사점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조선 전기의 흐름
2.1. 황희와 정도전의 대립
황희와 정도전의 대립이다.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계속된 정도전과 황희 간의 대립은 조선왕조 건국의 핵심적 사건이다. 정도전은 인의(仁義)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혁명적 방식으로 조선을 개국하고자 했다. 반면 황희는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정치 체제 구축을 주장했다.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명분을 무시하고 인의를 저버리는 등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 황희는 전통과 윤리를 중시하며 기존 체제의 연속성을 지키고자 했다. 이들의 대립은 조선 건국 이념과 방식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었으며, 결국 정도전의 실각과 황희 중심의 유교적 국가 건설로 귀결되었다. 이는 조선 전기 정치와 사상의 방향을 규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2. 유교 국가 건설과 성리학의 한계
조선은 애초부터 '성리학 국가'가 아니었다. 조선 건국 세력인 훈구파는 성리학보다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부국강병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선 중기 사림파가 집권하면서 형이상학적이고 교조화된 성리학이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림파는 훈구파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유교 국가 건설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의 성리학 중심 국가 운영은 많은 한계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첫째, 성리학의 추상성과 형이상학성으로 인해 실제 국정 운영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교조화된 성리학은 경직된 사고방식을 낳아 정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