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일본의 건국과 역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일본의 건국과 역사
2.1. 일본의 위치
2.2. 일본의 역사
2.3. 일본의 고대문명
2.3.1. 승문(죠몬)시대
2.3.2. 미생(야요이)문화
2.4. 일본의 건국신화
2.5. 일본의 정부
2.6. 일본의 도시
2.6.1. 일본의 수도 - 도쿄
2.6.2. 오사카
2.6.3. 요코하마
2.6.4. 쿄토
2.6.5. 고베
2.7. 일본의 국회
2.7.1. 법안 심의과정
2.7.2. 법안 심의과정의 특징
2.8. 일본의 산업
2.8.1. 농업
2.8.2. 임업
2.8.3. 수산업
2.8.4. 광업·에너지자원
2.8.5. 공업
2.9. 일본의 아이누족
3. 결론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일본은 아시아의 주요국으로서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일본의 건국신화와 역사는 일본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일본의 위치, 역사, 고대문명, 건국신화, 정부, 도시, 국회, 산업, 아이누족 등을 살펴봄으로써 일본의 전반적인 모습을 이해하고자 한다. 일본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 일본의 이해에 필수적이다. 과거부터 일본은 독특한 민족성과 전통을 가지고 발전해왔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건국신화와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일본의 건국과 역사
2.1. 일본의 위치
일본은 아시아대륙 동쪽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일본열도는 훗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라는 큰 섬이 네 개 있으며, 그 밖에도 4,000개 정도의 섬이 산재해 있다. 수도 도쿄는 동경 140도, 북위 36도에 위치한다. 일본의 국토 면적은 약 37만 8,000 제곱 킬로미터로 한국 국토 면적의 약 두 배이며, 중국의 25분의 1, 미국의 25분의 1, 인도네시아의 5분의 1 크기이다. 일본의 지세는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 변동, 화산 활동 및 이에 따른 해안선의 변화로 인해 형성되었다. 일본은 대부분이 높은 산과 협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로 국토의 68%가 산지이다. 일본은 동쪽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일본해, 남쪽으로는 동지나해, 북쪽으로는 오호츠크해, 그리고 시코쿠와 혼슈 사이의 세토 내해 등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은 일본인의 음식 및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
2.2. 일본의 역사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3세기에 이르는 사이에 일본에서는 이미 중국과 조선으로부터 벼농사 짓는 방법을 받아들이고 또 청동기, 철기 및 금속주조 기술을 받아들여 생산을 발전시켰다. 기원 2세기에 처음으로 노예제국가가 일본에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3세기에 이르러 혼슈 중부에 비교적 강대한 노예제 국가 ≪야마도≫가 흥성하였다. 야마도는 끊임없이 팽창하여 5세기에 와서는 일본을 통일하였다. 야마도의 최고 통치자를 대왕(大王)이라 하였고 후에는 천황(天皇)이라고 하였다. 팽창 과정에서 노예주 귀족들과 조정에서 대량의 토지를 독점하였다. 그들은 정복당한 씨족들을 강제로 농업이나 수공업 생산에 종사하는 부(部), 이를 테면 전부(田部), 용미부 같은 집단으로 편성하였고, 씨족 성원은 부민(部民)으로 되었는데, 부민들의 지위는 노예와 비슷하여 그들에게는 인격 자유가 없었다. 노예주들은 비록 부민들을 마음대로 죽이지는 못하였지만 남에게 선사할 수는 있었다. 부민들은 약간의 재물과 도구를 소유하고, 씨족 우두머리들의 통일적인 관할 아래에 노동에 종사하였으며, 노예주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노역에 종사하였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노예주 계급의 착취와 예속을 당하였다. 당시에 중국과 조선의 적지 않은 근로 인민들이 본국의 계급적 착취와 전란을 피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들도 강박에 못 이겨 금직부(錦織部), 안부(鞍部) 등 수공업 생산에 종사하는 부나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부에 편입되었다. 그들은 비교적 높은 생산 기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산 분야에서, 특히는 수공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부민들이 부지런히 노동한 결과 야마도의 노예제 경제는 발전하였다. 3세기로부터 시작하여 노예주 통치 집단은 부민과 근로 인민들을 강제로 부려서 높고 큰 저들의 능묘를 많이 건조하였다. 무덤 속에 함께 매장한 물건으로는 동경(銅鏡), 옥기(玉器), 칼, 검 그리고 낫, 도끼, 호미, 톱 같은 노동 도구가 있었다. 5세기에 건조한 한 능묘는 길이가 480미터이며 그 둘레에는 세 겹으로 큰 도랑을 팠으며, 능묘 안에는 외지에서 운반해 온 석판을 깔았다. 이렇게 큰 능묘를 건조하자면 많은 인력, 물력과 시간이 들어야 했다. 이것은 근로 인민들에 대한 노예주들의 착취가 날로 심화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7세기에 일본 노예 사회의 각종 모순은 더욱 첨예하여졌다. 천황과 노예주 귀족들이 근로 인민들을 부민으로 만들어 마음대로 부렸기 때문에 인민들의 극히 큰 분노를 자아냈으며, 따라서 계급 모순이 끊임없이 격화되었다. 645년에 황실의 족속들과 개혁을 요구하는 일부 귀족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고 고우도꾸를 천황으로 추대하였다. 646년에 고우도꾸 천황이 ≪다이까 개신≫을 단행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토지와 부민에 대한 귀족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토지를 국유로 하며, 부민을 자유민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속하는 ≪공민≫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이까 개신≫은 노예주 귀족들의 세력을 타격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노예주 귀족들의 반항을 받았지만, 중앙 집권제는 끝내 건립되었다. 이 ≪다이까개신≫은 일본이 노예 사회로부터 봉건 사회로 이행한 표징이었다. ≪반전수수법≫의 실시는 생산력에 일정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농민들의 부담은 더욱 과중해져 8세기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농민들이 파사당하였고, 어떤 사람은 도망을 쳤고, 어떤 사람은 귀족의 토지에 얽매인 예속 농민으로 되었다. 그러나 세력 있는 귀족들은 일상적으로 국가에서 상으로 주는 토지를 받았고, 또 파산당한 농민들을 부리어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농민들의 토지를 겸병하여 장원을 세웠다. 10세기 중엽에 이르자 장원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였으며 반전수수법은 완전히 폐지되었다. 각지의 장원주들은 자기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사무라이(武士)≫를 길러냈다. 그리하여 일본에는 ≪사무라이≫라는 특수한 계층이 출현하였다. 봉건적 혼전이 빈번하였으므로 지방에는 점차적으로 강대한 사무라이 집단이 형성되었다. 사무라이 집단의 우두머리들은 일상적으로 황실과 귀족들의 내부 투쟁에 참여하였다. 그중 한 우두머리는 12세기말엽에 바꾸후를 건립하였고, 1192년 조정으로부터 징이 대장군(세이 다이쇼군)의 칭호를 받았다. 이로부터 바꾸후의 우두머리를 장군이라고 불렀는데, 실제에서는 그들이 나라의 대권을 틀어쥐고 봉건적 군사 독재를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천황은 괴뢰로 되었다. 이때로부터 일본은 600여 년간에 걸친 바꾸후 정치 시기에 들어섰다.
2.3. 일본의 고대문명
2.3.1. 승문(죠몬)시대
B.C. 8000년 전부터 B.C. 3000년 전까지 일본 열도에서 유지된 선사시대 문화이다. 이 시대의 시작이 언제부터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0년 전이라고 하는 학설과 약 4,500년 전이라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으나 대체적으로 전자가 통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는 B.C. 3000년 경까지 수천 년간 이어졌으며, 조기·전기·중기·후기·만기의 다섯 시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기는 기원전 8000년 내지는 7500년 전후에서 기원전 4000년 전후에 이르는 약 3~4000년간이며, 전기는 기원전 4000년 전후에서 기원전 3000년 전후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이고, 중기는 기원전 3000년 전후에서 기원전 2000년 전후에 걸친 약 1000년간이다. 후기는 기원전 2000년 전후에서 기원전 1000년 전후의 약 1000년간, 만기는 기원전 1000년 전후를 경계로 한다. 이 죠몬시대의 토기의 모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다. 토기는 죠몬식 토기가 그슬려 구운 것에 비해, 야요이토기는 고온에서 충분히 산화하여 구운 것이므로 잘 구워 낸 토기는 적갈색으로 치밀한 질감을 갖는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재래 기술의 자연스러운 발전이 아니라 해외로부터 도입된 기술이라고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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