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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일까
1.1. 능력주의의 문제: 엘리트 세습과 심화된 계층 간 빈부격차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실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보상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능력주의가 작동하기보다는 엘리트 계층의 세습이 더욱 강화되고 계층 간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누구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문의 배경과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적, 경제적 혜택이 개인의 성공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엘리트 계층 자녀들은 부모의 지원을 받아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고, 부와 권력을 세습하며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약한 계층의 자녀들은 교육 기회와 사회적 이동성이 제한되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하다.
이러한 엘리트 세습 현상은 능력주의 이념과 거리가 멀며, 오히려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한다. 능력주의가 실현되지 않고 부의 세습이 지속되면서 계층 간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사회 통합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문과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 엘리트 세습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 현대 등 대기업 경영진의 압도적 비중이 창업주 후손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주요 공직자와 전문직종사자 상당수도 상위 계층 출신이다. 이로 인해 능력과 성과에 따른 공정한 사회 이동이 저해되고 있다.
이처럼 능력주의가 엘리트 세습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면서 실질적인 공정성과 형평성이 훼손되고 있다.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 아닌 가문과 배경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는 결국 능력주의가 본래의 취지와 달리 오히려 계층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2. 역사 속 능력주의의 발달과 문제점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이론'이다. 물론 이 개념의 초기 취지는 '공정의 실현'이었지만, 능력주의는 부의 세습을 허용하여 종종 교육과 직업 분야의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정당화하는 이념이 되었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과거제도, 사회진화론, 입신출세주의, 고시제도, 학력주의 등을 거치며 변모하고 강화되었다. 최근 연구들은 다양한 사료에 나타난 실증적 수치를 근거로 조선의 과거제가 그 발단이며 상당한 수준의 사회 이동성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양반의 시조는 능력주의적 경쟁으로 선발되어 양반이라는 특권을 획득하였지만, 그들의 자손은 능력과 노력을 입증하지 않고도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로 양반으로 대우받았다. 요컨대 양반은 '원칙적 획득 신분'이지만 동시에 '관습적 세습 신분'이었던 것이다. 양반 신분의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과거제도의 능력주의적 요소를 평가하는 데 반드시 고려해야할 점이다.
과거제 자체는 실질적으로 완전개방경쟁이 아니었지만, 당대 현실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기회평등을 추구한 능력주의적 경쟁이었다. 그러나 경쟁 승리의 보상으로 주어진 사회적 특권이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고 친족과 자손에게 확대적용된 것은 능력주의적 특성을 상당히 상쇄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대추구행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어 사회의 생산력 상승을 압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시험 합격자에게 지나친 특권을 부여되었으며, 합격자들이 일단 특권층이 되고나면 예전처럼 노력할 동기가 현저히 떨어져서 사회적 생산력을 향상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 한국사회의 각종 고시 제도도 사실상 세습적 성격을 제거한 과거제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고시는 "개천의 용"이란 말로 흔히 표현되는 것처럼 '지위상승의 공정한 기회'라 옹호되는 한편으로 여러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는다. 과거제도가 근대 능력주의의 기초적 특징을 갖추고 있음에도 사회 전체의 근대적 발전으로 빨리 이어지지 못한 이유 역시 이와 관련이 있을 지 모른다.
1.3. 능력 위주 사회의 갈등 배경
능력 위주 사회의 갈등 배경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실질적으로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학벌주의와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으로 인해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한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도움으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경제적 제약으로 교육 기회가 제한된다. 이로 인해 능력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이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된다.
둘째, 능력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왜곡이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단순히 입시 성적이나 학벌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은 다양한 방면에서 발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풍토가 형성되어 있다. 결국 능력주의에 대한 편협한 관점이 만연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다.
셋째,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를 들 수 있다. 능력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특정 계층에 유리한 결과가 초래되고, 이는 불가피하게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는 계층 간 갈등을 야기하며,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넷째, 엘리트주의의 폐해를 들 수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엘리트층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게 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능력주의를 내세우게 된다. 그 결과 실질적인 공정성은 훼손되고 오히려 기득권 세력에 유리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능력 위주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1.4. 능력 위주 사회의 문제
1.4.1. 불평등의 정당화와 자기정당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적으로는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적으로는 능력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투쟁'이라는 단어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대중화시킨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그 목표가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인정'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권력투쟁과는 다르지만, 인간에게 존재하는 '대등 욕망'과 '우월 욕망' 중 우월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지배 욕망'으로 변질될 경우, 상호 인정의 평화공존이 깨지고 말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생들이 단체로 맞추는 것이 유행이 된 '과잠' 또는 '야구잠바'이다. 이십대 대학생들은 야구잠바를 패션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어떤 신분증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즉, 자신을 멸시하는 '상위 계층'과 구별되는 '자신의 계층'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재벌 부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재테크'로 부르며 그것을 위해 들인 '엄청난 노력'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