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무신정권의 붕괴 소논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 현황
1.1. 머리말
1.2. 시기별 연구 동향
1.2.1. 제 1기 : 1910 ~ 1944년
1.2.2. 제 2기 : 1945 ~ 1959년
1.2.3. 제 3기 : 1960년대
1.2.4. 제 4기 : 1970년대
1.2.5. 제 5기 : 1980년대
1.3. 주제별 연구 동향
1.3.1. 변란(變亂)
1.3.2. 민란(民亂)
1.3.3. 항조(抗租)
1.4. 맺음말
2. 여말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과 사전구폐론(私田舊弊論)
2.1. 머리말
2.2. 고려 말의 전제(田制) 문란
2.3.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
2.4. 사전구폐론(私田舊弊論)
2.5. 맺음말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 현황
1.1. 머리말
18·9세기 면역 주체세력의 형성과정으로서의 농민항쟁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먼저 지주-전호제라는 봉건적 생산 관계하에서 경제외적 경제에 의해 지대를 수탈당하고 있던 작인(作人), 농민들은 그 지대를 감하(減下)시키고,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농민적 토지소유를 취하기 위한 항조(抗租)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소상품 생산자로의 성장을 지향하는 소농민들은 봉건권력의 봉건적 수취체제를 통한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항조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는 중소지주·부농층도 참여하였으며, 빈농 · 농촌 노동자계층도 참여하여 민란(民亂)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농민 충분화 과정에서 몰락하여 토지로부터 유리된 농촌노동자·무직자, 그리고 빈농층은 민란(民亂)·화적(火賊)·변란(變亂) 등에 참여하여 지배계급에 저항하고 나아가 체제 자체에 저항하였다. 한편 역시 농민충분화정에서 몰락, 도시로 유입된 도시 빈민층은 도시 민란 등을 통하여 봉건 지배 체제의 억압과 수탈에 저항하였다. 그리고 정치·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사회적으로도 대우를 받지 못하던 이른바 몰락 양반층은 정치적 변란을 통하여 역성(易姓)혁명을 기도하였다. 그리고 이 변란에는 경제적으로는 성장하였으나 봉건적 수단에 의해 계속 침해를 받고, 또 정치·사회적으로도 소외되어 있던 계층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상 모든 계층은 국가 위와 같은 저항운동을 통하여 세력을 확대시켜, 마침내는 1894년 거대한 변혁주체세력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
1.2. 시기별 연구 동향
1.2.1. 제 1기 : 1910 ~ 1944년
제 1기 : 1910 ~ 1944년의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는 주로 홍경래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경성제대 교수였던 소전성오(小田省吾)는 홍경래란의 발생 원인을 서북인의 정치적 좌절, 홍경래 개인의 성격, 그리고 과거실패 등에서 찾았다. 한편 현상윤(玄相允)은 서북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였고, 문일평(文一平)은 홍경래의 난을 단순히 정치적인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 측면으로까지 확장시켜 분석하였다. 이청원(李淸原)은 봉건적 통치군의 상층부와 하층부 간의 대립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하였다. 이처럼 이 시기의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는 홍경래란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2. 제 2기 : 1945 ~ 1959년
1945년에서 1959년 사이의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이 시기에는 민란 발생의 동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1956년 김용섭은 《철종조(哲宗朝) 민란발생에 대한 시고(試考)》에서 민란 발생의 동기를 민중의 의식 성장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민란은 전체 농민의 빈궁화에 따른 반항이 아니라, 일부 부유 농민의 신분상승 등에 따라 지배계급의 지위와 권위가 농민 앞에 상실된 데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둘째, 이 시기에 중요한 자료집이 간행되었다. 1958년 국사 편찬위원회에서 임술민란 관계 사료를 모아 《임술록(壬戌錄)》을 간행한 것은 민란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 자료집의 간행으로 인해 임술민란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2.3. 제 3기 : 1960년대
1960년대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는 홍희유와 김석형 등 연구자들이 구체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홍희유는 홍경래란에 대한 연구에서 기존의 정치·사회적 측면에 더하여 경제적 측면에 주목하였다. 그는 홍경래란을 '평안도 농민전쟁'으로 규정하고, 상인의 참여가 중요했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관서평란록'이라는 자료를 처음 활용하였다. 이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김석형은 진주민란에 대한 연구에서 '진주초군작변제록'이라는 자료를 이용하여 진주민란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분석하였다. 그는 진주민란이 계급투쟁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민란 연구에 계급 갈등이라는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1960년대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사료 발굴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는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4. 제 4기 : 1970년대
이 시기 본격적인 연구로서는 정석중의 홍경래란의 연구, 김용섭의 임술년의 응지삼정소(應旨三政疏) 연구정도이다. 정석종은 홍경래란 연구에 김용섭의 '경영령부농론'을 도입, 홍경래란의 주도 세력이었던 향임(鄕任)·무임층(武任層)은 경영형 부농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김용섭은 삼정책(三政策) 분석을 통하여 임술민란이 지주진호제를 중심으로 한 농민충 분화과정에 삼정 문란이 가중됨으로써 농민몰락과 계급적 모순이 더욱 격화된 데 기인하였으며, 민란의 주체는 몰락농민층·영세소작농이었다고 보았다. 한편 이시기에는 일본인 연구자들의 연구가 비교적 많이 나온 편이었는데, 그들의 연구는 대체로 생산관재를 중심으로 당시 농촌사회에서의 계급구성을 나름대로 전제하고, 이를 운동의 전개과정에 그대로 적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2.5. 제 5기 : 1980년대
1980년대 들어 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이는 이 시기에 들어와 민주세력이 역사에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과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동안 연구가 부진했던 조선 후기사에서 1862년 임술민란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나타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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