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의미의 해체-이승훈 시인과 그의 시목차1. 시작하며2. 이승훈 시인3. 비대상4. 나와 너의 관계5. 마치며1. 시작하며이승훈 씨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에게는 또한 초현실주의 시인이라는 말이 붙어다닌다. 처음 그의 시를 접하였을 때, 나는 ‘이런 시인도 있었나? 이것도 시인가?’하고 의아스러웠다. 제목도 ‘이승훈씨를 만난 이승훈씨’,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 등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안된다 싶을 정도로 역설스러웠다. 하지만 흥미롭기는 이상의 시만큼 애매모호하였으며, 이상의 시는 무섭게 느껴졌지만 이승훈의 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인간적이었다.아니나다를까 그는 시와 시론 양쪽에서 여러 문제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 온 시인-비평가이다. 그의 시론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데, 그 이유는 그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특성 때문이다. 시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시는 언어의 놀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 ‘비빔밥 시론’과 같은 시론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런 주장은 현대시에 대한 종래의 통념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시쓰기에 대한 그의 남다른 고심과 모색이 놓여 있다.그의 시창작의 모티브는 자아의 고독과 불안이었다. 초기 시집 [사물 A] [환상의 다리]에서 이 자아의 고독과 불안은 의식과 무의식이 갈등하는 어둡고 격렬한 초현실주의 시풍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지만, 그가 40년 가까이 시를 써오면서 그동안 출판한 여러 권의 시집 수록 작품들을 읽어보면, 거기에 관류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다름 아닌 이 고독한 자아로부터의 탈주의 문제, 즉 ‘나’의 정체성과 그 ‘바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문학적 사유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체와 그 바깥에 대한 사유’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시적 사유야말로 그의 글쓰기의 지속적인 화두이다. 그의 시론에서 이 문제는 근대적 주체 개념, 서구적 형이상학의 해체와 탈근대적 문학 담론의 가능성 모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부정, 해체, 재구성하는 끊임없는 모색과 문학적 실험의 징후를 띠고 있는 것이다.)지금부터 그의 생애와 그의 시 몇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시에 대한 방법론적 모색을 지속한 사변적인 시인이자, 시이론가인 이승훈과 그의 시세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2. 이승훈 시인이승훈은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공대 섬유공학과에서 공부하면서 계속 시를 쓴다. 당시 한양대 국문과에는 시인 박목월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몇 편의 시가 쓰여지면 박목월 연구실로 찾아가곤 했다. 그 시 가운데 낮 , 시 두 편이 1962년 『현대문학』에 박목월의 추천사와 함께 실렸고, 그 해 8월호에 바다 , 1963년 4월호에 두 개의 추상 이 실림으로써 3회 추천을 1년에 끝내고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그러나 이승훈이 자신의 색깔로 시 세계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당시 신세계로 새롭게 구성된 『현대시』동인에 가담하면서부터다. 『현대시』동인지는 1962년 김춘수, 전봉건, 김광리, 김종삼 등이 중심으로 범문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6집을 계기로 신세대 중심 동인지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동인으로는 김영태, 정진규, 이유경, 주문돈, 이수익 등이다.)그의 대표시집으로는 『사물A』(1969), 『환상의 다리』(1976), 『당신의 초상』(1981),『사물들』(1983), 『당신의 방』(1986), 『너라는 환상』(1989), 『길 없어도 행복하다』(1991)등이 있다.그동안 그의 시의 특성에 대해 여러 평론가가 언급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서준섭 교수의 지적은 그가 지향해 온 초기시의 세계를 비교적 간결하게 요약한다.)우선 그는 객관적인 삶의 세계보다는 감각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이 날카롭게 충돌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천착하여 그것을 작품화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첫 시집 『사물 A』에 나타나는 그의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은 제 2시집 『환상의 다리』에 이르러 한결 심화되는데, 그는 여기서 그가 「실존의 투자신의 시를 「비대상시」라고 명명하고 있다.)3. 비대상가을이승훈하아얀 해안이 나타난다. 어떤 투명함도 보다 투명하지 않다. 떠도는 투명에 이윽고 불이 당겨진다. 一帶에 가을이 와 머문다. 늘어진 창자로 나는 눕는다. 헤매는 투명, 바람, 보이지 않는 꽃이 하나 시든다.(꺼질 줄 모르며 타오르는 가을.)서정적으로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의 분위기일 뿐 자세히 보면 토막토막의 사고가 불연속의 연속으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수직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수평적인 소재(이미지)들이 제멋대로 흩어져있다. 이승훈은 자신의 시를 가리켜 비대상시라고 하고 있다. )비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상이 없다는 것은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대상이 분명치 않다는 뜻도 되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세계나 일상세계가 시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시인이 구체적인 대상의 세계를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 시각에서 해명될 수 있다. 대체로 대상의 세계란 자연세계나 일상세계 나아가 사회적 현실세계를 뜻한다. 많은 시인들은 이런 세계를 노래한다. 노래하는 방식이야 시인들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그것은 크게 현실을 모방하는 방식이 아니면, 그런 현실에 대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승훈의 시는 이런 대상의 세계가 詩作의 모티브를 형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대상의 세계를 노래한다는 말은 시작의 모티브와 관계된다. 비대상의 세계를 모티브로 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단순히 대상의 세계를 노래하지 않는다는 의미 외에 어떤 관념도 노래하지 않음을 뜻한다. 즉, 비대상의 시는 말을 바꾸면 자기실존의 운동을 지향하고, 언어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꽃이라고 부를 때 그 꽃의 빛깔, 모양, 크기, 온도, 아름다움 같은 구체적인 형식은 사라진다. 그러니까 그 꽃은 부재한다. 그런 점에서 대상의 세계에 언어가 작동할 때 이미 그것은 비대상의 세계가 된다. 따라서 시에서 언어 자제를 강조하는 것은 비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세계관 상실의 상태다. 다르게 말하면 허무의 상태다.)이상을 정리해 보면 이 시는 비대상 시이며, 이는 언어를 중심으로 할 때, 한마디로 자기소외를 경험하는 의식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승훈 시인의 또다른 시 피에타1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피에타 Ⅰ? ? ? ? ? ? ? ? ? ? ? ? ? 이승훈?아버지는 바람을 일으킨다나는 바람 속에 처박힌다벌판에서 벌판의 피를 뜯어가지고나는 다른 벌판을 만든다아버지는 홍수를 일으킨다내가 만든 벌판이 떠내려 가므로나는 홍수 속에 처박힌다홍수의 얼굴을 뜯어가지고나는 커다란 푸른 담요를 만든다아버지는 火災화재를 일으킨다내가 만든 담요가 불에 탄다나는 불 속에 처박힌다나는 불 속에서 불의 손톱을 뜯어공기를 만든다 불 속에서 내가 만드는공기를 아버지는 짓밟는다 나는 火傷화상을입는다 공기의 재를 털고 가까스로 일어나면새벽, 아버지는 악어를 찾아 떠나고나는 악어가 되어 헤맨다아아 하얗게 빛나는 피에타,아버지가 나를 찾을 때까지나는 내 흔적이나 계속 지워야겠다여기서 아버지와 나는 대립적 관계로 나타나며, 그 관계는 보편적 상징들인 바람, 물, 불, 공기 따위에 의하여 전개된다. 나는 개인적 내면의 세계에서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나는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어머니를 부르고만 있었던 세계가 개인적인 무의식의 산물이었다면, 아버지가 나의 구조적 관계를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4. 나와 너의 관계이승훈 씨를 찾아간 이승훈 씨이승훈이승훈 씨는 바바리를 걸치고 흐린 봄날서초동 진흥아파트에 사는 시인 이승훈 씨를찾아간다 가방을 들고 현관에서 벨을 누른다이승훈 씨가 문을 열어 준다 그는 작업복을입고 있다 아니 어쩐 일이오? 이승훈 씨가놀라 묻는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지요 그래요?전화라도 하시지 않고 아무튼 들어오시오이승훈 씨는 거실을 지나 그의 방으로 이승훈 씨를안내한다 이승훈 씨는 그의 방에서 시를 쓰던중이었다 이승훈 씨가 말한다 당신이 쓰던다 틀림없습니다 그게아닙니다 바다는 갈매기가 아닙니다 그건 모래가벽돌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벽돌은 바다가아니니까요 바바리를 걸친 이승훈 씨와 작업복을입은 이승훈 씨가 계속 싸운다 마침내 화가 난이승훈 씨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좋아요 좋아! 그는 문을 쾅 닫고 사라진다여기에 나온 두 이승훈 씨는 둘 다 시인 자신이다. 자신의 시에 대해 두 가지 목소리인 두 자아가 말을 하고 있다. 이승훈의 시는 끊임없이 자아에 대한 탐구로 이루어진다. 그의 60-70년대 시에서는 ‘나’라는 개념으로 시를 분석했다. 이 시들은 모근 일체가 ‘나’로부터 시작되고 다시 그것이 나로 귀결되는 일인극의 독백적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그의 시정신을 그 촉수가 시종일관 자신의 내면세계를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온몸의 감각으로 포착하려고 하는 것이다.그리고 이승훈은 자신의 이름을 시에 언급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비방하거나 ‘이승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승훈은 ‘그’이라는 인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설정하면서 자아찾기에 더욱 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승훈의 시는 일관적으로 자신의 자아찾기를 중점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그의 이러한 시정신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마지막 행에서 알 수 있듯이 누가 진정한 ‘나’라는 지는 알 수 없다. 바바리를 걸친 이승훈 씨가 화가 나서 나갔다는 것인지 작업복을 입은 이승훈 씨가 싸움에서 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절대적 초월적 주체는 없다. 상대적인 주체가 있을 뿐인 것이다. 다음은 이승훈 씨가 주체의 소멸에 관해 쓴 글이다.나라는 존재는 이 시대에 오면 경험적 현실을 초월하는 무슨 고상한 절대적 자아를 소유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듯이 ‘나’라는 존재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나’라고 말하지만 그 ‘나’는 난다.
의 제의성차례1. 서론2. 서사문맥의 제의적 해석1) 꽃거리2) 용거리3. 인물의 성격1) 순정공2) 견우노옹3) 수로부인4. 결론1. 서론「삼국유사」권2 기이편의 수로부인조에는 신라의 절세미인인 수로부인과 헌화가에 대한 신이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헌화가는 기존의 향가 가운데 특이한 기술구조와 신비한 배경설화를 가지고 있어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온 작품이다.이 글은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의 헌화가 배경설화를 대상으로 그 성격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견우노옹은 누구이며 왜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쳤으며, 수로부인은 왜 꽃을 갖고 싶다고 했는가. 그러한 상황이 왜 바닷가에서 이루어졌는가 또한 복합적으로 살펴야 한다.「삼국유사」권2 기이편의 수로부인 이야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옹이 수로부인에게 천길벼랑 만발한 척촉화를 꺾어 노래와 함께 바치는 사건과 그 이틀 뒤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피납되었다가 에 의하여 구출된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는 의 어석과 함께 전반부의 사건에 집중되었고, 노옹과 수로부인의 연사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이틀 뒤에 발생한 사건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두 개의 사건은 수로부인을 중심으로 하여 이틀의 시간과 모두가 바다에 접해 있는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구비전승물의 언표에는 집단구성원의 사유와 인식이 투사되어 있다. 그것은 집단 구성원의 상징과 은유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 진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바닷가와 용궁, 수로부인과 노옹, 척촉화와 해룡 등은 유의성을 지닌 언표들이다. 이들의 실재적 의미는 두 사건을 유기적 연관하에서 바라볼 때 드러날 것이다.)필자는 기존의 연구경향을 참고하면서, 헌화가 서사문맥의 제의적 해석, ‘꽃거리’와 ‘용거리’에 대한 해석과 헌화가 배경설화에 나타난 인물의 성격, 순정공과 견우노옹, 수로부인의 성격을 중심으로 헌화가의 제의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2. 서사문맥의 제의적 해석성덕대왕대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도중 海汀에서 晝饍을 리’는 각기 특정한 신령을 불러 모시고 축원하는 독립된 작은 굿이다. ‘거리’를 원용하여 를 부르는 사건을 ‘꽃거리’라고 하고, 를 부르는 사건을 ‘용거리’라 부르겠다. 수로부인 이야기는 적어도 두 거리 이상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결국 핵심이 되며 이전의 제의와는 변별적인 두거리만이 기록·전승된 것이라 생각된다.)1) 꽃거리수로부인 이야기의 서사문맥에는 노옹이 암소를 끌고 있는 것으로, 시가문맥에서는 노옹이 암소를 놓는 것으로 노옹과 암소의 관계가 ‘견(牽)’에서 ‘방(放)’으로 바뀌었다. 이 관계의 변화는 제의의 시·공간에서 기능하고 있으며, 유의성을 지닌다. 그 유의성은 고대인들의 제의에 대한 사유이다.신라의 기우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첨해왕 7년에 가뭄이 들어 시조묘와 명산대천에 기우하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평왕50년에 용의 그림에 기우하였다고 한다. 동일한 목적을 지닌 제의에 있어 그 섬기는 대상이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섬기는 대상이 바뀌면 제의 형태와 제물도 바뀐다. 강원도 강릉과 영월에서 지내는 기우제는 산신에게는 돼지머리(또는 닭)를, 용신에게는 개를 쓴다고 한다.) 이 사례는 섬기는 대상에 따라 특정한 제물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퉁구스인이나 만주족들은 신이나 정령에는 특정한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제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제물을 대체한다고 한다. 제물의 변화는 섬기는 대상뿐만 아니라 제물이 지니는 효력에 기인한다. 덕적산 사당에 바쳐지는 인신제물은 그 좋은 예이다. 사당에 바쳐지는 처녀는 인신제물이다. 제물로서의 효력은 ‘신령과 밤마다 교접할 수 있는 젊음’에 있다. 늙고 병든 인신제물은 효력을 상실한 것이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대체되어야 할 제물은 ‘젊고 예쁜 처녀’이다.노옹이 제의의 공간에 ‘끌고 나오는 암소’는 이전의 방식대로 제의에 바쳐지는 제물이다. 그런데, 나라에 발생한 위기는 그 암소로서는 제의의 효과를 획득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것이다. 따라서 제의의 효과를 획득하기마땅히 제의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대는 이미 유교나 불교의 합리성, 사변성을 지향하는 까닭에 왕을 대신하는 수로부인으로 대체된 것이다. 수로부인의 재생은 모든 집단 구성원의 열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로부인의 구출에 모든 집단 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다. 재생에 대한 집단 구성원의 열망은 척촉화를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침으로 해서 꽃에 내재된 부활의 주력을 수로부인에게 전이시키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재생을 촉구하는 주사 를 부름으로 해서 그것은 더욱 극에 달한다. 결국 용궁에서 나온 수로부인의 몸에서는 이상한 향내가 난다고 했다. 재생의 확신인 것이다. 수로부인의 ‘입해’와 ‘출해’는 제의적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상징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심산대택(深山大澤, 제의의 공간)을 지날 때마다 반복되어 행함으로써 제의의 효과를 획득하고자 한 것이다.그런데,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면 수로부인이 어떻게 재생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여기에 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층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두 개의 층위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신-제물-인간”으로 이루어진 제의의 층위이며, 다른 하나는 수로부인 개인이 행하는 통과제의의 층위(죽음과 재생의 과정)이다. 전자의 경우, 신은 집단에 발생한 위기의 원인으로서 악신적 성격을 소유한 해룡이다. 따라서 인간을 제물로 바침으로 해서 집단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후자의 경우에 있어, 그것은 수로부인이 신적원형을 반복·재현함으로써 집단에 발생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개의 층위는 별개의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꽃거리와 용거리가 독립된 한 작은 굿이면서 유기적인 연관을 갖는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척촉화는 수로부인이 인신제물이 되는 대가로서의 보상물이고, 그것이 사람의 힘이 미칠 수 없다는 것은 보상물의 지고한 가치를 뜻한다. 이에 백성과 수로부인(수로부인으로 대표되는 왕실) 사이에는 대립과 갈등이 발생한다. 민과 왕실의 화해의 상징인게 선수를 빼앗기고, 위엄마저 상실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더군다나 기사자가 ‘수로는 자색이 절세의 미인이었으므로 깊은 산이나 큰물을 지날 적마다 여러 번 귀신이나 신물들에게 붙들려 갔다.’는 부언은 순정공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로의 남편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본다. 즉, 그녀는 신을 상대하는 무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평범한 일상적인 부부는 아니라는 것이다.더욱이 순정공이 수로가 돌아왔을 때 물었다는 해중사는 결국 그녀의 신비한 대답과는 다르게 아내의 몸에 이상(겁탈)이 없었는가 라는 세속적이며 애욕적인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다. 이는 앞서의 경우로 미루어도 짐작이 가는 것이고, 아내를 잠시 빼앗긴 남편의 입장에서는 매우 궁금한 질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수로 또한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의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견우노옹수로부인의 배경설화에 나타나는 노옹(노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가지의 견해가 제기된 바 있다. 선승(김종우, 김광순, 최철)이나, 신선, 농신(황재남), 산신령(이상보), 현명한 노인, 지력촌노, 평범한 노인 등으로 노옹을 파악한 바 있다.필자는 노옹을 제사를 주관하던 신관이요 마을의 구원자로 보고자 한다. 특히, 산천제사와 기우 등 마을과 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제사를 주관하던 신관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 같은 견해는 이미 여러 사람에 의해 제기된 것이나, 필자는 해당 지역의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전문적인 신관이며 그 지역의 정신적인 지도자라고 본다. 따라서 암소를 끌고 우연히 지나가는 노인이 아니라 그 지역의 안녕과 기우제를 관장하는 신관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문태는 노인(노옹)의 정체에 대하여, 일연이 居士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승 내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그 지역의 토박이로서 기우제를 주관하는 사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향가에서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피납되자 그들은 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왕비의 모에 대해서도 부인의 위호가 주어졌음을 보여주는 예들이 있다. 태종비 문명왕후와 김유신의 어머니인 만명이 부인으로 호칭될 뿐 아니라), 소지왕(비처왕)이 날이군에 거동하였다가 고을 사람 파로의 딸 벽화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는데) 근래에 발굴 공개된 김대문의 화랑세기에서는 비처왕비를 벽화부인이라 부르고 있고, 그모부인을 벽아부인이라 부르고 있다.) 벽아는 평민의 처이지만 그녀의 딸이 왕의 후비로 들어감으로써 벽아가 왕비모가 되었기 때문에 ‘부인’으로 불려졌으리라고 여겨진다.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신라에서 ‘부인’이라는 칭호를 존호로 사용하였고, 그것은 왕의 삼친 부인에게 위호로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로 국가에 막대한 훈업을 쌓았을 때 그 혜택으로 부인이란 칭호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법흥왕대 것으로 추정된는 제주천전리서석의 석각에는 여러 부인 칭호가 나오는데) 이 시기에 오면 비로소 왕족과 더불어 모든 귀족들이 공용하는 일반 존칭으로 사용하였다고 본다.이런 사실들을 통해서 수로부인이 단순히 순정공의 처로서가 아니라 왕의 3친에 해당하는 지위로서나, 어떤 막대한 훈업에 의해서 ‘부인’의 위호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외적인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수로부인이 왕의 3친 ‘부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은 오히려 높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수로부인이 왕모나 왕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신라 역시 왕모와 왕비 중에 수로부인은 없다. 따라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기록을 참고로 할 때, 수로의 남편인 순정공이 신라 진골로서 강릉 태수직을 부여받을 정도의 고위직 인물이며, 그의 딸이 경덕왕의 비인 삼모부인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로는 왕비모일 가능성이 강하다. 순정공과 수로부인 사이에서 난 딸이 경덕왕의 왕비가 되어서 수로가 부인에 책봉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로부인의 위호가 왕비모 때문이라면 「삼국유사」수로부인조에서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과 함께 갈 때는 ‘수로’다.
◈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윤동주 소개2. 윤동주의 시 세계(1) 순수한 동시(2) 자아 성찰과 부끄러움(죄의식)(3) 슬픔과 연민(4) 절대적 진리와 순교의식의 저항정신3. 길의 의미(1) 보편적 상징으로서 길(2) 「길」에서의 의미4. 「길」 창작 배경5. 시 분석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문학은 인간 의식의 역사이다.”는 문학현상학자 죠르즈 풀레의 이 말은 문학이 인간의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인간의 의식이란 ‘통합된 지향행위’에 의해 자아-세계가 상호연관 되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문학작품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작가의 창조적인 의식의 경험이 동시적으로 세계와 그 자체의 존립을 지속케 하는 의미부여의 과정에 대한 표현이다. 그것은 작가의 주관에 의해 창조되지만 독자나 혹은 비평가에 있어서는 하나의 객관적인 실체(사물)로써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을 분석한다는 것은 작가가 선택한 언어를, 비평가의 언어로‘의미화’하는 작업에 해당한다.)게다가 문학작품이 시대의 산물이고 윤동주가 산 시대가 일제말기이자 그의 시들이 처절한 절규이고 보면 윤동주의 시에 대한 연구는 마땅히 시대와 연결하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일경에 의해 사상불온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래 적지인 일본 형무소에서 해방되던 해 2월 16일에 옥사하였으니 이러한 그의 불운이 그의 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피는 것은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간 면을 알기 위하여 그의 생애를 살펴 시와의 관계를 추적하고 더 나아가서 그의 내면 의식세계를 탐구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시의 미학적 탐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의 연구 방향은 역사주의 및 형식주의 비평방법이 두루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윤동주의 시는 대부분이 창작 시기가 밝혀져 있다. 이 점은 그의 시의식의 변모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었고, 또한 그렇게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한 시인의 시대사회적 사명감으로 고통을 의식하기 이전의 순수하고 행복한 자아에 해당하는 모습으로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진실과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의 동시는 고향, 곧 민족적 정서가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유년기의 공간을 그려내어 이후의 현실세계로부터 오는 부단한 좌절감과 고독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든다.비록 기법상으로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을 윤동주의 정신적 퇴행으로만 볼 수는 없다. 김열규는「윤동주론」(『국어국문학』27호)에서 윤동주의 동시를 ‘정신적 퇴행의 소산’이라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초기 시에서 삶의 모순과 어둠이라는 세계를 체험한 20세 무렵의 청년으로서 동시를 썼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도피, 즉 퇴행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동시를 보는 그의 관점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동시는 ‘어린아이들이 쓰는 시’가 아니라 ‘어린 아이의 시각’을 통해서 쓰여진 시다. 따라서 엄연히 독자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다. 동시의 발전된 형태가 어른의 시라는 생각은 우스꽝스럽다. 동시를 쓰는 데는 일반적인 시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지적 수준이 요구된다.)(2) 자아 성찰과 부끄러움(죄의식)윤동주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적 갈등과, 거기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모색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들이다. 윤동주는 항상 자신의 무능력과 비행동성, 그리고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기만 하는 우유부단성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신으로부터 소외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고독한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고 있다. 이것이 부끄러움의 심상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거울 또는 우물이라는 좁은 테두리에 갇힌 자아로 상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인으로서의 갈등과 고뇌는 그의 정신적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오랜 좌절과 방황 그리고 회의와 모색 끝에 얻어지는 확고한 신념이야으로서는 더 이상의 비극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참담한 상황이었고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슬퍼하는 일’ 뿐이며, 또 지속적으로 많은 복을 받기 위해서 ‘영원히 슬퍼해야 한다’고 보았으니 이것은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이라는 시어를 많이 쓴 윤동주는 , 등과 함께 슬픔에 잠긴 시적화자를 그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4) 절대적 진리와 순교의식의 저항정신그의 슬픔과 연민, 자아성찰과 부끄러움은 절대적 진리라는 하나의 윤리세계를 정점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보인다. 다시 말해 그의 자아성찰은 사물과 현실 세계에 대한 슬픔과 연민을 불러오고, 그 결과 부끄러움(죄의식_이 형성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절대적 진리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는 순교자적 모습까지 보이게 된다.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위의 시 「십자가」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이루는 4연의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허락되는 십자가가 상징하는 바는 자기희생이다. 이러한 희생은 마지막 연의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에서 보이는 의지적 태도와 결합되어 시대 현실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극복으로 나타나며,‘피를 조용히 흘리겠다.’는 자기희생의 구절은 존재의 막음이 아니라 자아의 극한적 상황을 극복하는 태도로서 구원의 세계를 의미한다.‘어두워가는 하늘’이란 식민지하의 암담한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고, 민족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만약 그에게 희생의 날이 온다면 그것을 능히 감수하겠다는 이 시인의 결연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희생의 감수 자체가 그에게는 다시없는 구원이며 그가 「서야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또 그에게 주어진 길이 천명과도 같은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단조롭게 이어지는 길은 절대로 지루한 길이 아니다. 이 길은 늘 ‘새로운 길’이며, 시인의 정신적 추구의 끝없음을 나타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변모를 발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일상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전진이 된다. 이 ‘길’은 윤동주의 수양의 길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의 연민으로 통하는 길이다.결국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길’의 심상은 『서시』에서 보여준 것처럼, 민족의 일원으로서, 시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자연 표상으로서의 상징에는 윤동주 시인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이 총괄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리 없다. 따라서 다음 절에서는 그가 처했던 시대 및 역사적 상황에 대한 윤동주 시인의 직접적 관심의 측면을 고찰해보기로 한다.4. 「길」을 쓴 배경윤동주의 작품 중에는 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많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의 심상이 작품에 투영된다. 이러한 비극적 인식은 일제 말 암흑기라는 국한된 시대 배경에 직접적인 원인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나아가서는 당시의 모든 세계 인류가 처해 있는 현실 상황에 대해서 느낀 절망감에도 그 뿌리를 둔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았던 긍정적 미래는 ‘일제로부터의 조국의 해방’으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구원과 해방을 그는 꿈꾸었다. 윤동주의 이런 시대 인식과 미래관에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역사관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렇기 때문에 윤동주의 어느 시에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은 없다. 그는 다만 그 시대의 삶의 현장, 민중의 생활 자체에 동참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가 만일 정치적 노력이나 조직적인 반일 운동을 통한 민족의 해방을 기도했다고 하면 시를 쓰지는 않았을 자기전개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행위는 두 가지로 표출된다. 하나는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와 동시에 ‘길에 나아’가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잃어버린 것이 소유의 대상으로서 몸에 지닐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후자는 그보다 훨씬 암묵적이며 또한 포괄적이다. 곧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길에 나아가면 생각이 날 수도 있고, 따라서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함의하고 있다. 길에 대한 이와 같은 자기 확신은 시인에게 있어 삶에 대한 확신과 등가되는 요소이다. 즉 모든 길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향해 상호 교차되어 나타나듯이, 마찬가지로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길은 삶의 지향성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교차되고 변화되는 의식의 경험 과정을 현현해주는 공간인 것이다.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2연에서는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돌이 끝없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돌담을 끼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돌담이 길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 화자로서는 결코 돌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 곳은 바로 화자가 회복해야 할 자아의 세계이지만 돌담이 그 길과 평행 상태로 끝없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화자는 그 곳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돌담은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갈라놓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의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2연을 곰곰이 살펴보면 2연은 길과 나란한 돌담이 제시된다. ‘길’은 화자가 걸어가는 도정이다. 이와 병행하여 돌담도 길과 함께 이어져 있다. ‘길’이 화자의 삶의 지표이자 도정이라 할 때 ‘돌담’은 그 삶을 차단하고 전망을 제거하는 억압적 시대 상황이라 할 수도 있다. 그 담은 돌로 이루어져 쉽사리 무너질 것 같지는 않고 어쩌면 영원히 이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걸어야 할 길이 얼마나 힘들고 절망적일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이 2행에서 윤동주는 ‘돌과 돌과 향